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Feb 14. 2019

쓸모 없는, 쓸모 없는 선물 교환식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연말까지 ‘쓸모없는 선물 교환식’이라는 놀이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보고 나도 두 번 끼어봤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100퍼센트 만족스러운 행사는 아니었다. ‘쓸모 없는 선물 교환이니까 만족스러울 턱이 없잖아? 바보 아냐?’라고 비난한다면 근본적으로 반박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받은 선물 중 첫 번째는 '입으로 불면 가짜 연기가 나가는 담배 모형’(대체 그런 건 어디서 구한 거지)과 아동을 위한 놀이용 돈이었다. 흡연자로서 말할 수 있겠는데, 그 모형 담배는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실내에서 피워도 다들 재미있어 하는 담배란 좀처럼 만나기 힘든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놀이용 돈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정말 쓸모 없겠지만 나는 보드게임에 잘 써먹었다. 이래저래 운이 좋았던 셈이다. 


그 다음으로 받은 선물은 '바이오하자드 카레’와 장화 모양 틀에서 고양이 사진을 슥 잡아당기면 고양이 울음 소리로 된 캐롤이 흘러나오는 엽서였다. 바이오하자드는 고작 두 편밖에 하지 않아서 별 애착이 없기에 카레는 그냥저냥 평점 정도였지만 엽서는 썩 나쁘지 않았다. 받을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쓴 것이더라도 손으로 직접 쓴 내용도 적혀 있었고. 


하지만 행사에 참가한 사람 모두가 그렇게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라 누군가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선물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는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선물을 망가뜨리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봐도 쓸모 없는 선물 교환식이란 이래저래 한계가 명확한 행사가 틀림없다. 


멋진 선물을 하는 것도 기막힌 재능이다. 선물을 할 사람이 있는 것은 선물이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쓸모 없는 선물 교환식’ 에서  ‘쓸모 없는’은 빼는 게 여러모로 나은 것 같다. ‘쓸모 없는’ 이 들어가서 하등 좋은 결과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간단히 생각해도 쓸모 없는 물건을 받고 진심으로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다는 것인지? 


굳이 ‘쓸모 없는’ 에서 그나마 건설적인 의미를 찾자면 ‘재미있지만 자기 돈으로 사기에는 돈이 아까운 물건을 주고 받아서 신명나게 웃어보자’는 것일 텐데, 이것이 의도는 좋아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일단 사람마다 재미에 대한 주관이 다르기 때문에 물건 하나를 선물함으로써 재미를 준다는 것 자체가 성공률이 대단히 낮다. 그리고 웃길 방법이 마땅히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누구 하나를 골탕 먹여서 다른 사람들만 웃기는 길을 택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면 더 생각할 것 없이 개똥 같은 선물을 고르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어쨌든 웃기는 물건이긴 하니까 포장을 뜯었을 때 다같이 박장대소하긴 하겠지만,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느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대답을 듣기는 힘들지 않을까? 특히 그 사람이 그냥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일정 이상의 금액을 지출했다면 이만저만 실망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이 행사가 최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만 모여서 다들 모두의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갈 만한 물건만 사야 하는 셈인데, 이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쓸모 없는 선물 교환식에서 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경제적 조건이다. 간단히 말해서 농담처럼 쓸 수 있는 돈의 허용 범위가 각자 다르니까 교환식의 만족도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를 달성하는 것도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별 다섯 개짜리 크루즈 여행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면야 거기 있는 누구라도 백 만원쯤 껄껄 웃으며 쓰겠지만, 엊그제 상욕을 먹으면서 간신히 주휴수당을 받아낸 고학생이라면 만 원 이 만원도 허투루 쓰기 힘들다. 그런데 심지어 돌아오는 것이 똥 같은 것이라면 아무래도 웃을 수 없으리라. 똥 같은 것보다는 차라리 두루말이 휴지가 낫다. 딱히 웃기지 않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쓸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쓸모 없는 선물 교환식이라는 것 자체가 연말에 적당히 재미있는 행사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라,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대체로 재미를 추구하는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재미있으면 됐지 뭐’ 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면 반드시 무심한 사람들만 기분을 내고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는 선량한 사람들은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내가 두 번째로 참여한 선물 교환식에서 누군가는 고등학교 문제집이라는 처참한 선물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웃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게 된 생각인데, 쓸모 없는 선물 교환식을 굳이 하고자 한다면 역시 몇 가지 조치는 취해야 할 것 같다. 가장 간단한 것은 선물의 가격을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낮게 잡는 것이다. 한 5000원 안에서 해결한다면 아무리 개똥 같은 것을 받아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지는 않겠지? 

아니면 누가 무엇을 받아도 딱히 불만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범위를 설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인형이나 학용품, 패션 아이템 따위로 정해 아예 스트라이크 존, 쓸모 없음의 최저선을 벗어나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최소한으로 선물을 교환할 때 자기가 산 것을 그대로 자기가 받을 확률을 남겨놓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선물을 자기가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좀 돈이 덜 아까운 물건을 고르게 되지 않을…… 아니, 잘 생각해 보면 그 정도로 상식적인 고려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어처구니 없는 물건을 사지도 않으려나. 


아무튼 받을 사람을 딱 정해놓고 그 사람이 만족할 만한 선물을 고르는 것도 어려운데 누가 받을지도 모르는 선물을 받는 사람이 만족하게 고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애초에 누구나 싫어할 이유가 없을 물건을 적당 선에서 고르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글의 요지다. 선물을 할 거면 그냥 좋은 선물을 하자. 물론 애초에 요따위 머리 복잡한 생각을 할 정도로 까탈스럽고 돈 없는 사람을 위해 고안한 놀이가 아니라고 한다면 깨끗이 인정하고 물러나는 수밖에 없지만……. 



추신.

글을 정리하는 사이에 발렌타인 데이가 되었습니다. 멋진 선물을 하거나 받을 예정이 있으신 분은 고개를 들고 서로를 확인해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