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야 도대체 넌 어디에 숨었니
2020.7.16
며칠 전 밤, 아이와 함께 자고 있던 나는 남편의 다급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여보. 쥐가 있어."
"무슨 소리야. 빨리 자."
나는 쥐가 있다는 남편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늦었으니 어서 자라고 재촉했다. 영국에서 석사 공부를 하고 있는 남편은 작업을 마치고 거의 새벽 2시, 3시가 넘어서야 잠에 드는데, 새벽에 혼자 거실에서 작업하는 사이 '스스슥' 등골 오싹한 소리를 들었던 것. 인간이 갖는 식욕과 성욕 등의 다양한 욕구를 뒤로하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욕구인 수면욕을 방해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지라, 남편의 말을 제대로 기억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7시쯤 아이와 함께 일어난 나는 아이의 아침을 간단히 준비하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스스슥'
어떤 회그리덩덩한 물체가 빛의 속도로 주방 식기세척기 옆의 비좁은 틈으로 달려갔다. 식기세척기 옆으로 지나간 것은 분명 쥐였다. 너무 빨랐지만, 나는 온몸으로 그것이 쥐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엔 자고 있는 남편을 내가 깨웠다.
"여보! 여보! 여보! 쥐! 쥐! 쥐야 쥐!!!"
"응..?"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에 나온 남편은 어제 본인이 한 말을 믿어주지 않았던 내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것 봐. 내가 어제 소리 들었다니까."
아침부터 우리 집은 쥐 소탕 작전이 펼쳐졌다. 후찬이는 부딪히면 '팅 팅' 소리가 나는 장난감 칼을 들었고 나는 무서워서 의자 위에 올라갔고 남편은 주방 아래에 막혀있는 선반을 드러냈다. 심장이 오그라들고 상상만으로도 너무 무서웠다. '내가 쥐와 함께 살고 있었다니 말도 안 돼!'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남편은 나보다는 쥐와 친숙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어릴 때 동생과 함께 쥐를 잡으려다가 동생이 쥐에 물린 적도 있었고, 아빠가 쥐를 야구 방망이로 때려서 잡았다는 괴담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전문 수사관처럼 쥐 똥을 찾아냈다. 쥐는 똥을 흘리며 다니기 때문에 쥐 똥이 있는 곳은 쥐가 다니는 길이라나. 믿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남편이 나보다 쥐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만큼은 분명했으므로 남편의 수사 활동을 옆에서 관찰하기로 했다. 소파를 밀어내니 바닥에 좁쌀보다 작은 검은색 쥐 똥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쥐 똥이 있다. 쥐가 있네. 있어."
수사 대장의 말에 가슴이 철컥 내려앉는다.
"그거 쥐 똥 맞아? 그냥 먼지 아니야?"
"이게 바로 쥐똥이야. 어릴 때 많이 봤어."
경험을 근거로 논리를 펼치는 수사 대장의 말에 나도 조금씩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
"엄마 걱정 마! 내가 찍찍이를 잡아줄게. 얍!!!"
수사 대장 오른팔 역할을 맡은 후찬이는 찍찍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신이 난 모습이다. 안 그래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인형 강아지만 들고 다니는 녀석이 뭔가 살아있는 동물이 등장했다니 들뜬 것이다.
"난 너무 무서워. 정말 싫어. 여보 제발 빨리 잡아봐."
난 여전히 의자 위에 올라간 채 바닥에 발을 딛지 못하고 있었다. '쥐가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저 바닥에 내 발을 디딜 수 없어'라는 생각과 함께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싱크대 밑의 나무 판때기를 걷어내자 그 안에서도 쥐 똥 몇 덩어리가 발견됐다. 쥐 똥을 태어나서 처음 본 나는 '이 쥐 똥만한 게!' 라고 할 때의 그 쥐 똥이 이렇게나 작디 작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수사 대장은 벽 모서리 쪽에 조그만 구멍을 찾아냈다. 작은 생쥐가 충분히 드나들고도 남을 만큼의 구멍이었다. 나는 수사 대장에게 빨리 저 구멍을 막자고 했다. 수사 대장은 키친타월과 비닐을 똘똘 말아서 구멍을 막았고 수사 대장 오른팔은 쥐가 언제 나오는 거냐며 허공에 칼을 휘둘러댔다.
1년 가까이 살아오는 집에서 처음 발견된 쥐의 흔적들. 덕분에 우리는 처음 싱크대 선반 밑도 다 드러내게 됐고, 그 안에 쌓여있던 먼지들도 청소기로 다 빨아들였다. 물론 쥐 똥의 증거는 사진으로 확실히 남겨둔 뒤다.
'이 똥쟁이. 내가 잠든 사이에 여기서 똥을 싸 대면서 돌아다녔구나. 너를 잡고야 말겠다.'
수사 반장과 나는 당장 쥐덫을 구입했다. 그리고 다음날 배달된 쥐덫 2개를 주방 선반 안쪽과 식기세척기 옆 좁은 골목에 배치했다.
다음날 아침, 두려운 마음으로 살금살금 거실에 나와 쥐가 잡혔나 실눈을 뜨고 살펴봤다. 하지만 쥐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 듯했다. 아무래도 쥐가 드나들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을 막았기 때문인 듯했다. 그러나 왠 걸. 밤이 되자 이번에는 안방 천장에서 쥐가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스스스슥"
"여보! 쥐다 쥐! 쥐가 천장에 있다!"
그렇다. 그 녀석은 여전히 건재를 과시했다. '니들이 구멍을 막아도 난 이렇게 잘 돌아다닌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오..쟤를 어떻게 잡지?'
2~3일 그렇게 천장에서 소리가 나더니 다시 소리가 잠잠해졌다.
"여보 이제 소리가 안 나. 굶어 죽었나 봐. 우리의 전략이 먹힌 거야!"
"그런가? 배가 고파서 죽었나?"
수사 반장은 나의 설득력 있는 주장에 동조하는 듯했다.
하지만 쥐가 사망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그날 밤, 사건은 다시 시작되고야 말았다.
휴대폰에 책을 받아 e-book을 읽는 재미에 빠진 요즘, 나는 아이를 재워놓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기침을 계속해서 남편이 아이 등을 두들겨주러 방에 들어왔다. 나는 책을 계속 읽고 싶어서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계속 책을 읽어 내려갔다. 갈색의 가죽 소파는 거실 벽에 바로 붙어 있었고 왼쪽으로는 위아래로 열 수 있는 큰 창문과 양 옆으로 열 수 있는 발코니 문이 설치돼 있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작게나마 앉아서 티 타임을 가질 수 있는 개방형 발코니가 자리하고 있다.
나는 최대한 바람을 느끼기 위해 창문 옆에 바짝 앉아 있었다. 코로나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우리는 뭘 준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작가의 글에 나는 몰입하고 있었다. 12시가 다되어가는 야심한 밤, 책에 몰입한 나에게 또다시 등골 오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스슥"
"(뭐지?)"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들었다. 100%를 향해 달려가던 나의 집중력은 산산이 부서졌다.
'뭔가가 있다.'
그때였다. 고개를 들어 창 쪽을 바라보던 내 시선은 회갈색 커튼 사이에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생쥐의 눈과 마주쳤다.
"(헉!)"
나는 숨을 죽인 채 살금살금 뒷걸음쳤다.
'이 장면을 찍어야 해.'
e-book을 읽고 있던지라 바로 폰으로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러놓고 남편을 부르러 갔다. 아이가 기침 때문에 깼다가 다시 잠들려고 하고 있는 상황이라 나는 소곤소곤 말했다.
"여.. 보.. 쥐 있.. 어. 쉿 쉿.."
남편은 큰 소리로 화답했다.
"뭐?? 어디! 어디야????"
덩달아 잠에서 깬 아이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엄마 찍찍이 있어? 내가 잡아줄게 걱정 마!"
이렇게 우리의 2차 쥐 소탕 작전은 12시가 넘은 야심한 밤에 다시 펼쳐졌다.
수사 대장은 정황을 파악하기 위한 단서를 모았다.
"진짜 본거야? 어디였어?"
"저기 커튼 사이였어. 거기 거기!!!"
수사 반장이 커튼을 휙 젖혔지만 이미 쥐는 사라진 뒤였다. 미리 찍어둔 동영상에도 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내가 몇 발자국 뒷걸음치는 그 찰나를 이용해 살짝 열려있던 발코니 문으로 튄 것 같았다. 수사 반장은 쥐들이 커튼을 굉장히 잘 타고 올라간다는 소름돋는 이야기를 했다. 아까 마주친 쥐의 눈이 자꾸 생각났다. 수사반장과 그의 오른팔은 또다시 쥐똥을 찾기 시작했다. 발코니 구석에서 쥐똥이 발견됐다. 우리는 주방 선반 안쪽에 설치했던 쥐덫을 발코니로 옮겼다. 그날 밤 쥐는 다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우리는 안방 천장을 타고 발코니로 나오는 쥐 구멍이 있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뒤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틀이 지난 오늘, 아직 나는 쥐와 동거 중이다. 이 녀석이 어디에다가 똥을 싸며 다니는지 알 길이 없다.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보내는 영국인 부모에게 이야기했더니, 집주인에게 이야기해서 쥐에게 월세를 청구하라는 농담을 건넸다. 영국 집에서 작은 생쥐가 나오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라는 말과 함께.
내가 살다 살다 쥐와 함께 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영국이 나에게 많은 걸 경험하게 해 주는구나.
그래, 이것도 경험이라면, 고마워해야 할까? 그나저나, 넌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