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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Dec 26. 2022

잡문 1

안정은 권태의 전주곡이 아닌가 한다. 어떨 땐 그래도 권태가 불안보다 낫지 않은가 싶다가도 권태는 예상 가능함의 다른 말이 아닌가 싶어 이내 마음을 돌린다.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계열에서 확실한 건 태어났고 살아가고 죽을 거고. 그 외 확실하거나 예상 가능한 건 대체 뭐가 있을까. 이 세 가지 사실의 바깥을 채우는 건 불안이란 공기가 아닐지. 불안을 들이쉬고 내쉬기. 다만 내 날숨이 널 불안케 하지 않기. 네 불안을 있는 힘껏 들이마시기.


불안은 유목민의 언어, 자연의 언어가 아닌가 한다. 인간의 역사는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역사였다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초원을 밭으로, 자연을 문명으로. 누군가가 돈을 번다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불안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건 내 업무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도 하고, 돈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는 점에서, 역사는 지금도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불안을 없애야 한다는 것도 강박이라면 강박이겠다.


10년 전 자취할 때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는 길마다 사 왔던 그때 새우깡 한 봉지,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혀와 턱을 기계처럼 움직이면서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던 때. 전날 먹고 남은 페퍼로니 피자 두 조각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크러스트는 무말랭이 마냥 말라비틀어졌고 그러든가 말든가 입안 가득 구겨 넣곤 별생각 없이 모니터를 바라보던 대학생 때. 불안이 해소될 미래만 바라보던 그때. 미래엔 불안이 해소되길 바라던 그때.


안정은 긍정적인 뉘앙스인데 반해 불안은 왠지 부정적인데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 불안을 껴안고 오래간 잊어왔던 모국어로 삼으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요새 즐겨 듣는 High Tide, Storm Rising과 같은 세계일까. 거센 바람과 파도 앞에 나부끼는 꽃, 깃발.


불안의 더 나은 이름은 미지가 아닐지. 알지 못함. 알 수 없음. 모름. 그래. 우주처럼 넓은 그곳이 바로 내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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