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고통: 외전(3)
영화 〈파묘〉는 어둠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에는 어둠의 ‘핵심’을 드러내는 존재가 등장하는데, 바로 ‘험한 것’이다. ‘험한 것’의 본질은 ‘동원되는 존재’라는 데 있다. 그는 약자를 지배하고, 모든 삶을 숫자로 환원하는 제국주의 노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빈약하다. 영화에서 ‘험한 것’은 늘 자신의 모시라고 말하고, 그가 목을 벤 사람의 숫자에 집착할 뿐, 자기 삶의 서사를 말하지 못한다.
강자와 수치화에 매몰된 삶은 이렇게 초라하고 비틀린다. 그가 영화 내내 불꽃이 되어 공중을 배회하는 이유 역시, 그가 동원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서사가 박탈된 존재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발로 땅을 디딜 수 없다. 그래서 ‘험한 것’은 한 번도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끝없이 삶을 배회한다.
이러한 ‘지배’와 ‘수치화’에 저항하는 존재가 ‘뒷 것’이다. 그렇다. 학전(學田)을 꾸려간 김민기이다. SBS에서 방영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는 그의 삶이 온전히 녹아있다. 그는 수많은 약자의 삶에 공명했고 사람을 부품으로 취급하는 ‘수치화’에 맞섰다. 삶과 사람을 향하는 시선은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는데, 그러하기에 그의 노래는 귀가 아닌 가슴에 머문다.
김민기는 자신을 늘 ‘뒷 것’이라 칭했지만, 그가 길러낸 수많은 예술인들의 이야기에서 ‘김민기’는 선명한 주인공이었다. 김민기가 평생 해온 일은 결국 ‘이야기’를 만들어 낸 일이었고,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선 곳을 가리지 않고 시대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삶의 서사를 이야기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은 동원되지 않고 지배하지 않으며 축적하지 않는다.
지난 70년의 세월 동안 우리 사회는 자본과 경쟁을 숭상하기 위해 교사를 비롯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위대한 평민들의 삶을 정성스레 ‘험한 것’으로 만들어왔다. 해묵은 동원의 시간 동안 교사들의 이야기 역시 무참히 납작해졌다. 이제 교사들은 ‘뒷 것’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 교사의 서사를 이제라도 만들고 이어 붙여야 한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에 나오는 가사처럼, 교사는 이제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서 우리 함께 이야기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