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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dys Oct 07. 2018

위로가 필요한 엄마에게


정리해고를 이유로 13년 간 다니던 회사를 떠나야 했던 그녀의 나이는 고작 쉰이었다. 


어린 두 딸과 당신 본인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주말에도 늘 일했던 그녀의 직업은 '공순이'. 공장 노동자였다. 나는 어렸고, 그녀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매번 들어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그녀는 종종 주말에도 일을 하러 갔고, 매일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일터에서의 소음 때문인지 자그마한 주황색 소음 막이 귀마개가 늘 그녀와 함께했다. 그리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꼭 언니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것들이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이다. 


그녀는 회사에서 종종 힘든 일이 있던 날에는, 당신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늘 더 배우고 싶었지만, 삼촌들 뒷바라지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일,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한 번도 못 가봤다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과, 여행을 유난히도 좋아했다. 


2010년 당시 갓 성년의 날을 맞이해 성인을 자축하며 활기를 띠던 나와 달리 그녀는 쉰이 되고 생기를 잃어갔다. 퇴직과 동시에 찾아온 갱년기로 매일 같이 울적한 나날을 보냈다. 평소 밝았던 모습이 아닌 그녀가 울적해하는 모습은 왠지 생경한 느낌이었다. 가족들은 늘 무언갈 배우고 싶어 했으니 무엇이든 배우라고 권했다. 당신은 중국어, 영어 등 외국어를 비롯해 팝아트, 꽃꽂이, 사진, 그림 등 여러 가지를 취미로 비로소 배우기 시작했고 이내 활기를 찾았다. 그녀의 음울했던 모습은 곧 잊혀 갔다. 나는 그녀가 정말로 괜찮은 줄 알았다.


평소 할 말은 하고 사는 그녀는, 일터에서도 부당한 처우를 겪으면 부당함에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그랬다. 노조가 없었던 공장에서, 대부분은 부당한 일을 겪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더럽고 치사해도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혹은 말없이 떠나거나. 부당해서 목소리를 내더라도 '굳이 문제를 만드는지' 동료들로부터 이해받을 수 없었던 그녀는, 동료들로부터 밉보임을 당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13년 동안 한 곳에서 일을 했는데도 살갑게 연락하고 지내는 동료가 없는 것 같았다. 


괜찮은 줄 알았던 그녀는 종종 쌍용차 부당해고 사건이나, 공장 노동자 부당해고 같은 사건이 뉴스에 나올 때면 이따금씩 혼잣말을 읊조렸다.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에 대하여. 그리고 얼마나 치사한 일을 당했는지. 평소처럼 밝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우울은 불특정한 시기에 무언가의 트리거와 함께 종종 찾아왔다. 


<위로 공단>은 대한민국의 여성노동자, 특히 1970~80년대 여성 공장 노동자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누군가에겐 잊혔지만 누군가에겐 현재형인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이 땅에 성실하지 않은 노동자가 어디 있냐 외치고, 위로를 건네야 할 당사자는 정작 권력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함을 들춰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는 보는 내내 한 사람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 가슴이 더 먹먹해졌다. 


나와 그녀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한 <위로 공단>을 보며,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이제는 괜찮겠지 싶어 넘겼던 그녀의 지난날에, 그리고 가끔씩 일 했던 때를 회상하며 삭힌 화를 또다시 삭이고 마는 그녀에게 이제라도 위로를 건네 볼까 한다. 이제 당신이 힘들면 언제든 들어줄 준비가 되었으니 말해도 괜찮다고.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는 게 아니라, 화를 내도 괜찮다고. 다 들어주겠노라고.





다큐멘터리 <위로 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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