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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정선생 Jul 17. 2024

교사의 교사, 그리고 어른 김장하

교사의 고통: 외전(5)

교사의 삶을 영화 장르로 표현하자면 ‘누아르(noir)’일 것이다. ‘누아르’는 불어로 검은색을 뜻한다. 실제 누아르 장르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어둠을 헤매며 삶에 저며있는 수많은 부조리 속에서 방황한다. 그러나 누아르 영화의 주인공은 절대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을 묵묵히 감내할 뿐, 그것을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누아르 장르가 비극으로 끝나는 대부분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둠 속에 고립되고, 빛을 거부할 때 그 삶은 반드시 꺾인다. 그래서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가 ‘교사’이다.

     

‘빛을 비추어주는 사람’이 바로 ‘스승’이다. 스승은 거창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혼자 고립되지 말고, 세상으로 당당히 걸어 나가 너의 삶을 살렴”이라는 메시지를 끝없이 건네는 사람이다. 그래서 스승은 ‘삶’을 말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삶’에 깃든 어둠을 순식간에 간파하는 사람이며, 그 삶에 ‘빛’을 건네는 겸손한 어른이다. 아무리 높은 연봉을 받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선생이라고 하더라도, ‘삶’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스승이 될 수 없다. 삶을 말하는 사람만이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시선을 건네기 때문이다.     




교사가 의지할 어른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김장하’는 숨겨진 스승이다. 김주완 기자가 김장하 선생의 삶을 취재하여 적은 《줬으면 그만이지》를 읽으면서 ‘김장하’라는 인물의 삶과 철학에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는 오랜 시간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약자들의 삶을 소리 없이 키워냈다. 돈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지역 예술인들의 삶을 소리 없이 지원했으며, 상처받은 여성들이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명신고등학교를 우수한 학교로 키워 국가에 헌납했으며, 백정이 주도한 인권운동인 형평운동 기념사업을 남모르게 후원했고, 진주문고가 자본에 밀려나지 않도록 도왔다. 김장하 선생은 이토록 엄청나고 귀한 일들을 오랜 시간 소리 없이 해내 왔으나, 언제나 ‘뒷 것’으로 머물렀다. 그래서 그의 삶은 뒤늦게 알려졌으나 우리의 가슴에 오래 머문다.     


김장하는 ‘빛’이었다. 그가 평생에 걸처 한 일은 ‘삶’을 기르는 일이었다. 한약방에 찾아온 사람들과 낮은 목소리로 삶을 말했고, 그가 보낸 강렬한 빛은 진주를 살아가는 수많은 약자들의 삶에 닿았다. 약자의 삶에 빛을 보내되,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오로지 “당신의 삶은 그 자체로 귀한 것이니 꺾이지 말고, 당신의 삶을 살아가소”라는 메시지를 평생에 걸쳐서 보낸 분이다.    

 

나에게 김장하의 삶은 그 자체로 ‘스승’이었다. 교사로 살아가는 일은 무수한 흔들림과 복잡성을 긍정하는 일이며, 나의 소신에 가해지는 해묵은 박해에 저항하는 일이다. 그러한 긍정과 저항이 한계에 달할 때, 교사는 어둠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이런 교사에게 김장하는 말할 것이다. “당신 아주 잘하고 있으니, 걱정마소. 당신도 나도 삶을 기르는 일을 하는 사람 아니오”라고 말이다. 어둠을 걷어내는 것은 기어이 빛일 것이고, 그 빛을 증명하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모두 잊고 있는 진실인데, 김장하는 낮은 목소리로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교사의 교사는 그렇게 삶의 소중함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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