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허기를 채워준 사장님, 감사해요
5년을 일한 직장 동료가 오늘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내가 이 회사에 온 지는 2년 남짓이었지만 그 동료와 직접적으로 많은 일을 같이하지 않았던지라 왜 퇴사를 하는지, 어디로 이직을 하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나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입사를 해서 거의 대부분 재택근무를 했기에, 사실 이 동료와 밥 한번 먹은 적도 없다.
동료가 긴 시간 회사에 몸담았던 만큼 많은 이들이 떠나는 길을 축복해 주었다. 퇴근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자리까지 마련됐다. 나도 축하(?)한다고, 잘 가라고 같이 인사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그 동료와의 친분이 없었다.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혼자 작은 회의실에 앉아 업무를 정리했다.
6시가 되어 조용히 화의실을 나왔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메신저에는 그 동료와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진들이 올라왔다. 많은 직장 동료들이 함께 웃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내 마음 나눌 사람은 한 명도 없네’
건물 계단을 혼자 걸어 내려오며 그 고요함이 싫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오늘 좀 외롭네. 가서 축하해주면 되긴 하는데. 그냥. 나가면 연락할 사이도 아니고.”
금요일 저녁 6시, 서울에서 다시 경기도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한 먼 여정이 시작됐다. 압사의 위험이 도사리는 9호선 급행을 가까스로 타고 고속터미널역에 도착했다. 미리 예매해둔 표는 저녁 7시. 내게 주어진 시간은 25분이다.
남편과 아이가 저녁을 먼저 먹고 있어서 나도 고속터미널역에서 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메뉴가 빨리 나오는 김밥집을 찾았다.
돈가스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지치고 외로운 마음을 뒤로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유독 내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주파수 하나가 잡힌다.
엄마 나이쯤 혹은 그 이상 되셨을 듯한 얼굴에 검은 커트 머리를 한 김밥집 사장님. 연세는 있어 보여도 마스크 안으로 새어 나오는 음색은 분명 밝고 활기차고 생기 있었다.
“언니는 뭐 드릴 까아아~ ”(여자 손님에게는 대체로 언니라고 하시는 것 같다)
“치즈 떡볶이 하나요. 먹고 갈게요.”
“응 그래요~ 영수증은 안필요해요~~?”
“네.”
“언니 치즈떡볶이 들어가자아~”(이때 말하는 언니는 가게에서 요리를 하고 계신 분들이다. )
“또 언니는 뭐 드릴 까아아~”
“국물 뜨거워요 조심해요~”
말끝을 마법같이 올리며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사장님의 목소리. 이상하게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되는 사장님의 음성을 조용히 듣고 있던 차에 내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언니 돈가스으~ 맛있게 먹어요오~”
바쁘게 오고 가는 터미널에서 가게를 찾아준 손님들을 대하는 사장님의 태도는 마치 하숙생들에게 밥을 먹이는 걸 기뻐하는 하숙집 주인 같았다. 그릇을 툭 던지는 불친절한 식당도 많은데. 비록 앉을자리는 좁을지언정 따뜻한 손길로 맛있게 먹으라고 음식을 전해주는 이 가게는 마음이 헛헛할 때 또 오게 될 것만 같았다.
보일러를 틀지 않아 차가웠던 빈 방에 따뜻한 온기가 채워지는 느낌. 내 안에 엉켜있던 ‘연결되고 싶은 욕구’와 ‘쉽게 다가가고 싶지 않은 고독’이 스르륵 풀리는 기분. 위로받는 기분. 언젠가는 나도 에피타이저부터 후식까지 풀코스로 나오는 미슐렝 맛집에 가볼 날도 오겠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내게 이 김밥집이 진짜 미슐랭 맛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