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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정선생 Jun 19. 2024

교사의 지옥문은 ‘미시오’로 열린다.

《교사의 고통》: 외전(1)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면 거기에는 ‘미시오’가 붙어있을 것이다. 우리 삶이 지옥이 되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며, 그 순간은 대부분 타인과 세상을 밀어내는 ‘척력’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교사는 ‘당기는 삶’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나의 삶에 타인을 초대하고, 자연과 공존하며, 약자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삶이다. 교사는 끝없이 당기는 삶을 가르쳐야 하기에, 사람과 세상을 밀어내라고는 말하는 무수한 힘들은 교사에게 가장 아린 힘이다. 

    

그러나, 교사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미시오’의 힘이다. 협력이 아닌 경쟁을 강요하는 승진문화, 협력적 소통이 아닌 각개전투적 분열을 추구하는 관료적 문화, 삶의 서사가 아니라 숫자로 교사의 전문성을 평가하는 계량주의적 문화 앞에서 교사는 당기는 힘보다 미는 힘을 먼저 배운다.


품격을 가르치는 교사의 말에 '기분 상해죄'를 덮어 씌우고, 고통을 말하는 교사의 목소리에 '누칼협'의 냉소를 보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헌신을 '헌식짝' 취급하는 우리 사회의 '척력' 앞에서 교사는 마음속에 조그맣게 남겨두었던 '당기는 삶'을 소리 없이 저민다. 




'당기는 힘'을 잃은 사람은 언젠가는 절벽 끝에 설 수밖에 없다. ‘미시오’의 본질은 어떤 대상을 밀어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이상 밀어낼 것이 없는 상황이 될 때까지 그 힘을 반복하는 고립에 있다.  ‘나 혼자 사는 삶’과 '방해받지 않는 삶'을 로맨틱한 삶으로 숭상하는 지금의 시대에, 교사의 삶은 소리 없이 절벽으로 밀려나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공동체와 함께하는 광야인가? 아니면 더 이상 밀어낼 것이 사라진 절벽인가? 만약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헛헛함이 가시지 않는다면, 당신은 절벽 끝에 서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당신이 절벽 끝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면 괜찮다. ‘미시오’의 힘을 극복할 기회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미시오'가 붙어 있는 문은 잘 열지 않는다. 교사가 되고 나서부터 생긴 묘한 습관이다. 이건 정말 비밀인데,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 몰래 당기고 들어간다.


**《교사의 고통》에 담지 못한 글과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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