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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작가 Sep 29. 2020

민감한 나에 대하여

에세이

나는 신체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람이다.

나는 어릴 때 집 밖에 나가면 음식을 잘 못 먹었다. 그래서 급식도 깨작깨작 먹다가 버리거나 버리는게 혼날 것 같으면 애초에 조금만 받았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셨다. 내가 학교에서 먹는 걸 보면 급식비가 너무 아깝다고.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듣는다고 억지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거의 매일 급식 시간에 깨작깨작 거리며 학교를 다녔다. 신기한 것은 집에 들어오면 밖에서 보다 음식을 잘 먹었는데 똑같은 피자를 시켜먹어도 친구 생일파티에 가서는 깨작거렸고 집에서 시켜먹으면 잘 먹었다. ('잘 먹었다'는 표현은 상대적인 표현으로, 또래 친구들에 비하면 내가 먹는다는건 잘 먹는 축에도 못 끼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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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면서 초등학생 때 보다는 식욕이 생겼는지 밥알을 세는 수준에서는 탈피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급식 시간만 되면 왠지 모를 부담감, 불안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걸 별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언제부턴가 이러한 내 자신이 마음에 걸렸다. 성인이 된 후 나는 상담을 받으러 다니면서 나의 불안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당시에 상담 주제가 '밥을 잘 못먹어서 고민입니다.'는 아니었다. 다른 이유로 찾아갔고, 큰 틀에서 보면 '불안'이 상담의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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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간의 상담을 통해 내 불안의 이유를 찾아가다보니 어릴 적에 내가 왜 그랬는지 어느정도 감이 잡혔다. 나는 어릴 때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며 살았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강했다. 그렇게 된 이유로는 가정 환경이나 부모님의 성향, 나의 타고난 기질적인 특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래서 나는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늘 긴장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다고 해야할까? 물론 그때는 내가 긴장해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긴장한 상태에서는 밥이 잘 넘어갈 수가 없다. 며칠을 굶지 않는 이상 식욕이 생기지 않을 수 밖에. 그래도 그나마 중학생이 되어서는 성장기이다 보니 초등학생 때보다는 잘 먹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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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나는 음식을 먹을 때 깨작 거리는 사람에게 조금 정이 간다. 금방 배부르다고 하는 사람에게도. 그런 사람에게 억지로 더 팍팍 먹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게 혹시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보통은 잘 먹는 사람이 보기 좋다고들 하는데 나는 밥알을 세는 사람도 좋다. 물론 상대방이 음식을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면 내가 그러라고 말한들 잘 먹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많은 걸 의식하고 애쓰며 사는 사람이구나. 그런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구나. 언젠가,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는 없다고, 마음으로 느낄 때가 되면, 그 때는 잘 먹을 수도 있겠지. 나도, 저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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