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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Jun 26. 2017

서울에서 여름나기

(아니, 겨울나기)

Jay kim  

dngngn23@naver.com




나는야 지방에서 올라온 이직 준비생. 집에서 독립을 외치고 나와 사는 이 반지하 방(집이라 할 수 없는 방이다)에서 사실 제대로 된 세간살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식탁을 책상으로 쓰고 있고, 바구니마다 옷들이 쑤셔 박혀 있고, TV 요금은 비싸서 안 내고 있는데 뒤 짱구인 구식 텔레비전은 자리를 조금도 아니고 크게 차지하고 있고, 화장실에는 여행용 샴푸와 린스가 널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운 날을 이기는 에어컨이 있을 리 만무하다. 본가에서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선풍기를 가져왔지만, 한 시간 이상 돌아가면 이 늙은 친구가 힘에 겨운지 덜덜거리기 시작하는데 이걸 보고 있으면, 시원하기는커녕 이게 언제 다 분리되어 날아가 버릴지 두려워 땀이 절로 흐른다. 


이런 날, 

나는 현명한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는 것!  


눈을 지그시 감고

애써 미소를 띠며 의자에 편하게 앉아 

작년 크리스마스의 그 추위, 내 살과 피를 뜯어 삼길 것만 같았던 그 겨울을 생각해본다. 

사실, 캐럴 자체는 따스한 기운이 가득한 음악이기 때문에, 

이 마인드 컨트롤이 없이 그냥 들으면 땀이 더 난다. 

 반드시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밖은 지금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고드름이 얼어 있는 빙판길 위를 사람들이 겨우겨우 지나다니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안락하고 따뜻한 방안에서, 오죽하면 따뜻하다 못해 반팔에 반바지를 입는 사치를 부리며 고이고이 보호되고 있다." 


 여기까지 하다 보면 초보자들은 쉽게 마음이 동하여 덥다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을 계속해서 쓰다 보면, 사람인지라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나로 치자면 작년 겨울을, 그리고 살아오면서 가장 고통스럽도록 추웠던 겨울을 상상해내면 된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칠 정도의 추위를 한번쯤 겪어놔두는 것도 중요하다.)


나의 작년 겨울은, 딱딱하고 차가운 시멘트가 온몸에 발리는 듯한 고통을 겪을 정도의 추위였다고나 할까. 온몸의 근육은 애써 힘을 쥐어짜 내 떨어대느라 정신이 없고,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귀와 손가락, 발가락. 날카로운 송곳들이 할퀴고 지나간 듯한 뺨. 라이터 불이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따뜻한 기운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눈물이 날 때까지 했던 그 순간들. 머리통까지 통째로 얼어버리는 기분. 아아- 이제 서서히 졸려 온다. 뛰는 것도 비비는 것도 지친다. 눈은 감기고 이 추위를 그냥 부정해 버리고 싶다. 어딘가에 기대어 앉으면, 그 쇳덩이들에게서 받는 것은 더 큰 차가움. 이런 젠장할 도시에는 도대체 따뜻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구나. 무엇을 탓하리. 그럴 기운도 없던 그 순간들. 뭐 대체로 나는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하면,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팔에 닭살이 돋는다. 

 

그러니 어서어서 그때의 고통들을 떠올려가며, 

지금은 겨울이다. '지금은 정말로 추운 겨울이다.'라는 상상을 필사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오싹해진다. 

'아, 추우니까 나가기 싫다. 나가서 괜히 돈 쓸 생각하지 말고 따뜻한 집에서 자소서나 쓰자' 하며 평화롭게 구직 활동에 집중해 나갈 수 있다. 


돈도 없고 에어컨도 없는 여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이 방법을 추천해주고 싶다.   

어린 시절, 많은 선생님들과 어른들이 왜 그렇게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며 네모 세모를 갖다 붙여 토끼 따위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었었는지 알 것 같은 순간이다.    




*이 글은 Jay kim 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현 시대의 가난을 주제로 글을 이어갑니다. 

다른 작가님들도 매거진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매거진을 열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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