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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독노트

나는 어디에 있는가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유럽을 지방화하기>를 읽고

by 정다운



처음엔 책이 얇아서 마냥 좋았다. 어리석게도 금방 읽겠다고 생각했다. 한 장 읽고 나면 바로 한 장을 잊어버리기 전까지는… 하지만, 지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읽고 읽고 또 읽다 보면 내 것이 남는다. 다행히 몇 장 되지 않으니 여러 번 읽을 수 있다!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1장과 10장을 연거푸 읽었다. 하지만 결국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속속 올라오는 독후감을 읽으며, 와, 진짜 이번 독후감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외출할 때마다 가방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유럽을 지방화하기>를 챙겨 넣고 틈만 나면 읽었고, 집에 있는 동안에도 거실로 침실로 부엌으로 화장실로 마치 핸드폰인양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다니며 펼쳤다.


읽을수록 두꺼워지는 책을 꿋꿋하게 여러 번 읽어내며 나에게 남은 것은, 이 이야기를 내 것으로 만들고 나를 세우고, 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가 ‘유럽’에 있는지, ‘인도’에 있는지 우선 그걸 알아야 한다는 거다. 아니, 그걸 몰랐냐고? 몰랐다. 그러니까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유럽을 지방화하기> 이 두꺼운 이야기를 여러 번 읽으며 알게 된 것은 내가 여태 그걸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주의에 익숙해진 채 의심하지 않고 수긍하며 살아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역사주의의 관점에서 ‘아직 아님’의 시간에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늘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골몰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어떤 사람들과 잘 지내지?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왜 불안하지? 우리 가족은 왜 이러지? 나는 왜 혼자 있고 싶지만 동시에 어울리고 싶지? 그런 것들에 대해 늘 생각했고 그것을 중심으로 글을 썼다. 주변을 살폈지만, 주변이란 결국 모두 나를 둘러싼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이 년 사이 읽는 책이 달라지면서 생각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여전히 나에 대해 생각하지만, 여기서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내가 있는 곳, 내가 있는 시간에 대한 것이다. 즉, 나의 포지션이 어디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정확하게 아는 일이 실은 쉽지 않다. 제주에 산지 10년이 훨씬 넘었으면서도 나는 내가 서울에 있다고 생각하며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에 감정 이입을 한다. 유럽에서 단 2년을 살아봤으면서 종종 내가 유럽에 있다고 여기며 유럽 사람들의 생각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왜 나는 ‘서울'과 ‘유럽’에 감정 이입을 해 왔을까?


여기까지 쓰고, 한 번 더 책을 펼쳐 읽고 돌아왔다. 또다시 반성문이 되어가고 있던 이 독후감의 방향을 조금 틀어야할 것 같다. 내내 나에 대한 글을 써왔다고 생각했다. 늘 똑같은 내 이야기를 계속하는 일이 지겨웠다. 나는 내가 지겹고, 나는 고갈되고 있고 어쩌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이 내 이야기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금, 처음으로, 한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남미 여행기를 썼고, 단기 거주 동양인의 입장에서 유럽 생활기를 썼다. 제주 이주민 입장에서 제주에 대한 책을 썼다. 나는 그대로 있고 내가 딛고 있는 땅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언제나 땅은 그대로 있었고 위치가 변한 건 나였다. 어디에 있든 항상 조심스러웠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느라 묻지 못하고 하지 못한 이야기가 셀 수없이 많았다. 그래서 종종 나는 내가 못마땅했지만, 그 조심스러움은 어쩌면, 내가 인식하지 못했지만 내 위치성을 알고 있던 거에서 왔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정글 수업 때 <사당동 더하기 25>와 <최선의 삶>을 읽고 쓴 독후감에서 “내 이야기가 지겨운,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야 할까, 내 이야기를 다른 형식으로 풀어내야 할까.”라고 썼다. 저 독후감을 쓴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디로 가야 할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고. 내 안에서 벗어나 나의 바깥에 서서 일단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자고. 그것만으로 조금 활기찬 기분이 든다. 오랜만에 다음에 내가 쓸 이야기가 조금 궁금해졌다. 정글과 함께하면 함께할수록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는데, 지금 처음으로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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