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팬클럽'에 가입했다.
저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써요.
1997년, 나는 친구들에게 떠밀려 HOT를 좋아해야만 했다. 좋아하지 않으면 손절하겠다는 K의 표정에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또 HOT 멤버 중에 한 명을 고르라는 말에 얼떨결에 '강타'라고 말했다. 쉬는 시간마다 K와 그녀들은 비디오테이프를 틀고 '전사의 후예' 춤을 연습했다.
나는 뒷자리에서 '풋'하고 입을 막고 몰래 웃었다. 나는 유희열의 음악도시를 밤마다 들으며 '이런 음악'이 더 좋았다. 토이와 김동률을 들으며 야자시간을 때우던 나의 시든 열일곱. 그 시절의 음악 덕분에 나는 겨우 생기를 유지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마흔이 넘어 '팬클럽'에 가입했다.
내 생각에 '팬'이 된다는 것의 기준은,
1. 매일 한 번 이상 생각한다.
2. 하루에 몇 번 그의 노래들을 저절로 흥얼거린다.
3. 그의 근황이 궁금해 SNS와 뉴스나 유튜브 최신 영상을 검색해 본다.
4. 어쩌다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남편에게 엄청난 타박을 들을 수 있다)
나는 7년째 오전만 일한다. 아이들은 학교를 갔다 오면 집에 항상 엄마가 있다. 세 시에는 간식을 만들어 먹고 루미큐브를 한 판 하고 다섯 시가 넘으면 저녁을 먹는다. 우리는 가끔 동네를 산책하거나 트랙 있는 운동장에 가서 달리기 시합도 한다.
어렸을 때 엄마가 없는 집은 늘 서늘하고 오싹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남동생과 쪼그리고 앉아 기약 없이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배고픔보다 엄마가 내리지 않는 버스를 떠나보는 것이 더 마음 시렸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규직 일을 아예 구하지도 않았다. 그냥 별 것이 없더라도 아이들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그리고 내 능력도 시간제 강사 정도니까 그리 아쉬울 것은 없다.) 나는 강의를 하고 시간당 페이를 받는데 내가 아프거나 일이 생기거나, 학교에 행사가 생겨서 수업을 못하면 그날 시급은 없다. 그리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은 무급휴가로 쉰다.
이름은 있어 보이는 '프리랜서 강사'인 나.
아이의 엄마로서 큰 장점이 있는 것은 맞는데, 남편이 공부하느라 생활이 어려웠던 시기에는 방학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매년 방학이 돌아오면 더 아낄 것도 없는 것에서 아껴 쓰느라, 엄마와 남동생에게 부끄러운 손을 내밀어 돈을 빌리느라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20대 중반부터 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의 일을 미치도록 즐기거나 넘치도록 잘하는 편도 아닌데, 며칠이라도 쉬고 있으면 불안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일을 쉬어 본 적이 없다. 이직을 하는 시기에도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버지가 과거에 직업 없이 집에만 계신 적이 꽤 있었던 탓일까. 엄마는 잠시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낙오되는 것이라 생각하셨고, 나는 그런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 '생의 고생스러움'을 충분히 이해하므로 나는 이 일 저 일을 기웃거리고, 시간을 허비하면서 떠돌았다.
그리고 드디어 쉴 수 있는 타이밍이 왔다. 남편이 공부를 끝내고 일을 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이 이루어지고, 나는 글을 쓰면서 재미를 찾아가는데 어른들의 반응은,
응, 그래. 그런데 그게 '돈'이 되냐?
'돈'이 되는 일. '돈'이 되지 않는 일은 쓸데가 없는 일. 이제 다 커버린 나는 부모님의 말에 당황스러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어졌다. 엄마 말대로 돈도 안 되는 글쓰기가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이럴 시간에 교육청 구인 사이트를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출처: 이승윤 인스타그램
그러다 이번 방학, 우연하게 '싱어게인'이라는 무명가수들이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다. 30호 가수 이승윤의 노래를 듣고 미발매 음원을 찾아보고,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고, 그가 하는 인터뷰를 유심히 보았다. 그의 노래는 순수했고, 가사는 어떠한 글보다 시적이었으며, 그의 말들은 진실했다. 무엇보다 계속 듣고 싶어지는 음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보면서 하루 세 끼를 굶지 않으면서 나의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한다면 그리 '돈'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마흔이 넘어 이승윤의 팬클럽에 가입을 했다. 지금은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쓴다. 귓가로 들리는 '소란한 내 일기장 속에 새까만 구멍이 났어요'라는 가사를 한참 곱씹어본다.
약간 손 시린 방 안의 공기와 어울리는 음악.
누군가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