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작가 Sep 29. 2020

걷는 길

자주 지나다니던 길이 있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 걸으면 20분, 빠른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리는 길. 하지만 대체로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길이다. 여름이면 덥다고, 겨울이면 춥다고 걷지 않던 길이다. 봄이 되면 벚꽃이 피었다고 한 번쯤 걷고, 초가을 저녁이면 모처럼 서늘한 공기를 느끼겠다며 귀뚜라미 소리를 배경 삼아 한두 번 걷던 길이다.


그렇게 별 이유가 없다면 버스를 타고 5분 만에 스쳐 지나가던 그 길을 올해는 유난히도 자주 걷는다. 모두가 겪고 있는 오늘날의 사태로 인해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고, 그래도 살아가려면 뭔가는 해야만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걷는 것-어쩌면 유일할지도 모르는 그 일은-바로 산책이었기에 나는 그걸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같은 길을 거의 매일 걷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길가에 심긴 나무들을 마주했다. 이제 그 나무들은 내가 매일 지나치는 나무들이었다. 갈 때 한번, 돌아올 때 한번 마주치는 나무들. 나무가 생긴 게 다 비슷해 보이지만 매일 걷다 보면 구분이 되는 나무도 몇몇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모퉁이를 돌아 잠시 멈춰서야 하는 곳에 서 있는 나무라던가, 다른 나무와는 다르게 인도 쪽으로 가지를 추욱 늘어뜨리고 있는 나무라던가, 유독 생생한 꽃을 피우는 나무라던가. 외웠다기보다는 외워진, 아니 그보다는 친숙해져서 반가운 나무들이었다.


그렇게 나무들은 서로의 차이를 품은 채로 함께 물들어갔다. 3월에는 길가의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잎들이 돋아났다. 4월이 되면서부터 푸른 잎 사이로 몽우리가 나오더니 이내 벚꽃은 활짝 펴서 바람에 흔들거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며칠이 흐르자 벚꽃잎은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아름다워서 나는 길을 지날 때마다 그저 떨어지는 꽃잎의 낙하를 바라보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 마주해서 그런 걸까. 예년과는 달리 벚꽃이 지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꽃이 지는게 아쉽지도 않았다. 피고 지는 과정을 매일 함께했기 때문일까. 얼마나 찬란했고, 얼마나 아름답게 졌는지 알아서, 그래서 아쉬움이 덜했던 걸까. 아니면, 꽃이 지고 있음을 체감하며 걸었던 시간들이 쌓여 보내줄 수 있는 마음이 되었나. 문득 지고 있을 때 내가 곁에 있어 주지 못했던 사람이 떠올랐다. 만약 그때 당신이 지고 있음을 알았더라면,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 했더라면 이렇게 지금까지 아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무는 초록 잎이 무성하다. 떨어진 꽃의 빈자리는 푸른 빛이 채워 반짝이고 있다. 꽃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은 초록 잎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잠시나마 살아갈 힘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이 여름이 영원히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록 잎이 물들어 낙엽이 되는 계절이 되면 내 마음도 그것을 따라 땅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나는 계속 이 여름에 머물고 싶다. 꽃이 아니라도 좋으니, 시들지 않는 잎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묵독의 외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