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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Apr 06. 2021

그것은 러브레터였을까?

Day 01. 마법사: 다재다능한 능력자

나의 빛나는 시절에 대해서 써주세요. 누구나 크게든 작게든 반짝반짝했던 날이 있는 것 같아요. 아주 사소해도 진짜 별 것 아니어도 좋아요. 아주 작은 반짝임을 발견해주는 눈이 있다면 더 큰 것들은 더 잘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다면 다정한 마음으로 다시 살펴봐 주세요. 어려움 속에서도 빛났던 나를 꼭 발견해주시길.
 - 슝슝 <나를 껴안는 글쓰기> 중



나의 제1 전성기는 10년 정도 세상을 살았을 무렵 찾아왔다.


초등학교 시절 학급에는 반장과 남자 부반장, 여자 부반장이 있었다. 반장은 등하굣길에 "차렷, 경례!"를 외치는 일을 했고, 담임선생님이 자리를 비우면 떠드는 사람 이름을 칠판에 적을 권리가 있었다. 부반장은 반장이 자리를 비우면 그 역할이 생기지만 초등학교에서 그런 일은 거의 생기지 않았다.

초등학교에서는 1주일에 한번 학급 회의 시간이 있었다. 부반장들이 거의 유일하게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학급회의 시간에 반장은 회의를 진행하고, 남자 부반장은 의견을 수렴하고, 여자 부반장은 칠판에 회의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판서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


초등학교 시절 시험에서 어떻게 답을 적어야 할지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나는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라고 답을 적었다. 예를 들어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라던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같은 질문이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는 답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무렵 나는 줄기차게 당선이 어려운 반장에 출마했다. 그리고 4학년 때 나는 부반장을 했다. '온순하고 활발한' 성격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반장선거에서는 표를 많이 얻지 못했다. 그렇게 반장에 떨어지고 나면 신기하게도 부반장 선거에는 몰표에 가까운 표를 받았다. 특별히 정해진 역할이 없던 부반장이 되고 난 다음에 내가 한 일을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청소 당번이 되면 열심히 청소를 했고, 주번이 되면 칠판을 반짝반짝하게 닦았다. 조별 토론을 하면 조장의 말에 호응을 잘해주고, 숙제를 열심히 했다. 그 당시 우리 반의 급훈은 특이하게도 '공부, 공부, 또 공부'였는데,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수업을 마치고 나머지 학습반도 꼭 참석했다.


그때 나에게는 단짝 친구 2명이 있어서 늘 같이 다녔다. 그 시절 여자 어린이들의 원픽 놀이는 고무줄놀이였고, 남자 어린이들의 원픽은 축구였다. 점심시간에는 아이들이 빠르게 밥을 먹고 운동장에 나가 놀았다. 그때는 학원을 다니는 애들이 많이 없어서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자주 모여 놀았다. 동네에는 빈 공터에서 축구를 하는 무리나 빈 주차장에서 고무줄을 하는 아이들의 무리가 많이 보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아서 고무줄을 못했다. 나는 친구들과 고무줄 대신 공기놀이, 땅따먹기, 오재미, 술래잡기를 주로 하고 놀았다. 우리가 하는 놀이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고무줄과 축구에 끼지 못한 친구들이 하나 둘 참여하기 시작해서 같이 노는 무리가 10명이 넘었던 것 같다.


가장 재미있던 놀이는 가을의 낙엽 전달 릴레이였다. 우리 아파트에는 구석진 곳에 아이들이 잘 오지 않는 놀이터가 있었다. 놀이터는 바닥이 흙으로 되어 있었고, 관리가 잘되지 않아 가장자리는 듬성듬성 풀이 자라나 있었다. 놀이기구라고는 경사가 2개인 미끄럼틀 하나와 2인용 그네, 철봉만 있었고, 주변은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들로 둘러 쌓여 있었다. 가을이 되면 그 나무들은 나뭇잎을 많이 떨어뜨렸다.


놀이를 하기 전 나와 친구들은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쌓여있는 낙엽을 모두 바닥으로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두 팀으로 나누어서 한 명은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 낙엽을 받는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바닥에서 미끄럼틀에 거꾸로 뛰어 올라가 낙엽을 전달하는 놀이를 시작했다. 놀이는 정해진 시간에 낙엽을 많이 올린 팀이 승리했다. 하루하루 놀이를 반복하면서 매일 팀이 바뀌기때문에 어떻게 하면 낙엽을 많이 모을 수 있을지 팀별로 계획을 짜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신나는 가을이 지나갔고 겨울 방학도 지나가자 5학년으로 진입하는 새해가 시작되었다.

2월의 가장 큰 이벤트는 반배정이었다. 나는 매년 친한  친구들과 떨어져서 혼자 다른 반에 배정되었었는데, 4학년에서 5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도 그랬었다. 삼총사 중에서 둘은 같은 반이 되었고, 나는 다른 반이 되었다. 섭섭하긴 했지만 낙엽놀이를 같이 하던 남자아이 몇 명이 같은 반이 되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봄방학이 시작되는 날은 학년의 마지막 날이라서 항상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손편지를 썼다. 헤어지는 섭섭한 마음을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았다. 거의 우리 반 친구 모두에게 편지를 썼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은 나도 많은 손편지를 받았다.


집에 와서 손편지들을 읽다 보니 암호처럼 적혀있는 손편지가 있었다.

'ㅇㅏㄴㄴㅕㅇ, ㄴㅏ ㅇㅑ.'

자음과 모음이 분해되어 있는 암호 같은 편지가 그 당시 유행이었다.

읽기가 힘들어서 다른 편지를 먼저 읽고 읽을까 고민하다가 편지를 보낸 친구가 나에게 말을 많이 걸지 않던 낙엽놀이 멤버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 읽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또래보다 키가 많이 컸고 어른스러운 얼굴을 하고, 사춘기가 일찍 찾아온 듯 과묵한 아이였다. 나는 키가 작아서 그 친구와 짝꿍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고 같은 조를 한적도 없다. 하지만 그 아이의 단짝이 나와 같은 조를 한 적이 있어서 같이 어울려 놀았다.


그 아이의 단짝을 나는 '분홍이'라고 불렀다. 그 친구가 분홍이인 이유는 남자아이인데도 분홍색 패딩을 입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흰 패딩이었는데, 엄마가 하얀색 패딩을 빨간색 옷과 함께 빨아서 분홍색이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는 여자는 핑크, 남자는 블루가 국룰이 아니던가. 그 와중에 분홍색이 된 패딩을 당당하게 입고, 사연까지 설명해 주는 그 친구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분홍이와 나는 참 성격이 잘 맞아서 같은 조에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5학년에도 같은 반을 하게 되어서 참 다행인 친구였다.


편지를 쓴 그 친구는 '분홍이 단짝 친구'로 기억이 남아있다. 같이 어울려 놀았지만 둘이서 진득하게 이야기를 했던 적은 없었다. 진득하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던 이유는 그 친구의 누나가 우리 오빠와 매우 친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누나는 우리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성격이 털털하고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이다. 그 언니는 참 멋있었지만, 나는 그 언니를 어려워했다. 같이 걸스카우트를 하면서 야간 캠핑에서 울거나 하는 못난 모습을 많이 보여서 부끄러웠다. 언니는 그런 내 모습을 우리 오빠에게 말한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편지를 더듬더듬 읽는데 내용이 참 특이했다. "너랑 같은 반이 되고 싶었는데, 다른 반이 되어서 너무 슬퍼. 그래서 분홍이에게 공주님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어. 다른 반이 되어도 나랑 계속 친하게 지내자."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ㄱㅗㅇㅈㅜㄴㅣㅁ'이라고 적혀있는 그 부분을 20번 정도 읽었던 것 같다. 세상에 나에게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니!


나는 지금 이 글을 쓸 때까지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편지를 받고 상당히 설레었다는 사실도 함께. 지금은 분홍이는 어떻게 사는지 소식을 모르겠고 그 친구는 애기 아빠가 되어서 와이프와 함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나이가 드니 과묵함이 사라지고 다정한 성격만 남은 듯했다.


무슨 의도로 쓴 편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편지가 나에게 온 첫 번째 러브레터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참 그때는 반짝반짝 새콤달콤 귀여웠다고 생각한다. 잘 살아라 친구야!



이미 머릿속에는 "안녕, 공주님"으로 자동 편집 완료!


 

#나를껴안는글쓰기 #나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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