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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Dec 14. 2021

틱 장애를 아시나요?

만 다섯 살 아이의 틱, 그리고 부모의 시선

"(눈을 깜빡 깜빡이며) 엄마 이거!"

"응? 어떤 거줄까? 눈에 뭐 들어갔어?"

"(계속 눈을 깜빡이며) 이거!"


20개월 된 아이가 쉬지 않고 눈을 깜빡였다. 가슴이 쿵 하고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놀란 마음을 숨긴 채 아이 몰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낮은 목소리로 숨죽여 말하며) 여보, 애기가 자꾸 눈을 깜빡여."

"그래? 왜 그러지? 안과를 가봐야 할까?"

"잘 모르겠어. 일단 집에 와서 한번 봐"


이유 없이 반복되는 아이의 눈 깜빡임에 남편과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속눈썹이 찔러서 깜빡이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인터넷으로 증상을 검색해보니 '틱장애'라고 했다. 무엇인가에 집중하거나 불안할 때 유독 눈 깜빡임이 더 심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틱은 증상이 심해졌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틱이 다시 나타난 건 우리 가족이 영국으로 가게 되면 서다. 당시 아이는 만 두 살 반을 지나고 있었다. 처음 한 달간은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을 알아보느라 나와 24시간을 붙어 있었다. 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보내기 시작하고 얼마 안가 다시 틱이 나왔다. 눈 깜빡임에 이어, 잠자기 전에는 "음 음 에흠 에흠"하는 음성 틱까지 시작됐다.

 

"음. 음. 으으음. 으음 에흠. 음.."


닳아빠진 멍멍이 애착 인형을 손에 쥔 채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는 밤마다 10여분 넘게 불특정 한 소리를 내다가 잠이 들곤 했다. 낯선 땅에 와서 처음 들어보는 언어만 가득한 환경 속에 있자니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참 많이도 울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아이는 일정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어린이집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어린이집에서 배운 율동이나 영어 동요를 불러주기도 했다. 하루는 같이 간식을 만들어 먹는데 아이가 중얼거렸다.


"플리스 돈고 플리스 돈고"


자세히 들어보니 아이는 "Please don't go"(제발 가지 마)라는 말을 의미 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왜 이런 말을 중얼거릴까 하다가도 그 모습이 귀여워 바라보며 웃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이가 내뱉던 그 중얼거림은 음성 틱 가운데에서도 복합 음성 틱에 속했다. 하필이면 저런 뜻의 말을 했을까. 무슨 뜻인지 알고 저 말을 했을까. 지금도 이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렇게 1년 반이라는 영국에서의 시간이 지나갔고 한국에 귀국하기로 결정한 뒤로 아이의 틱도 잠잠해졌다. 한국에 돌아온 아이는 다시 만난 가족들과 넓은 집, 자신의 방이 생긴 것 등에 무척이나 기뻐하는 눈치였다. 새롭게 시작한 한국에서의 유치원 생활에도 적응해갔고, 틱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지 수개월이 흘러나와 남편의 머릿속에 '틱'은 사라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유치원에서 하원하고 돌아와 나와 색칠 놀이를 하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똑같은 행동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순간 틱이 다시 왔구나 짐작했다. 하지만 눈 깜빡임만 있던 운동 틱이 고개 움직임으로 나타난 건 처음이라 정말 많이 놀랐다.  그래도 아이 앞에서는 티 내지 않았다.


"자~ 이제 이걸 색칠해볼까?"

"엄마, 그런데 왜 슬픈 표정을 하고 있어?"

"응? 아닌데? 엄마 안 슬픈데~~ 이제 이거 해보자~~"


애써 모른 척한다고 했는데, 아이는 순간의 내 표정을 읽었는지, 왜 슬픈 표정을 하냐고 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이의 운동 틱이 지속됐다. 음성 틱과 운동 틱이 같이 나오면 뚜렛이라고 말한다는데,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틱이 계속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밤마다 자료를 찾고,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을 보고 하면서 그렇게 울었다. 누가 툭 치면 눈물이 핑 나왔다. 아이 앞에서 아무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내 감정은 깊은 우울로 빠져들고 있었다.


"소아 정신과를 가서 한번 진단을 받아보자"


매일같이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나날이 계속되자 남편은 차라리 병원에 가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했다. 그렇게 아이와 근처 소아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아이의 양상이 틱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만 4세이고 약물치료를 할 나이도 아니기 때문에 크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뇌의 기저핵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에 의해 나타나는 증상인데, 크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경우도 많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의사의 진단을 듣고 나니 그제야 요동쳤던 근심 가득한 내 마음도 조금씩 차분해졌다. '그래, 아직은 어리니까.. 좋아질 거야. 괜찮을 거야..'아이의 틱을 좀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대할 수 있게 됐고 검사를 받은 뒤로 신기하게도 틱 증상이 다시 수글어들었다.


며칠 전, 아이가 다시 고개를 들고 눈을 깜빡였다.

'또 올 것이 왔구나'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아픈  사실이지만, 그래도 좋아질 거라는 믿음을 갖고 모른 척한다.  진짜 심해서 약을 먹어야 한다면 전문가의 진단 아래 그렇게 하리라 마음먹는다. 그렇게 나는 '모른  하기의 달인' 되어 간다.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바라고  바라면서.


https://youtu.be/dcalDhSzovc

[나와 같은 위치에 있을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남겨본 영상]


*사진출처: Washington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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