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운 Sep 16. 2017

제제야, 바르셀로나에 가자

기대감과 두려움 속에서 바르셀로나행을 결정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부모님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이 놀라지 않으시고 잘 다녀오라고 말씀해주셨다. (물론 '반드시 2년 안에 돌아와야 한다'는 당부는 잊지 않으셨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랬다.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도, 제주도로 이사하겠다고 했을 때도, 우리가 미리 걱정한 것만큼 반대하지 않으셨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독립적인 딸이었다. 대학 입학 이후부터 집에서 용돈과 등록금을 받지 않고 내가 벌어서 학교를 다녔고, 서른이 넘어서는 경제적, 정신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하겠다고 원룸에서 혼자 살아보기도 했다. 성인이 된 후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는 조금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 기대를 충족시키며 그 품 안에서 살아온 아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사실은 시부모님 설득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미리 걱정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흔쾌한 반응이 돌아왔다. 망설일 이유가 점점 사라졌다.

제제는 남편이 컴퓨터를 할 때면 꼭 키보드 옆에 눕는다.


이제 제제에게 이 사실을 알릴 일이 남았다. 제제는 2012년 봄에 태어난 털이 하얗고 긴 고양이. 태어난 해 여름, 아직 아기였을 때 아는 분의 빌라 주차장에서 구조되어 우리 집에 왔다. 남미를 여행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친정 부모님 댁에 맡겼는데, 바르셀로나에는 정해진 거처가 있으니 우리는 함께 갈 수 있다.


"제제야, 언니랑 형이랑 바르셀로나 가서 살자."

"야옹."

"같이 갈 거지?"

"야옹."


대답 잘하는 제제는 물을 때마다 "야옹" 했다. 

우리는 그 답이 "응"하는 긍정의 대답이라고 믿기로 했다.


"제제야 고마워. 우리 바르셀로나 같이 가는 거야. 그러려면 동물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고 채혈도 해야 하고 비행기도 오래 타야 하는데, 우리 제제 잘할 수 있지?"

"야아옹."


반려동물 입국에 대한 기준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스페인은 '광견병 예방 접종'과 '광견병 항체가 검사 결과'를 요구했다. 항체가 검사 결과가 기준 수치 이상이라는 걸 확인하고도 3개월간 한국에 더 체류한 뒤에야 스페인에 입국할 수 있다. 주사를 맞고, 채혈을 하고, 서류를 준비하고, 우리 둘의 비자 준비보다 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항체가검사 결과 때문에 출국 날짜를 두 달 정도 미루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한순간도 제제를 두고 우리끼리 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는 길이 험난해도 우리는 가족이니까. 제제도 말은 못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한 팀. 어디든 함께 간다.


"야옹."


반려동물도 비행기에 탈 수 있으나 케이지까지 합친 무게가 기준 이상이면 기내에 함께 타지 못한다. 제제는 6kg에 육박하는 건장한 고양이라, 케이지 무게를 합치면 10kg이 훌쩍 넘었다. 그래서 함께 타는 건 불가능하고 화물칸에 타야 한다. 대부분의 비행기는 온도 조절이 가능한 동물용 화물칸이 따로 있는데, 제제는 그곳에 탄다. 직원이 직접 케이지를 들고 타고 또 직접 데리고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없다고들 했지만, 나는 제제가 처음 해보는 장시간 비행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며칠 전부터 소화가 안 될 지경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직원이 제제가 들어 있는 케이지를 들고 사라졌다. 우리가 탄 비행기를 제제도 잘 탔는지, 비행기 소음이 시끄럽지는 않은지, 춥거나 무섭지는 않은지, 잘 자고 있는지, 배변은 했는지, 아니면 참고있는지, 옆에 다른 동물 친구는 있는지…. 내내 걱정을 하느라 정작 바르셀로나 생활에 대한 마음의 준비 같은 건 할 여력이 없었다.

"제제야,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에 살러 가는 거야. 너 혼자 어디 보내는 거 아니야. 무서운 데 가는 것도 아니야. 우리 같이 가는 거야. 조금만 참아줘."


미리 제제에게 수없이 이야기해 주었지만 사실 알아들었을 리 없으니까. 깜깜하고 시끄럽고, 낯선 냄새가 가득한 화물칸에서 제제는 무슨 생각을 할까. 비행기에서 나는 내내 내 발밑 어딘가에 있을 제제와 대화를 시도했다.

한국 집에서 출발한 지 스무 시간 만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고, 부친 짐이 다 나왔는데 제제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어둑어둑하고 낯선 공항에서 우리는 여기저기로 제제를 찾아다녔다. 어디로 나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경유지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지 못한 건 아닐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가 서로에게 들릴세라 애써 차분한 표정으로 공항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때 공항 저쪽 어둠 속에서 '야옹'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후다닥 그쪽으로 달려가니 직원이 제제의 케이지를 실은 카트를 끌고 나온다.

"야옹야옹"


제제 목소리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그만 안도감에 엉엉 울어버렸다. 


"미 갸토… 베인테 오라스(내 고양이 스무 시간)… 엉엉엉"


하고 울면서 더듬더듬 스페인어로 말하자 아까부터 우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걸 지켜보던 공항 직원들이 다 같이 그렁그렁 울 것 같은 눈으로 웃는다. 

제제는 우리를 보자마자 더 소리를 높여 야옹거렸는데, 이때 야옹은 분명 '욕'이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야옹!"


출국장에서 기다리던 동생과 만나 택시를 탔다.


"고양이 데리고 택시 타도 괜찮을까?"

"여기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제야 바르셀로나에 온 것이 실감 난다.


스무 시간 넘게 케이지에 갇혀 있던 제제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태연하게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똥을 쌌다. 와락 안심이 된다. 제제가 제일 먼저 바르셀로나에 적응했다. 이제 아무 걱정이 없다. 우리야 뭐, 천천히 적응하면 될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