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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을 모르면 불행한 사람

by 언덕파
보그 잡지, 2월호 2025



매거진!

서점 가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바로 잡지 코너다. 눈과 손이 분주해진다. 표지 모델과 헤드라인을 순식간에 훑어본다. 그리고 당기는 대로 집어든다. 자주 보는 잡지도 있고 모델 따라 키워드 따라 즉흥적으로 픽 한다. 수많은 포토와 정제된 글들이 핫하게 편집되어 있다. 잡지라는 미디어의 매력이다. 요즘 트렌드가 무엇이고, 요즘 잘 나가는 인물은 누구고, 어떤 패션이 유행하고 요즘 핫이슈는 무엇인지 한눈에 보인다. 베스트셀러 코너도 둘러보지만 좋아하는 잡지는 꼼꼼히 읽어보고 꽂히면 바로 구입한다. 특히 보그 잡지와 골프 잡지는 매월 구입한다. 패션잡지는 읽는다기 보다 음미한다고 해야 하나.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감으로 받아들인다. 잡지를 자주 보는 이유가 또 있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간혹 소제목들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잡지는 내게 광고의 커닝 페이퍼다. 포토그래퍼들이 디렉팅 한 멋진 구도의 사진들만 봐도 눈이 즐거워진다. 가장 큰 이유는 광고하는 사람으로서 시각적인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잡지들이 한편을 차지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인기 월간지를 훑어볼 땐 반드시 그 달의 인물 인터뷰를 디테일하게 읽어본다. 인터뷰이가 자라온 환경, 자기 직업에 대한 태도, 앞으로의 꿈과 계획을 담담히 담아낸 내용을 읽다 보면 미디어에 보이는 그 사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대체로 평판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인터뷰어의 질문에 따라 반전의 대답도 슬그머니 나오게 만든다. 질문이 유니크하면 대답도 흥미로워진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대답은 전혀 달라지고 그동안 몰랐던 특별한 속내도 말하게 된다. 옆자리에 앉은 관객처럼 여러 페이지의 인터뷰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본다.



GD 인터뷰, 보그 잡지, 2월호 2025



최근 읽었던 인터뷰 내용은 우리니라 남성복 디자이너 1호 '장광효'의 인터뷰였다. 여러 매체를 통해 들었던 내용도 있었고, 몰랐던 그만의 삶의 태도도 알게 되었다. 꽤나 놀랍고 대가다운 내용들이었다. 우선 나이에 비해 동안이어서 놀랐다. 그의 일상 루틴이 반영된 결과인 듯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철저히 휴식한다는 점 그리고 더욱 인상 깊었던 부분은 큰 꿈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미 크고 작은 꿈들은 모두 이룬 탓일까. 꿈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굉장히 큰 꿈이라는 대목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패션에 대한 자신의 철학도 분명했다. '패션은 판타지다. 패션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하다. 멋 부리는 것도 80세까지다.' 공감한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샤넬이 그랬던가. 음식은 나를 위해 먹지만, 옷은 남을 위해 입는다라고.

팬데믹 직전, 도쿄 여행을 짧게 간 적이 있다. 긴자에 숙소를 잡았는데, 아침 출근 시간대에 잠시 스타벅스에 들른 적이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매장 안은 꽤나 붐볐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던 중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눈에 띄었다. 큰 키는 아니지만 섬세해 보였다. 작은 비즈니스 가방과 뾰족한 구두, 연한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네이비 컬러의 정장. 단정하게 빗어 넘긴 희끗한 머리. 슈트발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속으로 '와~' 감탄사가 나왔더랬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딱 떨어지는 중년 정장의 교과서 같은 차림이었다. 커피를 받아 들고나가는 모습이 일본말로 '간지'있어 보였다. 자신만의 스타일, 패션 감각, 헬스로 다져진 몸이 아니지만 보기 좋게 소화하는 자신감. 모닝커피를 마시며 긴자를 배회하다가 근처 서점에서 중년남성전용 패션잡지를 샀던 기억이 난다. 중년들만의 패션 스타일과 트렌드를 싣는 잡지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유독 멋진 슈트를 입은 남성들이 많았던 긴자. 그 멋진 중년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소식과 규칙적인 생활, 잘 자는 것"


범생이 같은 라이프 스타일이다. 아티스트들은 왠지 자유롭고 불규칙한 일상을 살 것 같은데 선입견이었다. 중년의 디자이너 장광효 그는 밤문화를 안 즐긴다고 했다. 나는 그게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멋보다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의 멋처럼 느껴졌다. 멋은 꾸밈이 아니라, 정돈이다. 패션은 눈에 보이는 태도다. 패션을 모른다는 건, 어쩌면 삶의 여백을 놓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패션이라는 특별한 영역을 개척해 온 그도 일상은 단순하다. 일과 일 외의 일상도 잘 디자인하는 사람이었다. 멋 부리는 것도 80까지라는 그의 대답이 경박스럽지 않게 맘에 든다. 능력 안에서 멋 좀 부리며 살고 싶다.



GD 인터뷰, 보그 잡지, 2월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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