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운 Sep 23. 2017

바르셀로나에 우리 집이 생겼다.

우리가 구한 집은 구시가지 좁은 골목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의 2층. 지은 지 수백 년 넘은 건물이라는데, 예전에는 성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페인에서 2층segundo은 한국식으로 따지면 4층 높이. 총 6층짜리 건물인데 골목 맞은편 건물이 너무 가깝게 붙어 있어 햇살은 하루 중 아주 잠깐 든다. 집의 한쪽 면 대부분이 테라스와 창문인데도 그렇다.


방 안으로 빛이 드는 시간은 점심 무렵, 손바닥 두 개 정도 면적밖에 되지 않는다. 좁은 테라스는 한 명이 서면 꽉 찰 정도로 위태로워서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는 잠깐도 서 있기가 어렵다.

게다가 맞은편 건물 테라스는 손만 뻗으면 닿을 듯 가깝다. 처음 이사한 날, 나는 앞집 테라스에 있던 철제 사다리가 몹시 의심스러웠다.


"저 사다리를 펴면 우리 집 테라스까지 충분히 닿을 거 같은데, 괜찮을까?"


오래된 나무문이라 문을 잠가도 밖에서 힘주어 밀면 금방 열릴 것이 분명한데, 저 집에 사는 사람을 믿어도 될까. 며칠 내내 그 집 거실에 있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늘 애니메이션 채널에 맞춰져 있는 걸 지켜보고서야 마음이 놓였는데, 동시에, 우리 쪽에서 저 집 텔레비전 화면이 다 보일 정도라면 저 집에선 대체 우리 집이 어디까지 보이는 건지 불안해져 당장 창문에 붙일 포스터를 샀다.



바르셀로나의 임대는 대부분 월세 개념이다. 보통 두세 달 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걸고, 한 달에 한 번씩 임대료를 낸다. 나중에 집을 정리할 때는 부동산에서 와서 집 상태를 확인하고 보증금을 돌려줄지 말지 결정한다.

벽의 작은 얼룩 같은 걸로도 트집 잡힐 수 있어서 보통 한 달치 정도는 못 받는 셈 쳐야 한다는데 심지어 우리 집은 대부분의 가구가 갖춰져 있는 상태. 보증금을 최대한 돌려받으려면 가구와 집기 상태를 그대로 잘 보존해야 한다.

소파, 침대, 수납장 등 원래 있던 가구를 그대로 쓰기로 하고, 자잘한 짐은 박스에 넣어 침대 아래에 잘 넣어두었다. 짐을 늘리고 싶지 않았지만, 책상은 필요할 것 같아서 이케아 걸로 하나 장만해 거실에 두었다. 책상 한쪽에는 남편 데스크톱을 두고, 남은 공간은 식탁으로 쓰게 될 것 같다.


집 열쇠는 두 개. 바르셀로나는 디지털 도어록을 쓰는 집이 거의 없어서 항상 1층 현관 열쇠와 우리 집 열쇠 두 개씩을 들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문을 닫는 순간 자동으로 잠기기 때문에 열쇠를 깜빡 집에 두고 나오면 난감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열쇠 수리공을 부르면 10만 원 넘는 돈이 들고, 그나마 일요일에는 대부분 일을 하지 않아서 밖에서 자는 일도 종종 생긴다고 누군가 겁을 주었다.

그런데 또 우리 집 문은 허술한 편이라 책받침 같은 걸로 문틈을 살살 밀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열쇠로 한 번 더 잠가야 안전하다는 거였다. 도둑이 들 가능성보다 내가 열쇠를 두고 외출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으니, 다행인 걸로 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 구시가지는 수천 년 전 로마 시대에 형성된 동네로 크게 보른 지구El Born, 고딕 지구El Barri Gothic, 라발 지구El Raval로 나뉘는데 우리 집은 그중 보른 지구에 위치해 있다.

보른 지구는 언젠가 한 매체에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이웃이 사는 동네'에 뽑힌 곳으로, 예술가들 작업실이 많아서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다락에서 작업한 것을 1층 매장 에서 파는 작고 감각적인 공방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웃들이 정말 섹시한지는 차차 알아갈 일이다.



1층 현관을 열고 나오면 바로 앞에 맛있는 햄버거 가게가 있고, 오른쪽으로 나가 왼쪽 모퉁이를 돌아 몇 걸음만 가면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맛있는 크루아상을 파는 카페가 있다. 재래시장은 걸어서 7분. 슈퍼마켓은 걸어서 3분. 5분 거리에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공원인 시우타데야 공원Parc de la Ciutadella이 있고, 20분 정도 걸어가면 바르셀로네타해변Playa de la Barceloneta이 나온다.


나와 남편, 그리고 고양이 제제까지 우리 세 식구는 이 오래된 동네, 작고 불편하지만 근사한 유럽식 아파트에서 2년 동안 지내게 됐다. 바르셀로나에 우리 집이 생겼다. 우와, 이거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이다.

이전 01화 제제야, 바르셀로나에 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