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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생에는 자신만의 첫 홀이 있다

by 언덕파

골퍼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첫 홀 티박스에만 서면 맥박이 빨라지는 것.
공기도, 마음도 무겁고 기대 반, 두려움 반. 설렘 반, 긴장 반.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도 첫 홀에서는 긴장된다고 한다)

나름 어깨도 툭툭 풀고, 연습스윙도 몇 번 해보지만 머릿속엔 생각이 너무 많다.

‘레슨대로 칠 수 있을까?’
‘오른쪽은 절대 안 돼, 절대 안 돼, 절대 안 돼… 그럼 왼쪽?’

얼마나 잘 치나? 뒤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들,
동반자의 “형 먼저 치셔야죠~”라는 농담,
그리고 캐디의 “자, 준비되셨으면~”이라는 은근한 재촉.
그 모든 게 내 백스윙을 흔든다.

마음은 아직 집에 있는데, 몸만 골프장에 와 있다. 간 밤의 숙취도 여전한 것 같다.

늘 완벽한 준비 없이 코스에 도착한다. 우린 아마추어니까.


그렇게 휘두른 티샷은 당겨지거나 밀리거나,
드로우인지 푸시인지도 모르게 저 멀리 궤적을 그리며 굿바이 된다

그렇게 볼이 OB 말뚝 근처 어딘가로 사라질 즈음, 캐디의 선언은 단호하다.

"OB 티로 가실게요"
동반자 한 명이 정중앙에 볼을 떨군다. 그는 어깨를 활짝 펴고 마치 골프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굳 샷~” 소리를 들으며 카트를 향한다. 속으론 이미 오늘의 라운드를 즐기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둘러 카트에 올라타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아 뭐~ 첫 홀은 몸 풀기 아냐?”
하지만 마음속에선 벌써 ‘아 오늘 좀 꼬이는데…’ ‘또 이런 날인가…’ 자책과 불안이 미끄러진다.

그때 캐디가 외친다. “일파만파로 적을까요?” 그래서 우리 모두 파.

하지만 본인은 안다. 그건 파가 아니고, 트리플이라는 걸. 오비에, 러프에서 생쇼에, 퍼팅도 두 번.

첫 티샷 하나로 희비가 엇갈리고 결의가 다지고 내기를 걸었다면 복수의 불꽃이 타오른다.

결국 1번 홀 티박스는 그냥 출발점이 아니다. 오늘, 내가 어떤 골퍼로 존재할 지를 정하는 시작점.
누군가는 기대를, 누군가는 두려움을, 누군가는 “이제부터 즐기자”는 다짐을 올려놓는 그 자리.

매번 같은 코스라도, 매번 같은 사람들과 쳐도 1번 홀 티박스는 늘 낯설다.
익숙한 코스에서도 우리는 늘 ‘오늘의 나’로 다시 서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처음 겪는 일 앞에서는 늘 서툴고, 예상과는 다르게 휘어 나가고, 때로는 페어웨이를 벗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첫 홀 첫샷 하나로 하루를, 인생을 규정할 순 없다.

밀린 티샷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세컨드 샷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자신만의 첫 홀에 선다.

하지만 첫 홀 티박스에서 비틀대더라도 괜찮다.

다시 걷고, 또 스윙하면 된다.



1.jpeg 언더파 말고 언덕파. 청주 세레니티CC 티박스에서.






[언덕파의 골프팁 – 첫홀 티박스 루틴 편]

첫 홀 티샷이 꼬이면, 이상하게 그날 하루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들이 첫 홀을 망치는 이유는 단 하나.
제대로 몸을 풀지 않아서입니다.

오래간만에 만난 동반자들과 만나 수다 떨다 보면, 어느새 티오프 시간.
캐디가 “자, 이제 치셔도 됩니다!” 외치면,
허겁지겁 티를 꽂고, 대충 연습스윙 몇 번 휘두르다 티샷.
볼은 슬라이스, 마음은 혼란, 발은 벌써 OB티로 향하죠.

팁은 간단합니다.
“티박스 오르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몸을 풀어놔라”
동반자와 얘기하며 목 돌리기,
카트 잡고 어깨 회전,
티박스로 걸어가며 햄스트링 스트레칭.
누가 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깨워야 합니다.

예전엔 캐디 구호에 맞춰 4명이 단체체조도 했지만
요즘엔 그런 광경 보기 힘들잖아요.
당신의 첫 샷은 이미 티오프 10분 전부터 시작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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