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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Apr 26. 2023

외동아들이 6년째 '엄마 놀아줘'라고 할 때

나에게는 자녀가 한 명 있다. 2016년 겨울에 태어나 올해 초1이 된 아들이다. 만 6세이지만 한국 나이로는 (아직까지) 8살이다. 아이는 형제가 없다 보니 눈 뜨면 가장 먼저 나를 찾아와 무시무시한 첫 말을 꺼낸다.


"엄마 놀아줘"


내가 먼저 일어난 날도 있지만 (보통은) 아이가 더 빨리 일어나 자고 있는 나를 깨운다. 눈을 뜨고 듣는 첫마디가 엄마 놀아줘. 이게 몇 년째 반복이다. 내 컨디션이 좋은 날은 벌떡 일어나 이것저것 놀이를 몇 가지 (레고나 종이접기, 블록 만들기, 그림 색칠하기 등)를 하고 밥을 챙겨 먹인다. 문제는 내가 피곤할 때다. 늦게 자거나 뒤척이다 잠을 푹 자지 못했을 때 아이가 놀아달라며 나를 깨우면 그때 솔직한 심정으로 짜증이 올라온다.


'얘는 언제까지 나한테 놀아달라고 할까' 싶은 마음이 든다. 초등학교에 가면 이제 좀 '엄마 놀아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에겐 학교가 아닌 집에서도 놀 '상대'가 필요하다.


최근 이것저것 머리가 복잡해 며칠간 잠을 설치고 피곤한 상태가 이어졌다. 남편에게도 아이가 아침에 눈뜨면 맨날 놀아줘 놀아줘 그러는데 솔직히 그게 힘들다고 고백했다. 남편은 아이랑 놀면 5분 안에 아이를 울리고 마는 매직을 선보이는 덕에 아이의 놀아줘 부동의 1순위는 아빠가 아닌 엄마다. 남편은 쿨쿨 자고 있고 나는 피곤해도 아이랑 놀아줘야 하는 아침이 반복되니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게 됐다.


주말엔 남편이 아이와 나가 자전거도 타고 운동도 하고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낸다. 그 사이 나는 책도 보고 쉼을 얻는데, 늘 아침이 문제다.


그렇게 오늘도 '엄마 놀아줘'로 평범한 하루가 시작됐다. 아이와 나는 어제 다 마무리하지 못한 그림의 색칠을 나눠서 하고, 밥을 먹고 같이 세수와 양치를 했다.  아들이 옷을 입고 학교 갈 준비를 마치자 남편이 아이와 함께 등교를 위해 집을 나섰다.


하아-

오전 8시 40분. 아들이 학교를 떠난 이 시각, 알 수 없는 묘한 해방감이 나를 감쌌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해 볼까? (이미 하루는 아이의 엄마 놀아줘로 시작됐지만, 왠지 모르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는 느낌...) 거실에 있는 책상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았다. 책상에 생명을 일구는 자녀 기도문이라는 달력이 있는데, 오늘 날짜로 넘겼더니 이런 기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04.26.
자녀의 탄생은 일시적인 기쁨과 감사가 아니라 동행임을 알게 하소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과 여정임을 인정합니다.
언제 이 뒤치다꺼리가 끝날까 생각하지 않게 하소서.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4)


쿵-

갑자기 방심하고 있다가 어퍼컷 한 대를 강하게 후려 맞은 기분이 들었다. 헉 어떻게 알았지. 내가 아들의 '엄마 놀아줘'를 벗어나고 싶은 뒤치다꺼리라고 생각했던 걸 들킨 것 같았다. 자녀가 내 삶에 왔다는 것은, 일시적인 게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동행임을,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한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언젠가는 아이가 눈을 떠 나를 찾지 않는 날이 올 테다. 하지만 그때가 오기 전까지 아이의 엄마 놀아줘를 좀 더 기쁘게, 감사하게 받아들여 봐야겠다. 외동으로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 모두 파이팅이다.


사실 엄마도 엄마 껌딱지였어.. ㅎㅎ엄마랑 더 재밌게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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