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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북향 빌라도 괜찮아, 베란다가 있다면!

어떤 빌라에는 왜 야외 베란다가 크게 있는 걸까?

by 정아름

베란다 있는 빌라의 매매 가격은 3억 대. 내 생각엔 적정한 수준이었다. 바로 5분 거리에 17년 된 32평 아파트가 6-7억대, 9년 된 33평 아파트가 8억대였다.


이건 우리 일생에 가능한 숫자가 아니잖아!


한 인간이 성인이 되고, 매달 일정량의 월급을 받으면서 이런 가격의 아파트를 완전한 금액을 지불하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 보고 구입한다해도 이건 아닌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이런 불가능한 일들을 해내느라 매일을 허덕이는 사람들이 정말 많겠다.


브랜드 네임 있는 아파트는 일찌감치 포기. 빌라로 눈을 돌렸다. 오래된 주택도 좋았는데(개조해서 여러 용도로 쓸 수 있겠다 싶어서) 산 아래 엄청나게 낡고 허름한 집도 5억을 훌쩍 넘겼다. 그리고 지금의 빌라로 셀렉. 베란다를 제외한 실평수 71.71 m2, 가격은 3억 대. 역까지 걸어서 10분, 작은 도서관과 만화카페가 7분 거리, 그리고 길 건너 초등학교가 있다. 단점이라면 길가라서 차 소리가 약간의 소음이고, 주차가 자유롭지 못한 점, 단지 내 놀이터가 없다는 점. 아직까지는 이렇게 세 개 정도다. 뭐, 감당할만하다.


그런데 기존 빌라에 사는 지인들은 그래도 빌라인데 너무 비싸게 주고 산 것 같다고 말했는데, (아파트 값만 치솟고 있던 때였으니까) 당시 주변 시세로 봤을 때는 보통이었다. 그리고 그때 '빌라는 아닌 것' 같다고 했던 사람들은 지금 우리 집에 와 보고는 '잘했다'라고 칭찬을 해 주고 있고, 우리는 은행에 매달 내는 이자를 월세라고 생각하며 편안히 생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케아에서 구매한 9,900원 커튼, 네 장으로 거실을 여름답게!

그리고 베란다 있는 북향집의 생활은 시작됐다. 예부터 집은 '남향, 남향'하는데 살아보니 북향이라서 나쁜 점이 거의 없다. 북향이라 어쩌면 집 가격이 더 저렴했을지도 모르는데 살아보니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여름에 빛이 덜 들어와 시원하다는 장점이 있고, 베란다에 따로 타프를 치지 않아도 아이들이 수영을 할 때 덜 뜨거워 좋다. 적당한 햇빛과 바람에 빨래는 한 나절이면 마르고 베란다 티타임을 하기에도 빛이 덜 들어와 오히려 낫다. 기역자로 뚫린 거실의 넓은 창 덕분에 집은 하루 종일 밝고 바람도 참 통한다. 또 커튼을 좋아하는 나는 이케아에서 저렴하고 예쁜 것으로 사서 계절마다 바꾸는데 커튼 하나만으로도 집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다.


빌라 바로 앞은 빌라이고, 옆은 다 주택들인데 가끔 빨래를 널다 옥상에 올라오신 옆집 뒷집 할머니들과 눈이 딱, 마주치는데 I 성향의 나는, 나도 모르게 빨래 뒤로 숨어 버린다. 남편은 인사하지 그랬냐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데, 다음에는 그래 볼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전깃줄 사이 사이로 보이는 4층 베란다, 5층 베란다, 옥상 그리고 비 개이고 파란 하늘

자, 여기서 야외 베란다가 있는 이유!


빌라 주변의 건물이 빌라 때문에 햇빛이 가리면 안 되므로, 이렇게 빌라에 야외 베란다가 통째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 그래서 일조권(건물에 일정량의 햇빛이 들도록 보장하는 권리)을 보장하기 위해 야외 베란다는 건축법상 존재할 수밖에 없고, 우리 집 같은 빌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감사하게도 '일조권 사선제한' 때문에 베란다를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산책을 하다 곳곳에 이런 베란다 있는 빌라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베란다 뿐만 아니라 복층집도 만들어지게 된 것. 일조권 사선제한으로 복층집에 베란다 두 개가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횡재가!


잠깐, 전문용어 설명 들어갑니다.


"일조권 사선 제한"

건축법상 전용·일반주거지역에서 건축물을 건축하는 경우, 각 정북 방향으로 인접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을 띄우도록 한 규제다. 즉, 건축물 등을 지을 때 주변 건물에 햇빛이 가리지 않도록 건물 높이를 제한하는 것.


- 높이 9m 이하: 대지경계선으로부터 1.5m,

- 높이 9m 초과 : 해당 부분 높이의 2분의 1 이상 띄워야 한다.

(건물이 사선형이나 계단형으로 되는 경우가 이 제한 때문)


출처:머니투데이 2021. 1. 21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12215131348167


야외 베란다가 있는 북향집 빌라는 생각보다 살기 괜찮다. 뭐, 마당 있는 주택도 좋지! 하며 욕심은 끝도 없이 불어나지만 지금의 집을 다시 만나기는 참 어려울 듯. 그러고 보면 사람과 집이 닮았다.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 눈 번쩍이는 사랑의 타이밍처럼 '집'도 직감적으로 반해야 가능하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정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 처음 뜨겁던 설렘이 불쑥불쑥 떠올라 지금을 끌고 가기도 하니까.


띵 띠리 리리 리리~ 리리리리 리리리~

억수 같던 어제의 비가 그치고 여름 바람이 분다.

빨래 널러 베란다로 나가야겠다. 당연히 커피 한 잔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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