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쫄보다. 겁도 많고 멘탈도 약하다. 겁이 많아서 놀이공원에 가도 후룸라이드나 다람쥐통이 한계고(롤러코스터는 꿈도 못 꾼다) 멘탈이 약해서 무서운 이야기나 영화를 보면 그 분위기에 오랫동안 잠몰되어 쉽게 헤어 나오질 못한다.
몇 달 전 친구와 함께 '킬링 디어'라는 영화를 봤다. 기괴한 스토리에 독특한 연기법에 오싹한 사운드를 쓰는 영화였다. 특히 사운드가 기가 막혔는데, 복도를 걸어가는 지극히 평범한 장면에서도 찢어지는 비명소리 같은 음악을 써서 배경음 좀 멀쩡한 거 쓰라고 울부짖었던 기억이 난다. 잘 보긴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장면 한 장면 고통받았지만 분위기는 취향이었다(심약한 주제에 기괴한 스토리를 좋아한다). 다만 내 멘탈은 그 영화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했으므로 한동안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덮쳐오는 오싹한 감각과 싸워야 했다. 작은 등을 켜 두고 긴 영상이나 노래 앨범을 하나 틀어놔야 잠에 들 수 있었고 깜깜한 밤이 되면 방 밖을 나가지 않았다. 나갈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 홀로 있으면 영화에서 가장 무서웠던 캐릭터가 특유의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유증은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 이젠 작은 등을 켜 두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그래도 정적에는 좀 익숙해져서 이젠 조용히 잘 수 있겠다, 싶었지만 최근 '미드 소마'라는 영화가(꽤나 수위가 높은 고어 영화 중 하나다) 너무 보고 싶어 이것저것 줄거리를 찾아 읽은 뒤로 증상이 재발했다. 이제는 최소 두세 시간 길이의 유튜브 영상을 꼭 틀어두고 잔다.
저녁을 다 먹고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데 핸드폰에 썬더 스톰 알림이 떴다. 비 오기 전에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와야지 했는데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썬더 스톰 알림이 뜬 만큼 비가 거세게 내렸고 이따금씩 천둥도 쳤다. 그러니 갑자기 집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같이 사는 하우스 메이트는 오늘 여행을 떠나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 그 오싹한 감각이 내 몸에 벌레처럼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정적의 상태를 견딜 수 없어 백현의 'Delight' 앨범과(앨범을 재생하면서 백현오빠 나를 지켜줘, 하고 외쳤다...) 어느 먹방 유튜버의 먹방 영상을 틀었다. 노래는 그렇다 쳐도 먹고 싶은 게 땡길 때만 보던 먹방 영상이 이렇게 훌륭한 부적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도 두 개를 틀어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다행히도 지금은 썬더 스톰이 그쳤다. 정전이 나면 어떡하지 오늘 밤에 무사히 잘 수 있을까 누구한테 전화라도 해야 하나 하고 걱정했던 게 민망할 정도로 그새 밖이 평화로워졌다. 하지만 오늘 밤을 나 홀로 보낸다는 사실은 변함없고 아직도 부엌에서 거실로 이어진 긴 복도를 보면 밝은 데도 오싹하다. 글을 쓰기 위해 영화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기만 했는데도 충분히 무섭다. 지금 집 안의 모든 불을 켜 두고 다이닝 룸에서 이동이 자유로운 대신 밤을 새우면서 버텨야 할지 내 방에 들어가서 편하게 자는 대신 다음 날 아침까지 갇혀 있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다음 달에 이사를 가기로 되어 있다. 어느 상가 건물 원룸에 살기로 했다. 같은 층에 3-4명 정도의 세입자가 이미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방은 따로 써도 같은 집을 공유한다는 것과 그저 건물을 공유한다는 것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자취를 그렇게나 바라 왔지만 나의 천적인 오싹함을 홀로 견딜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