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지? 이번 명절에 집에 내려와?" "응 가지. 이번에도 당일날 아침에 스벅에서 보면 될까?" "푸하ㅋㅋㅋ 그러자~ 명절마다 보는 우리♡"
나와 A는 약 2년 전부터 명절 당일 스타벅스 회동을 진행 중이다. 명절 당일에는 쉬는 카페도 많고, 오후에 여는 카페도 많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 동네 스타벅스는 호텔 1층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명절 당일도 7시부터 문을 연다. A와 나는 초등학교, 고등학교 동창이고, 동네가 근처여서 주로 명절에 만난다. 둘 다 시집을 간 다음에는 명절 다음날에 주로 만났다. 하지만, 둘다 이혼한 지금은 명절 당일 아침에 만난다.
명절 아침에 도망을 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그런데 남자들도 이혼하면 명절 아침에 도망쳐 나오나? 우리처럼 ㅋㅋㅋㅋ"
"알 수 없다 ㅋㅋㅋㅋㅋㅋ 이혼한 남자가 없어서 ㅋㅋㅋㅋ"
그렇다. 우리가 아는 이혼한 남자는 그녀의 전남편과 나의 전남편뿐이라서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다.
우리 집은 큰집이다. 엄마는 엄청나게 많은 제사를 지내셨고, 명절에는 온 가족이 우리 집에 모여 차례를 지낸다. 중고등학교 때는 명절에 불만이 많았다. 다른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명절에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는데 나와 여동생은 집에서 제사 준비를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를 열심히 해 놓고 친척 어르신들께서 오시면 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을 했다. 엄마는 명절이 있는 주는 1주일 내내 주방에서 계속 서서 일을 하셔서 서빙은 온전히 딸들의 몫이었다. 서빙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른들께서는 '다 컸네', '시집가도 되겠네', '제사 준비 잘해서 나중에 결혼하면 덜 힘들겠다' 등과 같은 덕담을 해주셨다.
명절에는 거실이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왜 여자는 이리 귀한지 몰랐었다. 여자는 엄마와 나와 여동생, 그리고 가끔씩 오시는 할머니들 뿐이셨다. 그런데 사실 여자가 귀한 게 아니라 명절에 남자들만 오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명절이 끝나면 엄마는 3~4일 정도 앓아누우셨다.
아빠는 엄마가 안쓰러워서 친척 어르신들에게 명절에 모일 때는 남자만 모이지 말고 가족이 함께 오는 게 어떻냐고 건의를 하셨다. 그랬더니 명절에 찾아오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 좋은 것인지 아닌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시집을 갔다. 전 시댁에서는 명절에 가족끼리 밥은 먹어야 한다고 명절 당일에는 시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점심을 먹고 친정에 갔다. 그럼 거의 오후 늦게여서 친척분들은 모두 떠나신 이후였다. 친구들은 가끔 나에게 왜 그렇게 친정에 늦게 가냐고 물어봤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늦게 출발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누이들이 점심 먹은 설거지는 할 테니 얼른 가라고 등을 떠밀어 주기도 했지만, 우리 엄마는 보통 외갓집에 명절 다음날 아주 잠깐 방문만 하셨기 때문에 나는 아주 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남편이 미국에 있을 때에는 혼자라도 시댁에 가서 명절을 보내면서 7년이 지났다. 잘해주시는데 불편하고, 설거지할 때가 마음은 가장 편한, 그냥 모든 며느리들이 지내는 보통의 명절이었다.
이혼을 진행하기 전 첫 명절은 3년 전 추석이었다. 그 해에는 우울증이 심해서 기억이 별로 없다. 명절에 오신 어른들께서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의아하게 쳐다보셨지만 직접적인 질문은 하지 않으셨다.
그다음 명절에는 명절 전날 가족끼리 음식을 하고 저녁에는 집을 나섰다. 새언니와 오빠가 집으로 갈 때 따라나서는 것이다. 명절이 불편해서 언니에게 당일에 오빠와 언니네 집에서 좀 도망가 있어도 되냐고 물어봤었는데, 언니는 흔쾌히 반겨주었다. 그 날은 조카와 놀고 언니와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다시 우리 집으로 가기 위해 언니와 오빠가 준비를 하면 옆에서 조카와 놀아주고는 배웅을 했다. 세명이 집을 나서면 나도 씻고 나설 준비를 했다.대충 7시 반쯤 집을 나서서 스타벅스로 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2년 동안 비슷한 명절을 보냈다.
이른 아침이라 스타벅스에는 사람이 없다. 푸드 쇼케이스에서 따뜻한 라테와 함께 먹을 식사류를 골라본다. 평소에는 비싸서 커피 외에는 잘 먹지 않지만 명절 아침이니까 성의껏 가장 맛있어보는 밀 박스를 고른다. 그리고 밀 박스와 라테를 주문한다. 나에게 주는 명절 아침상인 것이다. 친구 A는 큰집이 아니므로, 부모님께서 차례를 지내러 가실 때 함께 집에서 나온다. A는 보통 9시 정도 스타벅스로 들어온다. 우리는 명절이니 맛있는 것을 먹자면서 케이크도 신상으로 하나 고르고 커피를 다시 주문해 놓고 수다를 떤다. 특별하게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렇게 2-3시간 정도 신나게 세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집에서 전화가 온다. 이제 그만 들어오라고 말이다. 이렇게 명절 아침이 끝이 난다.
부모님 눈에는 명절 아침마다 집에서 도망가는 딸이 무척 불쌍하셨나 보다. 이번 설에는 그냥 집에서 자면 안 되냐는 엄마의 이야기에 오빠네 집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잠을 자긴 했지만, 아침이 되니 너무나 불편한 것이었다. 마치 우리 집이 아닌 것 같고,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아침에 차례상 차리는 것을 돕다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을 때 집을 나가겠다고 이야기 했다. 친구 A의 핑계를 댔다. 이번에도 둘이 '우아하게 모닝커피 한잔 하기로 했다.'면서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강아지처럼 집을 나섰다.
커피 한잔 하고 나니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집에 들어오라고 말이다. 명절에는 가족끼리 지내야지 왜 자꾸 나가냐고 핀잔을 주셨다. 아빠가 나가는 나를 보고는 친척 어른들께 한 말씀을 하셨단다. 그러니 다음 명절부터는 우리 가족끼리 보낼 것 같다고, 명절에 나가지 좀 말라고 하셨다.
아빠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여서 웬만한 일로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으시지만, 일단 꺼낸 말씀을 부드럽게는 못하는 편이었다. 분명 집이 싸늘해졌을 것이다. 아빠는 일종의 '전통적인 명절의 종말'을 이야기하신 것 같다. 이제 명절에 일부러 여기까지 내려오지 마시고, 서울에 있는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내시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요즘 세상에 명절에는 가족들끼리 보내기도 부족한데, 일부러 큰집이라고 찾아오는 것이 의미가 있냐고 말이다. 친척들은 보고 싶으면 명절 말고 그냥 주말에 서울에서 식사나 하고 재미있게 보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셨다.
아빠는 나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이 담담하게 이야기하셨지만 나는 나 때문에 친척들과의 사이가 틀어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빠는 엄마도 40년 가까이 차례와 제사를 지낸다고 힘들게 살았는데, 이제 좀 편안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리고 어른들께는 좋은 말이 아니니 좋게 받아들이지는 않으시겠지만 너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한 것만은 아니라고 하신다. 이렇게 말씀은 하셔도 나는 왜인지 이것이 나 때문인 것 같아서 속이 안 좋았다. 내가 깨끗한 또랑에 물을 흐리는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깨어있는 척한다고 해도 나는 어쩔 수 없는 '유교 걸'이다. 그날 저녁 남자 친구를 만나서 최근 나의 살아온 이야기와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또 명절이 다가온다.
그리고 어김없이 A와 명절 당일 아침에 만날 약속을 했다.
이번에는 A와의 약속을 명절 다음날로 연기하고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낼지도 모른다. 아니면, 코로나로 명절 이동 자체가 금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벌써부터 명절 스트레스는 스멀스멀 그 지독한 기억을 내뿜기 시작했다.
내 명절에는 악역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피해를 받는다. 친척 어른들께서는 나에게 괜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고, 부모님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다. 불편하면 도망칠 곳을 만들어 주는 오빠와 새언니도 있다. 어릴 때 많이 듣던 '여자가 시집을 가면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든 지금의 그 모습이 좋다는 사람도 옆에 있다. 그런데 나는 왜 힘이 드는 것일까? 나는 왜 나 자신을 명절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나는 흠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은 사라졌다가, 그날이 다가오면 더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일까?
이혼이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없는 세상에서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내 기억에 오래도록 자리를 잡은 '시대'의 망령 때문일 것이다. 모두들 괜찮다고 응원해 주는 이 좋은 세상에서 그 망한 저주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까닭이다.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결혼할 무렵만 해도 아직 이혼한 사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이혼을 한 사람은 불효자이며, 이기적인 사람이며,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 사이의 보편적인 생각은 변해 간다. 더 많은 이야기가 공유되는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받기 시작하였다. 타인의 삶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삶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메시지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내가 나에게 더 귀를 기울이고 나를 더 이해해 주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여느 연인과의 이별이 그렇듯이 이혼도 자존감이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연인과의 이별과 다르게 이혼은 사회적인 자존감도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무너져 내린 자존감을 내가 다시 세워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 명절 설거지를 통해 안도감을 느끼지 않고, 식사 시간에는 편안하게 식탁에 앉겠다. 나는 내가 가족이 함께 모여 즐겁게 만든 요리를 정겹게 둘러앉아 먹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자리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다. 이혼을 했더라도 명절은 가족 모두에게 따뜻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같이 불편함을 느끼는 A도 편안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