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음을 만났을 때였다. 우리는 핸드드립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를 골라 들어갔고, 다양한 원두의 향을 맡으며 커피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음이 최근에 커피 업계에서 일을 했는데, 그 회사의 바리스타에게서 드립 방법을 배웠다며 이런저런 팁을 나누어 주었다. 나도 늘 집에서 커피를 내려서 먹기 때문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나를 놀라게 했다.
미음 : 원두를 필터에 넣고 나서, 물 넣기 전에 손가락을 원두 가운데에 살짝 찔러 넣으면 드립이 더 맛있게 된대요.
나 : 응? 그거 진짜예요? 혹시 영화 <카모메 식당> 봤어요? 거기서 그러고 주문 외우잖아. "코피루왁." 하고. 나는 그거 그냥 상징적 의미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혹시 그 바리스타가 그 영화 보고 미음 씨를 놀리느라 한 말은 아냐?
미음 : 하하, 아니에요. 그 사람은 그 영화 봤을 것 같지 않은데. 그리고 농담이 아니라 진짜라니까요. 진지한 얘기였어요!
나 : 와, 소름! 나 아직도 가끔 그 주문 외는데. 어제도 했다고. 그런데 그게 정말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다니!
그래 이 장면, 다들 기억하시는지?
저녁에 이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며 이게 진짜냐고 다시 한 번 물어봤다. 그랬더니 핸드드립 고수들의 답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coffeesajo 가운데 구멍을 살짝 내주면 물줄기를 가운데 집중해서 내리기 수월합니다. 물이 옆으로 새나가는 걸 일부 방지해 주기도 합니다. 4인용 이상의 커피를 내리거나 점드립을 할때 가끔 저 방법을 사용합니다.
@foodaeee 기존의 드립 방법이라면 물줄기가 외벽으로 가면서 의도보다 흐리게 추출될 가능성을 막는 의미가 희박하게나마 있을 것 같은데 최근의 드립 방법이라면 의도적으로 와류를 만들기도 하는 만큼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꽤 오래된 영화니까 주문 이상의 의미는 있었을 것 같아요.
@Guur 가운데가 제일 커피의 양이 많습니다. 즉 물이 제일 닿기 힘듭니다. 각 커피 입자가 물에 골고루 닿는 게 최적이라는 결론으로 가운데를 눌러두면 그만큼 골고루 닿습니다.
@jangdowrong 드립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가운데 구멍을 살짝 내주면 뜸 들이기 물 붓는 게 엄청 수월합니다. 머핀도 이쁘게 올라와요.
결론은, 상징적 의미인 줄 알았던 저 행동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는 점. 그동안 낭만적인 감상으로만 저 장면을 종종 따라 했던 내가 조금 우습기도 하고 이제와 영화의 디테일을 알게 된 게 신기하기도 하다.
<카모메 식당>과 <안경>은 내가 오랫동안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영화들이다. 일상이 답답할 때 숨 쉬기 힘들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 찾아서 보면 한적한 바닷가에 간 듯 조금 마음이 나아지곤 한다. 그래서 영화에 대해 더 알게 된 것이 기쁘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저 행동을 따라 하게 될 것 같다. 이번에는 분명히 이유를 알고.
마지막으로 위 장면에서 이어지는 다른 장면을 첨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