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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니에 Jun 23. 2021

술도 못 마시는 내가 술을 끊은 이유

세상에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딱 소주 3잔. 정확히 3잔

이걸로 충분하다.

내가 술에 취해 토하기까지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또 있다. 우리 가족은 4명이 1년 동안 마시는 술이 소주 1병이 안 된다.

내가 술을 못 마시는 이유는 바로 "가족력"이다.


아빠는 술 한잔만 들어가면 얼굴부터 발끝까지 붉어져 기절하실까 봐 사람들이 마시지 말라고 말릴 정도다.

엄마는 절실한 기독교인이시라 술에 손도 안 대시고 오빠도 나도 술 먹는 게 고역이다.

누가 술 마시면 즐겁다고 했던가?


"회사 생활 어떻게 했어?"

술 못 마신다고 하면 꼭 한 명은 이렇게 나한테 묻는다.

나는 다행히 여자만 몇십 명씩 있는 재경부에서 근무해서 술 때문에 불편해 본 적은 없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나는 여자들이 사이에서 취한 척 미친 듯이 논다.

이미 술 마신 사람처럼 분위기를 띄우니 술 때문에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프랑스에 사는데 와인을 왜 안 마셔?"

프랑스에 널린 게 미술관이어도 안 가는 사람 많다.

심지어 에펠탑 꼭대기에 안 올라가 본 사람은 널렸다.


나랑 맞아야 좋은 거지 안 맞으면 아무 소용없다.

도수가 높은 와인 경험을 말하자면..

적포도주를 반 잔 먹고 기절한 적이 있다.

그 후로는 화이트 와인 혹은 로제 와인만 마신다.


술 한잔에 두통이 오고

두 잔에 목소리가 갈라져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세잔이면 밤새도록 토해야 하고 누군가가 몽둥이로 내 몸을 때려 잠을 잘 수 없다.

누가  술 마시면 혈액 순환돼서 잠이 온다고 했던가?


첫 술을 누구한테 배웠는지 중요하다고 했다.

그때 술버릇이 평생 간다고 말이다.

그래서 꼭 술은 어른한테 배우라고 했다.


나의 첫 음주 경험은 중 2 여름방학 때 바닷가에서였다.

써클에서 캠프를 갔는데 소주를 두 잔인가 세잔을 마시고 만취했다.

고로.. 바닷가로 뛰어들며 죽겠다고 했고

친구들과 선배들이 다 날 뜯어말리느라 술판이 난장판이 되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 8 학군 강남에 있는 학교를 졸업했다.

공부만 할 것 같이 생겨서는 다들 술이 얼마나 쎈지...무서운 것들

술 취하는 건 한 순간인데 학교에서 놀림과 그들만의 추억은 영원했다.

역시 창피함은 내 몫이었다.


두 번째 창피한 기억은 대학 1학년 때 사발식 날이다.

뭘 넣었는지도 모르고 "동기 사랑"을 외치면 벌컥벌컥 술을 마시다 거이 반 기절했다.

얌전히 기절했으면 좋으련만 하필 학회장 선배의 핸드폰을 손으로 내리쳐 액정이 부서지고 말았다.

나는 LT에 다녀와서 수리비 현금 7만 원을 선배한테 내밀었다.

선배는 됐다면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선배에게 명령하길 "야! 저 년 술 먹이지 마!"

한 번의 진상으로 대학시절이 편했다.


누가 술 마시면 모두가 친구가 된다고 했던가?

술 마시면 다들 울고 불고 섭섭하다고 속마음을 터놓는다. 그리고 서로 부둥켜 안고 운다.

근데 왜 술 깨면 다시 어색해지는 건가?

취중진담이 무슨 말이던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대학 동기들이 나에게 그랬다.

"술은 마시면 늘게 되어 있다고"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술을 취해 과방에서 자기 일쑤였다.

술을 먹고 싶다가도 동기들을 쳐다보면 "나라도 정신 차려야지" 싶었다.



즐겨 마시던 호가르덴 화이트 맥주와 잔이 예뻐 몇 모금 축이는 꽉 맥주


누가 술이 맛있다고 했던가?

맛있다는 칵테일, 달달한 맥주, 샴페인 요쿠르트 소주

다 필요 없다. 도수가 높으면 취한다.

내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술은 호가르덴 화이트 맥주 5도짜리이다.

작은 병 하나면 딱 좋다. 큰 캔 하나를 다 마시면 체한다.

취하기 전에 체한다.



못 마시는 술을 끓어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있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먹을거리가 풍성해서 신이 났다.

백포도주 2잔을 마셨는데 술이 술술 들어가서 "오늘 왜 이렇게 술이 잘 들어가지?" 생각될 정도였다.
전혀 취하진 않았는데 두통이 있었다.


나는 양쪽 시력의 차이가 많이나 만성 두통이 있다.

뇌 CT촬영까지 해봤지만 시신경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청소용품의 독한 냄새를 맡아도 통으로 구토를 할 정도로 예민하다.

술 마시는데... 두통?

아니나 다를까 다 토했다.

역시 술은 나랑 안 맞는다.


올 2월에는 맥주 한 캔 마셨다가 죽을 뻔했다.

피자를 먹으면서 5도짜리 화이트 맥주를 한 캔을 마셨다.

빨개진 얼굴을 보고 레아가 묻는다 "엄마 술 마셨어?"

정신이 알딸딸 몽롱해져서 침대에 누웠다.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쏟았다.

이건 내 주사다.


애들이 빨래 널라고 나를 부른다.

침대에서 일어나니 토할 것 같았다.

화장실로 달려가니 귀가 멍해지고 숨 쉬기가 힘들다.

하필 남편은 당직이라 집에 없다.

손을 씻으면 나아질까 싶어 세면대로 갔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니 귀신처럼 얼굴과 입술이 창백했다.

쓰러질 것 같아 침대로 달려갔다.

갑자기 귀에서 수돗물 흐르는 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다.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유튜브로 이루마를 검색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호흡이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루마 곡을 들으니 귀에 울려 퍼지던 물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피아노 연주 3곡을 듣고 나는 술에서 깼고 다시 평온을 찾았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다시 토하기를 반복했다.

5번 토하고 어린이용 토 멈추는 약을 사용했다.

그리고 편안해졌다.


원래 배 불러서 한 캔 다 못 마시는데 오늘 웬일로 술술 들어간다 했다.

체하고 취해서 결국 이 사단이 났다.

이 날이 내가 마지막 술을 마신 날이 되었다.


맥주 한 캔에 아이들 남기고 세상을 떠날 수 없어서 나는 금주를 결심했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나도 술에 취해 신세 한탄도 시원하게 좀 하고

술 취한 척 진상도 좀 부려보고 싶은데

내 인생에는 그럴 기회가 없을 듯하다.

.

.

.

무알콜을 마셔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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