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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Jun 11. 2017

에필로그

46일을 보내고


46일을 제주에서 지내고 돌아오는 날, 유난히 푸른 하늘과 따뜻한 바람, 따가운 햇볕이 아쉬웠다. 제주의 하늘은 늘 그렇게 파랬고 요즘은 어디나 더우며 돌아온 육지에서도 한낮의 햇볕은 똑같이 따가웠지만, 헤어짐은 더욱 애틋하게 마음을 간질이는 맛이 있잖아. 집앞으로 택시를 불러 짐을 싣고 공항까지 가는 몇십 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바다가 보이면 고개를 한껏 뺐다.  

공항에는 룸메가 마중 나와 있었다. 국내선 도착 문이 바로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는 일어나서 다가와 힘껏 안아 주었다. 그의 가슴에 파묻힌 나는 아무것도 못 보았는데 나중에 들으니 주변 사람들이 많이들 쳐다봤다고 한다. 국내선 도착 라인에서 그렇게 반가워할 일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 이상해 보였으려나. 

집에 도착해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은 낯섦이었다. 나는 룸메에게 계속 "여기 원래 이랬어?"라고 물었다. 바닥 장판 색이 유난히 밝게 보여 눈앞으로 달려드는 듯했고, 식탁 근처 벽은 너무 휑해 몇 번이나 확인했다. 욕실은 넓었던 제주의 그곳과 비교되어 더욱 작게 느껴졌다. 내 작업방은 기억과 다름 없이 책과 잡동사니로 분주했는데 공간의 냄새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래, 냄새. 집의 냄새가 확실히 변해 있었다. 룸메 혼자 지내던 시간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어, 함께 살기 전 그의 자취방에 온 기분이 들었다. 제주의 그 집에서도 처음에는 오래된 나무 냄새 때문에 한동안 킁킁거리며 다녔는데 며칠 지나니 무감각해졌다. 이곳은 원래 내가 살던 곳이니까 더 빨리 적응할 수 있겠지. 잠깐의 낯섦이 오히려 재밌다. 내가 매일 틀어박혀 있던 이 공간이 낯설어졌다는 사실이 신기해.     

다시 한 달 이상 어딘가에서 살아보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오케이다. 다만 다음에는 룸메와 함께 가보고 싶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궁금하다. 내가 원하는 건 관광보다는 낯선 일상. 피곤보다는 안정. 자극보다는 다정. 이제 제주에 단골 카페, 아는 언니, 아는 민박, 아는 길, 아는 고양이들이 생겼다. 며칠씩 감질나게 다니며 침만 묻히던 때와는 다른 친밀함이 그 섬에 남았다. 언제고 싼 티켓이 나오면 훌쩍 제주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열심히 또는 게으른 육지의 일상을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계절의 마음을 놓고 온 자리가 곧 나를 부를 테다. 
 

떠나온 날의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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