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그리고 무너진 꿈

내생애 최초의 반항

by 정은쌤

2005년 11월,

수능을 보러 갔다.


엄마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따뜻한 도시락을 싸주셨고,

아빠는 함께 시험장을 나서주셨다.


아빠는 “더 잘하려고 하지말고 하던 대로만 하고 와”라고 하셨지만

왜 이리도 떨리던지 빨리 이 시험이 끝나서 웃으며 시험장을 나서고 싶었다.


평소 모의고사를 잘 본 것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시험장을 들어섰다.


하루 종일 시험을 보는 행위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엉덩이 힘과 체력도 필요하지만,

하루 온 종일을 시험을 보기 위한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견뎌야 하는 지구력 또한 필요하다.


나는 아마도 이 당시엔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조건으로 시험을 위한 지식 공부 외에 것들은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것 같다.

이는 비로소 임용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시끌 벅적한 응원 부대를 지나 교문을 통과하고

언어영역을 시작으로 제2외국어까지 수능시험의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교문 밖을 나설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놀러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시험을 망친걸 뻔히 알았다.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할까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결과가 나오는 날.

내 시험 결과는 내가 원하는 대학 뿐 아니라 아빠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었다.


나는 재수를 하기 싫었다.

그냥 쉬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정말 무기력했다.


아빠가 화가나는 걸 꾹 참고 있는게 보였다.

재수를 할건지, 그냥 점수 맞춰 대학을 갈건지를 결정해야했다.


그런데 사실 재수에 대한 아주 작은 조각의 희망은 있었다.

내가 아무 대학에나 가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 20대가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 동아줄을 부여잡고 말을 했다.


“난 교대에 가면 과외도 하고, 밴드 동아리도 하고, 유럽여행도 가고 싶은데,,,”


만약, 나의 이 말에 공감하고, 적극 응원하는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오!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게 많았구나! 그래! 그동안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었을텐데,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 많이 해보고 경험해봐! 다 인생의 보템이 될거야!

아빠도 하고 싶었는데, 사실 아빠는 그럴 사정이 안되서 20대 다운 20대를 못보냈는데, 너는 너답게 살아봐!“


이 말을 들었다면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을것이다.

다시 재수도 하면서 아빠의 뜻대로 교대에도 합격하고,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에도 합격해서 어딜 가야하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 말 대신 다른 말을 들었다.

“쓸데 없는 소리! 교대 가면 얼마나 바쁜데, 내신도 챙겨야 하고 할 게 얼마나 많은줄 알아? 무슨 동아리야?”


휴,,

나는 더이상 희망이 없었다.

내가 대학생이 될 이유가 없어보였다.

나는 언제 자유로워질까?


나는 살고 싶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살고 싶었다.


정말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어 말했다.

나는 숨통이 필요했다.

“나 그러면 3년제 유아교육과로 갈래.”


정말 숨쉴 구멍이 필요했는데, 대신 조건이 붙었다.

“그러면, 임용고사봐. 유치원도 공립이 있더라.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있는데, 거기 선생님이 임용고사보고 들어오셨더란다.”


내 인생에 임용고사같은건 계획에 없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단 내가 숨쉴 구멍이 필요했으니까.

내 최초의 소심한 반항이었지만, 내가 나를 위해 결정한 것이니까.


나는 일단 다녀보고 반수라도 할 생각이 생기면 말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의 반항은 또 다른 시작이 되었다.

무너진 꿈은 내 마음 속 깊이 씨앗이 되어 언젠가 피어나길 바라며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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