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죽음과 함께한다_<아무르>

by 정아름


201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아무르 Amour> 2012, 미카엘 하네케


미카엘 하케네! 그의 영화는 어렵다.


안갯속에서 손을 더듬어가며 물건을 찾는 것 같다고 할까. 하지만 눈이 가려지니 손끝의 촉감이 사물의 실재를 더 잘 감지한다. 마치 지금껏 모르고 있던 새로운 것을 대하는 것처럼.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는 그의 영화에 비하면 오히려 명쾌하다.

왜 어렵나고? 상징이 무성한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와 달리 하케네의 영화는 담담히 현실을 그대로 전한다. 딱딱하고 건조한 독일 빵 브로트첸 처럼. 상징이 어렵다고? 아니, 맛이 강하면 느끼기 쉬운 법이다.)


아무르(Amour, 사랑), 사랑이야기?

<아무르>가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마치 빵집 이름이 '라벤더'라고 해서 그 가게를 꽃집으로 착각하는 격이다. 이 영화는 사랑을 다루지만, 사랑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르>는 사랑이 아니라 인생, 생각과 현실의 차이, 구속, 죽음, 자유를 말한다.


이 영화를 깊이 있게 이야기하려면 많은 것들을 논해야 하지만 또한 많은 것을 논하는 것이 오히려 (시적인)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줄일 수 있기에 주요한 몇몇 장면을 말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1. 병원에 가지 않음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다녀온 안느가 남편인 조르쥬에게 약속을 받는다.


‘다시는 날 병원에 보내지 마.’


루소는 말한다. ‘의사를 멀리하라. 그렇다면 당신은 평생 죽기 전 한 번만 아프게 될 것이다. (에밀)’ 그녀는 왜 치유를 거부하는가? 그리고 조르쥬는 왜 병원이나 요양원에 안느를 보내지 않고 자기가 직접 돌보는가? 로망 가리의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아주머니와 같이 그녀는 환자가 되기를, 즉 비정상인이 되기를, 자신의 자유와 삶을 병원에 바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일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죽음의 마지막에서 일상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안느(A)와 조르쥬(J)는 딸 에바(E)로부터의 사랑의 감정을 무기로 한 일상의 파괴와 구속을 거부한다.

딸이 어머니의 인생을 선택할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


#1 “E: 앞으로 어쩌실 거죠?


J: 앞으로도 지금과 똑같을 거야. 점점 더 나빠지겠지. 그러다가 어느 날 끝나겠지.

….

E: 좀 진지하게 대화할 순 없나요?

J: ‘진지하게’ 하자고? 네가 엄마를 모실래? 짐을 싸서 요양원으로 보낼래? 이런 걸 원하는 거냐? 그래! 진지하게 얘기를 해봐라!”


2. 안느가 지키려는 것


#2 조르쥬가 안느와 식사하면서 어렸을 적 자신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한다.


“A: 좋은데. 왜 그 전에는 이야기하지 않았어.

J: 안 한 거 아직 많은데.

A: 다 늙어서 이미지 망치려는 건 아니지?

J: 그럴 리가 있나.”


#3 조르쥬와 식사를 하던 안느가 갑자기 앨범을 꺼내 달라고 한다.


“A: 참 아름답다.

J: 뭐가?

A: 인생이. 길기도 하고. 기나긴 인생.”


안느는 자신의 과거를 지키고 싶어 한다. 조르쥬가 알고 있는 자신의 과거 그리고 일상. 그렇기에 자신의 과거를 지킬 수 없는 ‘생각과 현실’의 차이에서 그녀는 괴로워한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남편이 자신의 속옷을 올려주고, 이불에 소변을 보는 자신의 비참한 현실이 모든 과거의 기억을 집어삼키기 전에 그녀는 죽고자 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제자의 엽서에서 ‘멋지기도 슬프기도 했다’는 현실을, 간호사가 보여주는 거울을, 그녀는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없다.


조르쥬가 ‘우스운’ 장례식장에 다녀와보니 안느가 무엇인가를 하려다 쓰러져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4 “A: 더 살 이유가 없어. 그냥 그래. 앞으로 더 나빠지기만 할 거야. 왜 내가 ‘우리’를 괴롭혀야 해?

J: 날 괴롭힌 적 없어.

A: 거짓말 안 해도 돼, 조르쥬


J: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 안 해 봤어?


A: 당연히 해봤지. 하지만 생각과 현실은 달라. 날 더 편하게 해 주려고 애쓰고 있지만, 이렇게 더 살기 싫어. 날 위해서야. 당신이 아니라.

J: 그 말 안 믿어. 당신을 잘 알아. 내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그랬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건데?

A: 그 얘기로 골치 썩기 싫어. 피곤해, 침대로 가고 싶어.”


그녀는 이 현실이 당신이 아니라 우리를 괴롭힌다고 한다.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 죽음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녀는 조르쥬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다. 이것은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안느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조르쥬는 모르는 것 같다. 그것은 무엇인가?


3. 조르쥬의 깨달음과 죽음


안느는 이제 고통 가운데 있다. 이것은 그녀의 생각과 현실이 너무 어긋나 버려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하는 고통이다.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곁에는 조르쥬가 있다. 그는 안나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다. 안느는 평안함 가운데 있다. 갑자기 조르쥬는 안나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죽음에 이르게 한다.


왜 죽였는가?

그것은 안나에게 했던 자신의 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 안 해봤어?”


조르쥬는 안나가 말한 ‘우리’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는 안나의 과거와 일상을 지켜주고 싶다. ‘현실’에서 그녀가 파괴할 수 있는 과거뿐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안나에 대한 ‘생각으로부터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녀의 이미지로부터. 조르쥬도 이제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 그는 안나의 환상 안으로 들어간다.


4. 비둘기


두 번째 비둘기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냥 자유로운 밖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두 번째에는 그 비둘기를 담요로 덮어 잡았다. 그리고 곧 놓아주었다. 그는 자유는 넓은 생명의 공간을 나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알았다. 자유는 죽음과 함께 한다는 것을. 그 죽음 건너편에 있다는 것을.


현대 철학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현실의 ‘낯섦(Uncanny)’을 직시해야 한다고. 무엇을 밝혀내길 원하는가? 날카로운 검을 들고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용사가 되고 싶은가?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현실에 있는가, 아니면 생각에 있는가?

그도 아니면 현실과 생각 사이 그 어디에 있는가?


죽음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자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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