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게 좋아, 독일 산책

밖으로 나가니 아이가 보였다

by 정아름
나도 아이도 서로가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서툴렀다.
날것인 서로를 이해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필요일까.
감이 오지 않았다.


네 살 아이와 나는 하루에도 몇 번 울고 화해하고 또 싸운다. 독일에서 우리는 어리석게도 대부분 온종일 집 안에 있고, 나는 엉성한 엄마 노릇을 연기 중이다. 남편은 어른인 엄마가 아기랑 왜 싸우냐고 하지만, 나는 정말 아이와의 상황이 화가 나고 슬프고 마음이 상한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아이와 집을 나서기로 했다. 오늘은 가을 햇살이 따사롭기 때문이고, 공부를 해야 하는 남편을 홀로 두는 시간이 그에게는 최상의 선물인 탓에 과감하게 외출을 결심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 하나를 챙겨 외출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인지. 분명 아침 일찍부터 아이를 씻기고 옷을 입히고 간식을 챙겼는데 나가는 시간은 10시가 훌쩍 넘는다. 모처럼 남편에게 공부할 시간을 많이 주려고 부산을 떨었는데 또 이렇게 넉넉지 못한 하루로 시작.


온기는 전혀 없는 뜨거운 해가 떠 있다. 시내로 가는 길은 숲을 지난다. 시내가 흐르고 가을꽃들은 흐드러져있다. 시내에 도착해 첫 코스는 아이스크림 가게다. 가을이 사라져 가는 거리는 빛나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곁에서 아이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독일에 오니 보폭을 맞춰 손을 잡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연인이든, 중년의 부부든, 노부부든 손을 잡고 걸어간다. 주름 가득한 손과 손이 포개어진 데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뜨거운 키스와 포옹보다 깊다. 나도 아이의 조그맣고 통통한 손을 잡고 걷는다. 아이는 폴짝폴짝 점프를 하며 뛰고,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기분이 좋고 모처럼 엄마의 잔소리가 없어 행복하다.

걷는 게 좋아,
아이스크림도 좋고 엄마도 좋아.


버스정류장 맞은편, 테이크아웃 카페를 지나 광장으로 걸어간다. 걷기에 참 좋은 가을이다. 그리고 거리의 독일 사람들은 눈만 마주쳐도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할로!

나는 혼자 세상 어색하다. 당연히 눈도 못 마주치고 나만 들릴 정도로 독일어를 부끄럽게 내뱉고, 밖으로 나와 기분이 좋은 아이는 큰 목소리로 '할로' 카페 야외테이블에 앉은 할머니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독일 사람들은 이미 나와 친해질 준비가 되어있는데, 나는 자꾸 뒷걸음치며 친해져야 한다고,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중.

광장에 도착. 거대한 비눗방울들이 몽글몽글 아이들을 따라다닌다. 까망이 우리 아이도 비눗방울을 향해 달려가 두 팔을 벌려 날아가는 투명한 꿈들을 안는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신나게 놀 때 가장 예쁘다.

거리의 가족들은 대부분 아빠와 엄마와 함께 있다. 평일 오후에도 놀이터에 아빠와 온 아이들이 1/3 정도, 내가 본 독일의 아빠들은 독일의 놀이터처럼 아이들과 과감하게 놀아준다.(놀이터에서 놀다가 떨어지거나 다치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그러면서 아이들은 커 간다는 놀이터 디자인하시는 분의 말씀처럼)


주말에 가끔 보는 대형 실로폰을 연주하는 아저씨 주위에는 사람들이 늘 가득하다. 독일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하고, 거리의 악사들에게 늘 애틋하다. 음악을 듣고 앨범도 사고, 동전도 어김없이 주며 곡이 끝나면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도 처음에는 음악이 좋아도 슬쩍 듣기만 하고, 동전은 아까워서 주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아이와 함께 감상하고, 아이에게 동전을 갖다 주게 한다. 적은 돈이지만 그들의 음악에 마음을 담은 감사를 전하고 싶어 진다. 또한 나도 아이도 음악을 느끼고 알고, 감사를 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오늘도 이름 없는 그들은 거리를 무대 삼고, 대중없는 대중들을 향해 마음으로 연주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낡고 오래된 악기 소리가, 비루한 옷가지 속의 감성 가득한 목소리가 퍼진다. 거리의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음악 속에서 나도 푸른 리듬을 더듬어본다. 8분 음표의 금발머리 아가씨의 걸음, 비눗방울을 따라가며 스타카토로 뛰어가는 아이들, 느린 쉼표로 한 걸음을 떼는 노인들, 모두가 연주되고 있는 독일 오후의 거리.


감자튀김 집을 지나다 또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하얀 소스 가득한 감자튀김을 산다. 감자가 이토록 맛있을 수 있다니 이건 기적이다. 오후 늦게 공부를 하고 나온 남편을 만나고 그도 감자튀김을 한 입 베어 문다. 해가 기울면서 못 견딜 싸늘함에 바우하우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는데 이곳은 우리의 숨겨진 아지트. 쉴 공간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무엇보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고마운 곳. 남편은 자판기에서 달마이어 카푸치노를 하나 누른다. 양도 많고, 맛있는 나만의 바이마르 커피 맛집.

커피를 마시며 도서관 이곳저곳을 폴짝거리는 네 살 아이를 나는 이제야 엄마처럼 바라보면서, 요즘 격일로 하고 있는 고백을 날린다. 엄마가 처음이라서 미안해.

밖으로 나오면 아이가 보인다.


캄캄했던 방문을 열고 나왔다. 독일 거리를 걷다 보니 조금은 착한, 나로 돌아와 있다. 친절한 독일 사람들의 인사와 광장의 음악들과 비눗방울에 섞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거리를 저절로 걷게 한다. 공기와 햇살이, 떨어지는 붉은 잎사귀들이, 저물어가는 오후가 보이고, 커피 한 모금은 더욱 맛있다. 유리창 밖으로 온전한 가을이 비추고 아이와 나는, 독일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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