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나는야 운동 병아리
생도생활 4년에 직업군인 5년, 다해서 9년.
20대 대부분을 군인으로 살았던 나는 좋든 싫든 어쨌든 항상 운동에 노출돼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는 일주일에 6-8시간 정도의 체육 수업이 있었다. 체대 못지않은 풍성한 체육 수업 시간 탓에 나는 생도 4년 동안 수영 테니스 축구 배구 농구 소프트볼 라켓볼 서킷 트레이닝 검도 등의 수많은 스포츠 종목을 섭렵(?)했다. 운동 신경은 그다지 없고 지구력만 좋은 나의 체육과목 학점은 잘 나오면 B, 축구 같은 구기 종목은 C를 받기도 했다.
그뿐만이랴. 매일 아침 점호 후 뛰은 아침 구보, 일주일에 한 번 단체로 군장 매고 뛰는 무용 구보, 또 일주일에 한 번씩 단체로 뛰는 체력단련 구보(징글징글 구보~), 여름에 집중적으로 하는 하계 훈련(행군 유격 공수 비행실습 등), 시도 때도 없이 뭐 잘 못했다고 선배들에게 혼나는 특별 훈련(쉽게 말하자면 얼차렷) 등 내 몸은 잘 때 빼고는 쉴틈 없이 움직여야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장교 생활을 할 땐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아졌다. 하지만 일 년에 두 번씩 하는 체력 검정(달리기 윗몸일으키기 등으로 신체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있으니 계속 몸 관리를 해야 하고 부대에서 대대장님이 테니스 치자고 하면 따라가서 쳐야 하고 가끔씩 하는 기지방호 훈련, 행군 훈련 등이 이어지니 어쨌든 보통 사람들보다는 좀 많이 몸을 쓰는 직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기나긴 군생활이 끝나고 자유의 몸이 된 나는 그야말로 몸의 자유를 만끽했다. 각종 훈련, 구보로부터의 자유를 말이다.
다행히 20대 때 바짝 올려놓은 체력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몸을 쓰는 것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으니, 계속 난 그렇게 체력이 좋은 사람이겠거니 착각하며 살았다.
내 체력이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며 암흑기(?)에 접어든 건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부터다. 우선 임신을 하는 10달 동안 14킬로그램의 체중이 불었다. 출산 후에는 멀쩡하던 손목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하다 못해 빵에 잼을 발라 먹으려고 잼 뚜껑을 열려고 해도 안될 정도로 손목 힘이 엄청 약해졌다. 아기 띠를 매고 한의원에 가서 손목에 침을 맞은 적도 있다.
아이가 커가면서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경기도 안산에 살았는데, 집 앞 공원에서 저녁 8시면 스트레칭 선생님이 와서 야외 수업을 했다. 아이가 잠들면 공원으로 달려가 그 스트레칭 선생님을 따라 율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은 흘러 작년 이맘때쯤 영국에 왔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살도 좀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강제적으로 집에만 있게 되다 보니 옆구리며 등이며 군살이 붙기 시작했다. 군인에서 전역을 한 햇수를 세어보니 어느덧 8년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위기감을 느낀 나는 두 달 전부터 남편과 같이 헬스장을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 한 달은 매일 같이 출근 도장을 찍으며 열심을 냈다. 체중 변화가 단 100그램도 나타나지 않았다.
열심히 해도 달라지는 게 없어 보였다. 두 달 때에는 운동을 몇 번 빠지기도 했다. 여전히 살은 안 빠졌다. 20대 때에는 2-3주 운동하면 몸 라인이 잡히곤 했는데, 두 달이 다 되어가도 몸의 변화가 더디니 나이 탓을 하게 된다. 근데 사실 조금만 더 솔직히 생각해보면 내가 많이 먹기는 많이 먹는다.
먹는 양 = 활동량 ———> 체중 변화 X
이것이 현재 내 상태에 대한 팩트다.
이제 내 나이도 36. 예전처럼 먹을 것 다 먹고 운동 한 시간 정도 하는 걸로는 몸이 잘 바뀌지 않는구나를 느낀다. 식사량을 좀 줄이면서 즐겁게 운동하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것 같다.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이라고 했듯, 내 몸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관리하려면 진짜 나를 잘 아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사람마다 다 특징이 다르겠지만 우선 나는 군인이 된 20살 때부터 식이장애를 오래도록 겪었고 (이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써 보겠다) 항상 ‘먹는 것’의 이슈가 있었던지라, 건강하게 맛있게 잘 먹는 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굶거나 음식 종류를 제한하거나 하는 식의 식이요법을 하면 폭식으로 갈 가능성이 300%이기 때문에 이런 식이요법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경우엔 내가 좋아하는 것, 먹고 싶은 것 위주로 맛있게, 즐기면서, 즐겁게 잘 먹기가 1번이다.
운동은 2번인데, 이 역시 내가 원하는 이상적 체형, 라인 등을 먼저 아는 게 필요하다. 나는 보디빌더 같은 근육질 몸은 원하지 않는다. 적당히 근육이 있으면서 여성적 아름다움과 곡선을 간직한, 건강하면서도 약간은 슬림한(마른 몸은 X) 몸을 만들고 싶다. 특히 아랫배, 등, 옆구리 등에 자리 잡은 ‘군살이’들과 이제는 이별하고 싶다.
그리고 또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느낀 건데, 나는 무게를 막 올려가면서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코로나로 잠시 중단됐던 요가 수업이 다시 시작돼 오늘 요가 수업을 듣고 왔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잠자고 있던 내 몸을 깨우는 기분이랄까? 하나하나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호흡에 집중하니 정신까지 맑아지고 개운해졌다. 두 달 가까이 아널드 슈왈처 같은 아저씨들 틈에서 깨작깨작 중량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내가 한없이 부족한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요가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왜 이렇게 가뿐하고 만족스러운지!
그러니까 결국은 운동도, 식단도, 각자에게 맞는 각자만의 방식이 있다는 얘기다. ‘저 사람이 저렇게 해서 살을 뺐대. 나도 똑같이 따라 해야지.’라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그 방법이 내 몸과 마음의 상태에 잘 맞아 들어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마케팅에서도 고객의 니즈(needs) 파악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듯이, (기자의 입장에서는 시청자/청취자(audience) 니즈 파악이 되겠다) 몸을 관리하는 것에 있어서는 나의 니즈를 잘 파악하는 게 가장 우선이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몸은 뭔가?
내가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운동 종류는 뭔가? (내 성향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운동은 뭔가?)
내가 내 몸에게 공급하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뭔가?
내가 건강하게, 맛있게, 질리지 않고 식사할 수 있는 식단은 뭔가?
내가 궁극적으로 운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가치는 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근데 답다 찾고 운동 시작해야지! 하면 영영 운동을 시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어, 이거 괜찮네. 혹은 어 이건 좀 영 아니다’ 하고 알게 되니까.
나도 이제 과거의 체력은 잊어버리고 새싹 병아리 같은 마음가짐으로 운동하면서 나를 더 알아가려 한다. 단순히 몸무게를 줄이는 게 아닌, 건강하고 유쾌한 내 삶을 위해 먹고, 마시고, 운동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