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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Jul 20. 2021

‘아이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육아에 ‘일 세상’ 스위치를 꺼두는 지혜

한국으로 돌아온지도 어느덧 5개월 차,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게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거의 귀국하자마자 이직을 했고 새로운 조직과 업무에 적응해야 했다. 남편 역시 한국에서 자리 잡은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아이도 유치원에 다니며 새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 셋 모두 '적응'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중에 가장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건 내가 아닌가 싶다. 업무와 육아, 그리고 살림까지. 내게 주어진 역할과 무게가 힘겹게 느껴져 삐걱거렸다. 부랴부랴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고 오면, 그때부터 아이는 엄마 같이 놀자 노래를 부르지만, 내 마음은 남겨진 업무에 가 있었다.


'아, 이거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데..'

'이걸 오늘 다 할 수 있으려나..'


걱정과 불안이 내 마음을 휘감고 있으면, 나는 나만의 '일 세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놀이방에서 같이 놀고는 있지만 내 영혼은 여전히 일에 가 있다. 왼 손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는 찰나 아이가 외친다.


"엄마~~!!! 이거 같이 하자니까!!"


몸은 옆에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는 걸, 아이는 참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어어 알겠어. 자, 해보자."


그렇게 나와 아이는 한동안 같은 장소, 다른 세상 속에 머물러 살았다.



'육아'를 힘겹게만 느끼며 '일 세상'에 갇혀 있던 나를 꺼내 준 건 다름 아닌 아이의 심리 문제였다. 영국에 있을 때부터 어린이집 유아용 화장실만은 극구 거부했던 아이가 한국에서도 유치원 어린이 화장실을 거부했다. 집에서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백화점 화장실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화장실을 가지만 유치원 어린이 화장실은 발조차 딛지 않았다.


유치원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영국에서도 그랬듯 임시 방편으로 선생님들이 사용하는 어른 화장실을 갈 수 있도록 도왔다. 육아는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이 문제는 아이가 영국에 있을 때 ‘유치원 화장실은 안전하지 않다’는 믿음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짐작하게 됐다. 다른 심리적 문제도 어렵겠지만, 일단 화장실을 거부하니 유치원 생활 자체가 어려웠다. 실수하는 날이 잦아졌고 내 마음의 무게도 같이 무거워졌다.


'얼마나 힘들까..'


하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가 아침에 입은 바지가 아닌 다른 바지를 입고 있을 때, 순간적으로 울컥 눈물이 났다.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참았을 아이의 나날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영국에서부터 이 작은 아이가 얼마나 혼자서 고생이 많았을까를 떠올리면 마음에 멍이 난 것처럼 아프고 또 아팠다.


화장실 문제와 함께 눈을 깜빡이는 틱도 다시 생겼다. 영국에서도 있다 없다를 반복했던 틱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심하게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결국 남편과 나는 아동 심리상담 치료를 선택했고,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로 올라가 1시간씩 놀이 상담을 받았다. 천천히 아이의 기질을 파악하고, 부모로서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함께 배워 나갔다. 아이는 이제 막 한국말을 하기 시작할 두살 반 때 영국을 갔고, 그곳에서 전혀 다른 언어를 들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상담을 받으며 아이의 기질에 따라 그런 환경의 변화(거주 국가를 옮기는 큰 변화)가 굉장히 크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상담 과정을 통해 아들이 매우 예민하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기질이라는 것도 더 확실히 알게 됐다.

상담을 한 회씩 더해 갈수록 나와 남편도 느끼고 배우는 바가 컸다. 조금 더 아이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대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배워 나갔다.



며칠 전부터 나는 아이와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이 되면 나만의 '일 세상'에서 나와 '아이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놀이하는 시간만큼은 일 스위치를 OFF 하고 휴대폰을 멀리했다. 아이가 말하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그 세상으로 들어가 아이의 친구가 되니, 그 시간이 참 행복하고 즐거웠다. 깔깔깔깔 둘이서 배꼽을 잡으며 웃는 날도 늘었다.


육아는 힘들고 어렵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하지만 노력하고 공부하면, 극복할 방법은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부모로서 내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를 자꾸 공부하고 내 아이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를 자꾸 관찰하다 보면, 아이와 부모가 모두 편안해지는 어떤 지점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아이와 그림을 그리고 공룡 친구들과 목욕을 하고 참참참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내 마음의 근심 걱정 모두 내려놓으니, 아이와 한 뼘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언젠간 아들이 유치원 어린이 화장실을 편하게 사용할 날도 올 거라고 믿는다. 그날이 오면 지금의 시간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때가 되면 아이도 나도 많이 성장해 있기를, 더 많은 지혜를 담은 엄마가 되어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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