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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Sep 30. 2017

성장하는 건물을 지켜보는 일

10여 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 바르셀로나에 처음 왔다. 유럽의 남서쪽 이베리아 반도에 속한 스페인은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빡빡한 유럽일주 여정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행들과 밀라노 기차역 앞 맥도널드에 앉아 긴급회의를 했다 .


"바르셀로나까지 가려면 1인당 20만 원씩은 더 있어야 해. 아무래도 무리야."

"하지만 나중에 한국에서 바르셀로나에 가려면 몇백만 원은 들 테니까 지금 다녀오는 게 낫지 않을까?"

"맞아. 우리가 언제 또 여기까지 올 수 있을지 모르잖아."


결국, 우리는 밤기차를 타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박 2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1월이었고 추웠던 파리나 런던에 비해 날씨가 좋아 늘 입고 다니던 두꺼운 점퍼를 벗고 니트 하나만 입고 다녔다는 것. 마트에서 큰 사이즈의 싸구려 감자칩을 사서 밥 대신 먹었다는 것. 그리고 사그라다파밀리아(La Sagrada Familia, 성가족 성당)의 조각들이 아주 인상적이라 당시 들고 간 200만 화소짜리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엄청 많이 찍었다는 것. 이 세 가지 기억만이 선명하다.


한창 공사 중이던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입장했을 때, "우리 살아생전에 이 성당의 완공을 못 볼 것이다"라는 설명을 들었다 .

"우와, 어떻게 성당 공사가 그렇게 오래 걸릴 수 있지?"

놀라움에 성당 구석구석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던 기억이 난다 .



'언제 우리가 다시 바르셀로나에 오겠어' 하던 것이 무색하게 나는 이 도시에서 살게 됐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2026년에 완공이 된다는 이야기. 처음엔 믿지 않았다. 10여 년 전에 왔을 때 완공까지 100년은 더 걸린다고 했는데 갑자기 10년 안에 짓겠다니. 게다가 얼핏 봐도 아직 절반도 채 못 지은 것 같은데!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2년 처음 공사가 시작된 성당이다. 현재까지 130년 넘는 시간 동안 공사 중인데, 총 열여덟 개 탑 중에 여덟 개만 완성되었다. 아직 열 개의 탑이 올라오지 않았다. 100년 넘게 겨우 탑 여덟 개 지었으면서 남은 몇 년 동안 나머지를 다 짓겠다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이곳 분위기로 볼 때 2026년에 완공을 기어이 할 것 같다. 2026년은 가우디 선생이 돌아가신 지 딱 100년 되는 해다. 100주년에 맞춰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완공한 후, 가우디 선생에게 ‘짜잔’ 보여드리고 싶다는 바람. 100주년 행사와 성당 완공 행사를 한꺼번에 하고 싶다는 열망.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이런 의지로 보건대, 우리는 아마 살아생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공을 목격하게 될 것 같다. 


이제, 10년 남았다. 다섯 살 아이는 열다섯 살이 되고, 스물다섯 살이 서른다섯 살이 되고, 쉰다섯 살이 예순다섯 살이 되는 해.



운이 좋게도, 나는 매일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간다. 가우디 투어의 가이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제까지 없었던 조각을 목격하고, 조금씩 더 높이 올라가는 탑을 지켜본다. 지루할 틈이 없다.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그 대상에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성당이 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점점 나도 모르게 이 성당에 몰입하고 있다. 아니, 건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다니. 건물을 사랑하게 되다니!

"완공되면 그때 가서 봐야겠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가능한 10년 안에, 공사가 끝나기 전에 와."

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몇십 년 안에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몰디브도 아니고, 미국과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급격히 변하고 있는 쿠바도 아니지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한쪽 면은 지어진 지 100년도 더 지나 세월의 때가 탔고, 한쪽 면은 완성된 지 이제 겨우 10년 지나 무척 현대적이고, 한쪽 면은 아직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지 않아 철근 콘크리트가 보이는 성당. 가운데로는 커다란 크레인이 우뚝 서 있는 성당. 성당 외벽을 따라 한 바퀴 크게돌면 최소 성당 세 개쯤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성당. 완성되고 나서의 모습도 충분히 화려하겠지만, 완성 전의 불완전한 모습이 주는 아름다움은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으니까 한. 번 완성되고 나면 미완성의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으니까.



성당이 완공되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한 번쯤은 꼭 다시 찾고 싶다. 그때, 지금보다 열 살 더 나이 먹은 나는, 네가 지어지던 144년의 시간 중 몇 년간 너의 옆에 있었다고, 어느 한때 내가 너를 꼼꼼하게 지켜봤었노라고, 다 자란 성당 앞에 서서 이야기해야지. 성당이 완공되는 날 내가 어디에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나는 이곳에 있다. 그 사실이 실감 나면, 그때마다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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