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심해지면, 주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듭니다. 얕은 우울이 찾아오면 계절에 대한 감각이 사라집니다. 덥고, 추운 것은 알지만,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깊은 우울에 빠져 있으면 시간에 대한 감각마저 사라집니다. 잠도 오지 않고 새벽이 오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합니다. 어떨 때는 아픔과 괴로움마저 느껴지지 않는 공허함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자연을 가까이 두라고 말합니다.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돌아오면서 자신에 대한 감각이 돌아오는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울증과 자연,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은 관련이 깊나 봅니다.
제가 처음으로 상담사 선생님께 자연을 느껴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예쁜 풍경을 찾아가 사진을 찍으라는 뜻 같기도 했고, 자연을 핑계로 주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말 같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심호흡하기를 연습했습니다. 며칠은 좀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 나름대로 찾은 자연을 즐기는 방법은 나무와 나무에 달린 것을 관찰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뭇잎이 무슨 색인지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집에서 지하철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상당히 많은 나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애정을 가지고 편안하게 관찰하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올 무렵이었을 거예요. 어떤 나무는 가지 끝에서 몇 개씩 뭉쳐진 옅은 연두색의 작은 잎을 쏟아내기도 하고, 어떤 나무는 처음부터 붉은 잎을 돋아내기도 했습니다.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더욱 날씨가 따뜻해지고, 아기 잎들이 소년 잎들로 자라나면 나무들은 엄청난 동안을 뽐냅니다. 가끔은 굉장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이름도 모르는 예쁜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나무를 쪼기도 하고, 이제 막 발톱이 자라난 새끼 고양이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도 합니다.
장미가 피기 전부터 저의 휴대폰에는 꽃 사진이 많아집니다. 그때가 되면 집 앞 울타리를 감싸고 있던 장미 덩굴은 초록색의 탐스러운 꽃 봉오리를 하나씩 늘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봉우리 안에 있는 빨간 잎들이 언제 밖으로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장미가 활짝 피면, 소년 잎들은 청년 잎이 됩니다. 색이 더 짙어져서 다른 꽃들을 더웃 돋보이게 해 줍니다. 이때부터 나무는 상당히 시끄러워집니다. 드디어 매미들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나무에서 좀 떨어져 나무 그림자를 관찰하기 좋습니다. 햇볕이 세면 가끔은 나뭇잎이 반투명하게 바닥에 반사됩니다.
점점 나뭇잎은 개성이 뚜렷한 색으로 변합니다. 저는 와인 빛깔의 단풍나무보다는 형광 빨강의 단풍나무를 좋아합니다. 올해는 앞면은 갈색, 뒷면은 흰색인 내 얼굴만 한 낙엽도 눈이 많이 갔어요. 상당히 운치 있었습니다. 모든 잎의 색이 변할 때, 거의 변화가 없는 소나무도 매력이 넘칩니다. 소나무의 잎은 변하지 않지만, 솔방울이 커다랗게 매달려서 시크한 소나무를 귀엽게 보이게 하거든요.
어느덧시간이흘러겨울이 오면반짝이는전구로장식된나무들이거리에서빛을발하게 됩니다. 앙상한 가지에서 잎 대신 반짝이는 그 전구들은 부족하면서도 꽉 찬 마음이 들게 합니다. 풍성한 잎을 자랑하지 않아도 그 꼿꼿한 모습이 참으로 든든합니다. 작은 나무는 작은 나무 대로,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운치가 있습니다.
어느덧 해가 바뀌고, 다시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름을 몰라도 올해도 나무는 그 자리에 존재합니다. 마치 내가 이 자리에 존재하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