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름 Feb 13. 2022

05 밖에서 잔다는 것은

헐, 여긴 어디지?

초등학교 때, 우리 집 옆에는 달랑 세 개의 집이 있고 아래에는 바다가 있었다.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구판장(슈퍼)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진짜 깡촌이었다. 나는 남동생과 나이대가 비슷했던 옆집 동생 집에 매일 놀러 갔다. 그러다가 시간이 늦어지면 또 같이 자고 싶어서 엄마를 졸라 겨우 허락을 받아내곤 했다. 우리 넷은 좁은 방에서 부대끼며 베개로 머리를 때리며 베개 싸움을 하다가 키득거리며 오만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잠이 드는 것도 모른 채 아침에 눈을 떠 보면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독일에 오고부터일까. 잠이 드는데 시간이 필요하고, 일어나서도 개운하지 않다. 머리가 아픈 날이 많고 먹기만 해도 체하고 그러다보니 낮에도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그리고 잠자는 장소가 옮겨지면 더 심해졌다.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고 텐트에서의 첫날, 울퉁불퉁한 바닥 위에 돌이나 솔방울들이 등허리를 콕콕 쑤셨다. 바깥에서 산짐승 우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딱딱하고 차가운 땅바닥에서 누워 있었다. 몸이 너무 피곤한데도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밤에도 몇 번을 깨고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헐, 여기 어디지? 
   


꿀잠을 위한 텐트 치는 팁이 생기기 시작했다. 돌멩이나 솔방울은 미리 치우고, 지푸라기 있으면 가져다가 바닥에 깔기도 한다. 텐트 안에 돗자리를 깔고, 침낭에 몸을 뉘인다. 아기는 간이 이불로 돌돌 싸맨다. 자잘한 돌멩이들에 여전히 등이 배기고 허리가 아프지만, 이젠 문턱에 앉아 있던 고단함이 찾아와 금새 잠이 들고만다. 

1mm 얇은 회색 천 안에 식구들이 누워 있다. 아기의 잠든 숨소리가 들린다. 남편의 노곤한 콧소리가 텐트 안을 울리고, 풀벌레 소리까지 밤은 전혀 고요하지 않다. 새벽이면 서로가 서로에게로 붙어 안는다. 평소에 이불을 항상 발로 차던 아이도 이불을 꼭 안고 있다. 차가워진 아이 얼굴에 내 얼굴을 댄다. 남편이 거친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 주고 서로의 남은 온기를 나눈다. 


어릴 적, 통영의 바다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외진 마을 끝의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면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별이 뜨기 시작했고 나는 동생과 아기 염소 노래를 흥얼거렸다. 엄마는 밭에서 따온 옥수수를 쪄 주시고, 아빠는 집 뒤의 지붕을 덮을 만한 큰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따 오셨다.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바다의 푸른 냄새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도 지금도 동일하게 느껴지는 아주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랑함. 


그리고 믿고 싶지 않지만 아침 여섯 시. 텐트 안으로, 빛이 들어오고 벌써 밖은 이렇게 환하다. 아이는 망설임도 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엄마, 아침이에요. 눈을 좀 떠 보세요. 


텐트를 친 바로 곁에 마중물이 있다. 텐트 앞에는 놀이터가 있다. 어젯밤에는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잠을 청했는데 일어나 보니 이런 곳. 여행 중 최고의 장소라고 남편의 눈썰미에 감탄한다. 아이가 펌프질을 해 주는데 세 살짜리가 참 힘도 세다. 마중물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 시원하다 못해 너무 차가워서, 아이에게 으악으악, 그만 그만! 하지만 아이는 계속 신이 났다. 


밖에서 나는 이제 잠을 잘 잔다. 두통도 사라지고, 체하지도 않는다. 자전거 페달을 돌리느라 텐트를 치고 밥을 하느라 아플새가 없다. 그동안은 너무 한가해서 아플 새가 있었던 걸까. 


"오빠, 나 이제 안 아프네. 자전거 매일 타니까 그런가?"

"평소에 너무 많이 먹으니까 그렇지."


작작 좀 먹으라는 남편의 팩폭에 나는 오랜만에 아이처럼 개운하게 웃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