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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Oct 07. 2017

소매치기 조심하세요

"바르셀로나 사람들 중 반은 소매치기일지도 모르겠어."


이곳에 사는 친구가 가방을 통째로 소매치기 당한 뒤 씩씩거리며 말했다. 이런 말은 정말 미안하지만, 어쩌면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옆 테이블에서 멀쩡하게 커피를 마시던 사람이 어느새 내 가방을 들고 사라지기도 하고, 관광객이 찾지 않는 평범한 동네 바에서 테이블 위에 둔 휴대폰이 없어지기도 하는 곳이다. 나는 집 바로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서도 옷에 연결한 줄을 휴대폰과 단단히 묶고 나간다.



내가 처음 소매치기를 경험한 건 바르셀로나에 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바르셀로나에 먼저 와 있던 친구와 카페에 앉아 밀린 수다를 떠는 중이었는데, 덩치가 큰 남자가 옆으로 다가와 "배가 고프다. 도와 달라"로 추정되는 문구를 삐뚤삐뚤한 손글씨로 쓴 종이를 내밀었다. 경계심이 발동한 우리는 "미안하지만 돈 없어요"라고 대답하며 손을 저었다. 그는 조금 기분이 나쁘다는 듯한 표정으로 카페를 나갔고, 우리는 하던 이야기를 이어 하면서도 내심 그 표정이 신경 쓰였다.

그가 나간 뒤 겨우 1~2분 지났을까, 친구의 휴대폰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카페 테이블에 무심코 두었던 휴대폰 위로 종이를 올리고, 우리가 그 사람을 경계하는 사이에 종이와 함께 휴대폰을 가져간 것. 그제야 그의 연기하듯 과장된 표정과 어색하게 축 처진 어깨가 이상했다 싶다.

바로 우리 눈앞에서 이제 막 약정이 시작된 신형 아이폰이 사라졌다.



여행 온 사촌 동생은 '자라' 매장에서 쇼핑을 하는 중에 이상하게 자기 있는 쪽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단다. 이 사람들 왜 이러지 하고 말았는데 그곳을 벗어나고 보니 가방 앞주머니에 따로 넣어두었던 하루 치 여행 경비가 없어졌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자꾸 맥주나 마리화나를 사라고 권유하더란다. 관심 없으니 가라고 겨우 보내고 나니 휴대폰이 없어졌다 했고, 바르셀로나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친구는 바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사람이 거의 없는 골목을 걷다가 갑자기 음악이 안 들려서 보니, 소매치기가 휴대폰을 들고 달아나고 있었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구글맵을 확인하며 거리를 걷는데 달리던 자전거가 아이폰을 낚아채 갔고, 또 다른 친구는 카페에서 잠깐 다른 일에 집중하는 사이 바로 옆에 두었던 핸드백이 통째로 없어졌다. 어떤 여행자는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는 사이, 카운터 옆 캐리어 위에 둔 카메라 가방이 사라지기도 했다.


당하고 나면 다들 의심스러웠던 정황을 떠올리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 그러니 바르셀로나에서는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은 상황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기 전에 내 짐부터 챙겨야 한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하게 걷고 싶어서 지갑이랑 휴대폰에 모두 줄을 매달아 몸에 연결시키고 다닌다. 누군가 보기엔 유난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래도 마음이 편한 게 좋다.



바르셀로나 사람들 모두를 소매치기로 의심하는 한편, 소매치기로부터 나를 구해준 것도 사실 이곳 바르셀로나 사람들이다.

"지금 같이 엘리베이터 타는 사람 소매치기니까 지갑 확인해요."

지하철역 앞 신문 가판대 아저씨가 손짓 발짓으로 급하게 알려준 이야기.

"저 사람 소매치기였어. 너 큰일 날 뻔했어. 이 길에서 자주 보이는 자식이야."

길을 막고 시간을 물어보는 남자를 경계하며 지나치는 나를 보고 기념품 가게 청년이 건넨 말.

"저기 있는 저 여자아이 소매치기니까 조심하세요."

언젠가 버스 안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서툰 영어로 빠르게 말하고 서둘러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에 우리는 소매치기고 뭐고 기분이 좋아져서 한참 웃었다.


어떤 여행객은 낮에 소매치기를 당하고 우울해진 기분을 풀고자 저녁에 바에 가서 놀다가 옆 테이블 사람들과 친해졌단다. 그러다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아, 나 낮에 소매치기 당했잖아."

"언제? 어디서? 뭘?"

구체적으로 묻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란다. 한참 통화를 하고 들어오더니 하는 말.

"친구들한테 연락해봤는데 네 것은 없대."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이야기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욕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다.



한 친구는 아침 일찍 거리를 걷는데, 소매치기가 달려와 손에 쥐고 있던 아이폰을 낚아채 그대로 뛰어 사라졌다고 한다. 텅 빈 거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도와주세요!”를 크게 외쳤는데 저 멀리서 스페인 남자가 다다다 달려오더니 친구를 휙 지나쳐 소매치기가 사라진 방향으로 쫓아가더란다. 설마 소매치기를 잡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은 채 다리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아 있는데, 저 멀리서 그 남자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단다. 한 손에 친구 아이폰을 들고.

"고마워요, 연락처 알려주세요, 꼭 답례하고 싶어요."

친구가 물어봤지만, 그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손을 흔들며 가던 길을 갔단다.


스포츠용품 가게에서 100유로짜리 가장 저렴한 자전거를 사고 나서 자물쇠를 저렴한 것들 중에서 고르고 있자니,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주변으로 몰려와 그거 사면 안 된다고, 더 좋은 거 사라고 말며,

"아키 바르셀로나(Aquí Barcelona, 여기 바르셀로나야)!"

를 외쳤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사이에 회자된다. 우리는 그 후로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외친다.

"아키 바르셀로나!"


이 사람들, 내숭 같은 건 떨지 않는다. "소매치기? 우린 모르는 일이야" 하고 시치미 떼지 않는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도와줘야 하는 상황에선 발 벗고 도와준다. 그러니 소매치기만 당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사람들이 또 없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아직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무사하기를, 끝내 이곳 사람들을 귀여워만 할 수 있기를. 오늘도 지갑과 아이폰을 꽁꽁 묶고 외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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