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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올라가서 놀아요. 복층이니까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층간소음의 벽

by 정아름
층간소음의 굴레에서 10년 째,
도시인으로서 조심조심히 살고 있습니다.
방법은 이 도시를 벗어나는 것 뿐일까요?


독일에서 3여 년을 살 때 4층에서 살았는데, 남자 아이라 활동량이 많고 어찌나 뛰어다니는지 아랫층에 너무 미안해 몸둘바를 몰랐다. 남편이 아래층 일본인 부부를 만날때마다 미안함을 전했고, 다행스럽게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해 주어서 감사하게 살았다.


한국에 오고 아파트 2층에 1년 여 살았는데 그 '층간소음'의 사단이 일어났다. 노인 분들이 주로 조용하게만 살던 이 아파트에 5살 우리 아이가 오면서 어마어마한 소리들이 생겨난 것이다. 특히 아랫층 할머니는 하루에 전화 두 번은 기본, 한 번은 방문하셨다. 아이가 크게 소리내거나 조금이라도 뛰거나, 의자를 끌거나 하면 영락없이 할머니는 오셨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똑똑'에서 '쾅쾅'으로 변했고, 나는 아예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아무리 조심해도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도 다 들린다며 소리 소리를 지르셨고, 아이는 무서워서 내 뒤에 숨어 할머니가 가기만을 기다렸다. 소음에 시달리는 사람도 소음을 내고 있는 사람도 모두 공포였다. 방법이 없었다. 아이를 묶어놓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조심하는 데도 한계는 있으니까.


그리고 이사 간 5층집에서는 아이가 둘이 되었다. 저번 집에서 할머니의 갈등을 있는대로 겪은 터라 나는 아이들을 쥐잡듯 잡았는데, 우연히 만난 4층 아주머니는 얘들이 당연히 떠들고 시끄럽고 뛰는 것이 아니냐며 괜찮다고 하셨다.(감동의 물결ㅜㅜ) 그래서 적당히 조용히 시키긴 했으나 아랫집에 죄송했고, 결국 집 앞 공원에 가서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놀리다가(반 강제로) 집에 돌아왔다.


우리 집에 못 가. 아랫층에 시끄럽게 하면 안되니까.

이 말을 아이들에게 하는데, 어찌나 서글프던지. 아직도 마음이 몽글몽글.


나는 더 이상 안되겠다 싶었고 1층으로 무조건 이사가겠다고 선포했다. 독일에서 돌아오고 이제 세 번째 이사. 1층이라 안심이었다. 아이들은 집에서도 축구를 할 수 있다면서 얼마나 기뻐하던지, 그동안 너희들 고생이 많았구나. 땅 위의 집이 이렇게도 좋다니! 나도 감탄했다. 남자아이 둘은 기쁨에 뒹굴며 정신없이 놀았고, 그동안 쌓인 것들을 풀어내야 하니 나도 좀 내버려두자 싶었다.

그래도 좋았던 우리의 1층, 땅 위에 산다는 기분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워.
똑똑


일은 또 일어났다. 2층에서 아저씨가 내려오셨다. 이럴수도 있구나ㅠ 시끄러우면 위층에서 아랫층으로 내려올 수도 있는 거다. 죄송하다고 몇 번을 말하고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는데 뭐, 나중에 알고 보니 아저씨는 1동에서도 유명하셔서 조금이라도 시끄러우면 어디든 달려가 한 소리 하시는 분이셨다.


이제 1층이 아닌 곳으로 이사를 가는 건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다. 의자를 조심스럽게 옮기거나 아이들이 발소리 내지 않고 걷거나 하는 걸 연습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했으니까.


하지만, 복층빌라는 괜찮다.


4층이 우리집이니, 5층에서 좀 시끄럽게나 뛰거나 소리를 내어도 된다. 너무 과하면 또 3층에서 혹은 5층에서 올 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계속 연습시키며 도시인으로서 선을 지키려 매일 노력중이다. 아직까지는 위, 아래집들과 사이가 괜찮고, 오히려 5층 옆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너무 과해서 큰 일이 났나싶어 남편이 한 두번 올라가기도 했는데 이 정도면 서로가 살만한 정도.



5층에 남편의 서재와 아이들 방을 꾸몄다. 책장을 지나 긴 책상도 놓았다. 함께 앉아 공부하거나 책 볼 공간은 어디나 필요하니까. 지금은 남편이 건축사공부를 하는 용도로 잘 쓰고 있고, 좀 선선한 바람이 불어 가을이 되면 이제 큰 아이와 영단어 시험을 보는 장소가 될 듯.


장난감들과 아이들 책을 다 위에 두어서 밥을 먹고 아이들을 또르르 위로 올라간다. 큰 티비로 영화를 보거나 레트로 게임기로 둘이서 오락실 게임을 한다. 우리의 새로운 취미인 가정용 펌프도 구매했다. 복층이니 펌프도 가능. 살짝은 뛰어도 괜찮다.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 갑니다. 오락실만 못하지만, 그래도 실전에 가기 전 가끔 연습은 필요하니까. 작년 겨울방학 동안 수행한 미션의 댓가로 닌텐도까지 사들였으니 아이들에겐 집이 오락실이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아직도 어린이라 엄마 없이는 위층에 올라가려고 하지 않아 늘 동반해야 하지만, 아이들의 친구들이 오면 어깨가 으슥해져 위로 올라가 이것저것 가르쳐주며 논다. 아랫층에 자꾸 장난감이 내려와 다시 또 올리는 수고가 있지만 이제 좀 아이들이 자라면 아예 위층에서 자리잡고 내려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전까지 많이 같이 시간도 보내고 안아주는 것이 지금의 육아 계획.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꼭 겪어야 하는 '층간소음'의 문제는 끝이 나지 않을 것이고, 1층 말고도 방법이 있다면 이렇게 복층집에서 아이들이 적정한 선에서 쉬거나 놀 수 있게 해 주는 것.


오늘도 도시인으로서 '최적의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복층에선 가능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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