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똥구멍을 매일 보는 이들에게
영화 <미나리> 2021, 정이삭 감독
영화 <미나리>를 봤다. 그 향기만큼이나 여운이 길다.
수전 손택의 이론을 모두 긍정하지는 않지만 영화 그 자체를 보고자 한다. 그것도 아주 이기적인, 나(제이콥)의 시각으로. (영화를 본지 벌써 보름이 지난 시점에서 기억이 가물한 건, 오직 내 책임.)
제이콥. 병아리 감별사.
아니 더 정확히 10년 동안 병아리 똥구멍을 보며 가족을 먹여 살리는 책임감을 다하는 그. 도대체 그는 일생을 나름의 전문직?인 이 "똥구멍' 보는 위치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문: 요즘 하는 일 재미있어?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답: 야, 적성에 맞냐고? 넌 아직도 그런 걸 묻냐?"
아, 그렇다. "꿈", "하고 싶은 일", "나에게 맞는 일", 이런 어휘를 감히 입밖에 내기에는 내 나이와 삶의 무게는 너무 무겁다. 어느새 난 늙은 '몽상가'가 돼 버린 것이다. 제이콥은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시점에 있다. "지금 아니면 영영 도전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약간의 희망."
그에게 땅은, 농장은 가장으로서 가족의 꿈과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또 마지막 길이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자신들을 품어줄 수 없는 한국을 떠나 서로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왔다. 그리고 왜 이 황량한 땅에 집착하는지 묻는 모니카에게 제이콥은 말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한 번쯤은 아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잖아."
새벽 5시 30분. 집을 나서 까대기를 한다. 택배 차 한가득 물건을 싣고 밤늦도록 물건을 나른다. 하루에 도 몇 번 이곳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지만 아내도, 아이들도 만족시킬 수 없다. 결국 나 자신에게도.
가족을 지키고 같이 떠나자는 모니카의 말에 제이콥은 '땅(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며 혼자 남겠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 아들의 심장병이 차도가 생기고, 농작물 판로도 갇게 된다. 이제 땅을 떠나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때, 모니카는 폭발한다.
"왜? 모든 게 잘 되었잖아?"
"아니, 변한 건 없어. 당신은 우리가 아닌 당신의 꿈을 선택했었잖아! (대사 가물가물)"
아, 영화 <클로저>처럼 여성의 감정은 얼마나 복잡하고 또한 단호한가! 마치 말미잘의 촉수를 건드린 것처럼 움츠러드는 여성의 감정을 남자는 쉽사리 열지 못한다. 세상에서, 자식 앞에서 초라하게 움츠러드는 남자의 고통을 여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듯이.
물론 이 영화는 활활 타오르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버리는 불 앞에서, 모든 치솟는 감정과 욕망이 살라지고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진짜 가치 있는 꿈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을 끝이 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도 계속 남는 생각.
난 (수많은 남자들은), 가정을 위해 일생을 병아리 똥구멍을 감별하는 곳에 남아야 하는가?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꿈은 접어야 하는가?
- 시
ps.
난 오늘도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아무 고민이 없는 듯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