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첫 북한산을 찾았을 때, 나는 아직 등산이 낯선 초보 등산인이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무거워 오른 지 10분도 안 돼서 후회했다. '이곳은 나 같은 초짜가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구나.' 그 시절 나는 소위 말하는 취업 준비생이었는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북한산 산길은 꼭 그 불안함의 모양과 닮아 있어서인지, 그날의 등산은 유독 더 고되었던 산행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행히 몇 개월 후, 나는 한 중소기업에 취업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산을 떠올리면, 취업이 되기 전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못했던 취업 준비생 시절의 28살 내가 겹쳐 보인다. “무소속”의 삶이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한지 뼈저리게 느꼈던 어렸던 20대 후반의 내가, 여전히 그 산행길에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이제 2025년 11월이다. 그사이 벌써 8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20대 후반의 나는 30대 후반을 향해 가고 있다. 세월은 제법 흘렀는데 ‘나'는 달라진 것 같기도, 그대로인 것 같기도, 어쩌면 퇴보한 것 같기도 하다. 달라진 건 나이뿐만 아니라 8년간 꾸준히 산행을 다닌 덕분에 울퉁불퉁한 산행길도 척척 오르는, 척척박“산”이 되었다는 거다. 물론 등산 스틱과 등산화, 등산 장갑으로 무장하는 것은 필수지만 말이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점은 또다시 “무소속”이라는 점이다.
최근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던 안.정.적.인 직장인 생활을 뒤로 하고 무작정 퇴사를 내질렀다. 요즘 SNS를 휩쓰는 퇴사 유행에 덩달아 휩쓸린 것은 아니었다. 로또 당첨 같은 든든한 뒷배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쪽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고정적으로 나오는 달달한 월급 때문에 ‘안정적’인 줄 알았던 직장이 사실 내 정신 건강과 맞바꾼 돈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그길로 퇴사를 결심하고 야금야금 정신을 갉아먹던 많은 것에게 작별을 고했다. 퇴사를 지른 후 깨달았다. 가장 안정적이었으면 하고 바랐던 곳이 사실 가장 불안정한 곳이었다는 걸.
이번 퇴사는 도피이기도 하고, “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최초의? 발악이기도 하다. 더 이상 남의 것을 대행하는 삶이 아닌 나의 것을 해보고 싶은 삶의 의지다. 8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늘 생각만 해왔던 일. 나의 것. 내가 좋아하는 일. 사실 뭘 하고 싶은지는 아직 찾아가는 중이다. 다만 더이상 미루지 않고 실행하고, 끝장을 봐보고 싶다. 길 끝엔 후련함일지, 경험일지, 실패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일지 모르는 시간이므로. 무작정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아! 물론, 이런 의지가 있어도 “내 길은 어디일까”를 고민하는 게 없어지는 건 아니더라.
회사 다닐 때완 다른 의미로 싱숭생숭하고, 숨만 쉬어도 줄어드는 통장 잔액에 놀라고, 여전히 무소속인 건 적응이 안 된다. 다행인 점은 8년 전 만큼 불안하고 고독하고, 쓸쓸하진 않다는 거다. (정신승리는 필수.) 무서운 점은 그땐 30대를 앞두고 있었고 지금은 40대를 앞두고 있다는 거랄까?
2017년, 불안의 시절 스스로를 구원했던 한 문장이 있다.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다.” 시간이 흘러도, 강산이 변해도 난 이 말을 계속 되뇌고 있다. 8년 동안 많은 게 변했고, 미끄러졌고, 어떤 것은 그대로다. 앞으로의 8년도 그러할 테지. 하지만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다는 마법의 문장은 나를 구원해낼 거라는 걸 30대의 나는 안다.
또 언제쯤 북한산을 찾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딱 한 가지, 확실한 건, 백운대 정상에서 맞는 바람이 너무 짜릿해서, 곧 하산해야 할 걸 알면서도 굳이굳이 언젠가 봉우리를 오르게 될 거라는 거다. 왜냐? 그것이 등산이니까,,,, 그것이 인생이니깐,,,,,~?!
8년차 직장인이었던 사람의 무작정 퇴사 후 다시 찾은 북한산. 구구절절 후기 끝.
결론: 북한산 백운대는 최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