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양파' 축제가 있다?

바이마르 양파축제, 10/11-13

by 정아름
독일에는 양파 축제가 있을까?

있다. 독일 소도시 바이마르에는 양파 축제가 매년 가을에 열린다. 연주황과 쨍한 진보라색의 양파와 줄거리가 달린 마늘, 그리고 마른 꽃들로 다발을 만들어서 판다. 생각지 못한 조합이 너무 화려하고 근사해서 나는 하나쯤은 꼭 사고 싶은데 말하려는 사이, 남편은 벌써 아이와 저쪽으로 가고 없다.

"이거 있잖아, 저건 어때, 근데..."


마켓에 도착해 30분은 신나서 돌아다녔는데 바로 체력은 바닥나고 나는 사람들 한가운데서 길 잃은 것처럼 서 있다. 늙는다는 건 거역할 수 없는 순리. 많은 인파를 헤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 손에 이끌려 휘청휘청 걷는다. 눈가는 어두워지고 한적한 장소를 찾는다. 이 타이밍에 딱 커피 한 모금을 했으면 좋겠는데, 벌써 아이는 제페토 할아버지를 닮은 나무 장난감 가게로 나를 끌고 간다.

할아버지는 정말 피노키오 동화에서 갓 나오신 것처럼 긴 수염에 인자한 얼굴. 직접 깎아 만드신 나무 장난감을 들고서 할아버지는 까무잡잡한 동양인 꼬마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신다. 장난기 가득 눈을 찡긋 하며 기린 장난감을 들고 노는 법을 알려주신다. 나무 아래쪽을 누르니 기린이 픽 쓰러지고, 아이는 입가 보조개가 쏙 들어가도록 까르르 웃는다. 서로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 통하는 느낌은 무엇일까.


우리의 마음은 흐르고 닿았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번에는 시내를 통과하도록 코스를 짰나 보다. 시내 곳곳을 달리는 독일 사람들.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게다가 저 자전거 트레일러에 아이를 싣고는 달리기를 하는 독일스러운 독일 아빠. 곁의 풍선 가게, 빵을 굽는 사람들, 치즈를 파는 아저씨, 나무 장난감을 파는 할아버지까지.

치즈 가게를 지나 자리를 잡는다. 싸 온 과일을 꺼내 먹는다. 독일에 꽤나 머물렀는데도 아직도 진하고 퍽퍽한 덩어리 치즈에는 익숙해지지 않은 걸 보면, 나는 촌사람이 확실한가 보다. 독일 음식에 맛을 들여야 하는데 자꾸 집에서 제육볶음을 하고 엄마가 보내 준 황태를 불려 미역국을 끓인다. 스스로가 이질적으로 살면서 독일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탓을 부족한 '언어'로만 돌리고 있는 나. 밖으로 돌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나'.


아이와 약속한 놀이기구를 타러 간다. 대관람차 표를 끊어야 하는데 손이 덜덜 한다. 유학생의 삶이란 넉넉지 못하다, 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한참 부족하다. 식료품비를 제외한 1유로도 백 번 고민하여 써야 하니까.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탈 수 있는 대관람차를 타기 위해, 기뻐할 아이를 위해 생필품 하나를 줄이면 가능도 한 일. 그러나 놀이기구를 잘 못 타는 남편을 닮아가는지, 나도 이제는 높은 곳에만 올라도 후들후들하다. 대관람차는 안전벨트도 없는데, 나이 제한도 없어서 갓난아기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두 탈 수 있다.

진짜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든 거 맞겠지? 생각하는데 놀이기구는 출발하고, 나 혼자 소리를 지르며 한국 망신을 시킨다. 20대에는 나 이러지 않았는데, 롯데월드를 밥 먹듯이 갔는데 이럴 수가. 너무도 무서워서 당장 내리고 싶다. 아이는 끼약, 신나는 소리를 지르며 너무 재미있다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나는 꼴깍 넘어갈 듯 정신이 왔다 갔다 한다. 크악, 아래를 잠깐 아이 따라 보았다가 다리가 후덜덜한다. 빨리 땅을 밝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데, 마음씨 좋은 놀이기구 아저씨는 계속 기구를 빙글 뱅글 더 돌린다.


내려다본다.


심호흡 두 번, 그리고 두려움을 꿀꺽 삼킨다. 조금씩 편안해지는 호흡 그리고 풍경이 비로소 보인다. 바이마르가 보인다. 아이가 즐겨 놀던 놀이터와 주황 지붕들이 흐린 안개에 감겨 있다. 우리는 날고 있다. 가벼운 주머니와 남루한 옷가지처럼 자유롭다. 천천히 도는 관람차를 타고 하늘 위에 앉아 있다.

서른에 엄마가 되고, 7개월 된 아기를 안고 독일에 왔는데 엄마도 친구도 없이 혼자 독박 육아. 아이와 같이 울고 웃고 지나온 독일에서의 생활이 밀려온다. 그래도 우리 생각보다 더 잘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을과 만난다. 어쩜 이렇게 고운 빛깔로 서 있는지. 아이는 "엄마, 이게 가을이야?"라고 묻는다. 아이는 계속 이게 가을이냐, 저게 가을이냐, 진짜 가을은 뭐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대답을 잊고 꼭 안아준다.


가을이 다 저물기 전에, 밖으로 나와 본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오늘, 가을의 빛깔과 공기와 향기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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