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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마사띠 May 13. 2019

Kirtan! 인도 음악잔치에 가다

춤과 노래로 신을 만나는 자리, 그 환희에 대하여!

International Yoga Festival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날 밤까지도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남아있지만 오전부터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떠남과 보냄, 아쉬람 내 분위기가 분주했다.

페스티벌이 끝나고 2박 3일간 진행되는 박티 요가(Bhakti Yoga)워크샵을 미리 신청해 두었기 때문에 몇일 더 남아있을 우리는 사뭇 여유로웠다. 들뜬 모습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마음이 가벼웠다.


페스티벌 내내 엄마 수업에 따라 들어갔던 깍두기가 더 이상 꿔다 놓은 보리자루 노릇은 싫다며 반기를 들었다. 띠로리............


앞으로 3일간 들어야 하는 박티 요가 수업도 있고 해서 자체적으로 하루 방학 선언! 여유 있게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물론 이제까지도 여유로웠지만 말이다.


이제는 척하면 척인 오토바이 청년의 도움으로 한국식당 드림카페로 갔다. 오전 시간이라 한가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2층 창가 자리에서 뒹굴뒹굴 한참 동안 게으른 시간을 만끽했다.

그림그리는게 일상이 된 깍두기
최대한 게을러보자
창 밖으로 보이는 강가
내가 걍 그린 강가(Ganga)

음식도 시켜 먹고 여유를 부리다가 한국식당에서 일하는 인도 청년 Suraj가 오토바이를 태워줘서 아쉬람으로 금방 돌아왔다. 늘 200루피를 줬는데 오늘은 안 받는 그. 좀 많이 받았던 것이 본인도 미안했었나보다. 양심적인 청년인 거 같아서 우리가 리시케시에 머무는 동안 발이 좀 되어줄 수 있겠냐고 물으니 선뜻 연락처를 줬다.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도움이고 그에게는 한 달간 쏠쏠한 아르바이트가 될 터.


날씨가 화창한 오후였다. 오전에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평소와 달리 조용해진 아쉬람이 낯설게 느껴졌다. 간밤의 악몽으로 잠을 설쳤더니 피곤이 몸속에 남아있었다. 아쉬람 안쪽 잔디마당에 매트를 깔고 벌렁 누웠다. 일광욕 타임.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 샤띠! 하고 부른다. (샤띠는 내 요가 이름이다)


잔디 밭에서 과자먹는 깍두기와
깍두기를 이뻐해준 캘커타에서 온 Sanjana
그녀와의 여유로운 한 때
조용해진 아쉬람에서 다들 여유가 뭍어났다
심지어 예삐까지도....내 매트를 차지한 개님

캘커타에서 온 Sanjana는 아동심리상담사라고 했다. 어쩐지 아이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참 부드러웠던.....깍두기가 Holy Soul인 게 강하게 느껴진다는 그녀. 알고 보면 우리 모두 Holy한 존재들 아니겠는가. 그녀와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Sanjana는 다음 날 새벽에 캘커타로 돌아간다고 했다. 넓디넓은 아쉬람에서 사람들이 차고 넘치던 요가페스티벌에서 유독 자주 마주쳤던 Sanjana. 나 역시도 유난히 그녀가 편안하고 친근했다. 산제나는 깍두기와 꼭 캘커타 집으로 놀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인연법이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해 보고 싶은 만남들이 있다.


내가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깍두기는 아쉬람에서 자주 보이던 열 살짜리 인도 오빠랑 신나게 뛰어놀았다. 한 시간도 넘게 놀길래 산제나가 떠난 뒤에 두 녀석 가까이로 살금살금 가봤다. 그랬더니 깍두기 목소리가 들렸다. 배배배? 배배배?

저게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살짝 들이밀고 봤더니 인도 남자아이가 벙어리인 것 같았다. 귀도 안 들릴 터.... 그 아이가 입에서 내는 소리 ‘배배배’가 둘 사이의 언어가 되어있었다. 물어볼 때는 꼬리를 올려 배배배? 싫다고 할 때는 배배~~에~~ 꿍짝이 맞아 신나게 놀 때는 빠르게 배배배 배배배 그리고 멀리 있는 오빠를 부를 때는 배배배에!


순간 교과서에서 배운 각종 도덕 윤리들이 내면에서 용솟음쳤다. 깍두기에게 ‘오빠 말 따라 하고 그러면 안되지!’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하지만 또 다른 내가 이야기한다. 이 아이들에게 그저 둘만의 언어일 뿐인걸? 깍두기는 이 배배배 소리를 내는 인도 오빠가 벙어리라는 인식도 없이 그저 그의 언어라고 믿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둘은 배배배거리면서 놀았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일광욕을 좀 더 할 수 있었다.


배배배라는 하나의 음성으로 수많은 대화를 하고 꺄륵꺄륵 웃어대며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인간의 말이 얼마나 부질없을 수 있는지를 그리고 언어를 넘어 우리가 얼마나 연결된 존재들인지를.


아쉬람에서 생활을 하는 그 아이는 물을 때마다 이름이 달랐고 누구와도 잘 어울렸지만 늘 모르는 사람에게 적응해야 했기 때문인지 눈치가 비상하리만큼 빨랐다. 눈빛만 살짝 바뀌어도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았다. 그게 몇 차례 고맙기도 하고 나중에는 쨘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직 더 어린냥 부려도 되는 나이인데.....하지만 어쩌면 그건 나의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혼을 단련시키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조금 이르거나 조금 늦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이가 단단함 위에서 본인만의 꽃을 피워내기를 바래본다.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 밤! Kirtan(우리나라로 치면 음악잔치쯤 되겠다) 이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낮잠을 흐드러지게 잔 깍두기도 오늘만큼은 늦게까지 즐길 준비가 되어있었다. 일본인 룸메이트 유키코는 사람들과 근교 하리드왓으로 놀러 가서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다.


깍두기와 아쉬람 밖으로 나가 저녁을 먹고 길거리 작은 슈퍼마켓에서 간식거리를 샀다. 길거리 과일장수 아저씨와도 원석을 파는 미소가 예쁜 청년과도 하루에도 여러 차례 눈으로 인사하며 지나가는 골목길. 이 골목길을 지나 음악 잔치 키르탄(Kirtan)이 열리는 Yoga Ghat로 갔다. 이 아쉬람에 일주일쯤 살았더니 여기저기 아는 얼굴들이 많다. 나는 인사하기 바쁘고 깍두기는 호주 이모, 인도 이모, 세계 각국의 이모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기 바빴다. 맨 앞 줄에 앉아있는 룸메이트 유키코가 보였다. 수업에도 파티에도 늘 첫째 줄에 앉는 그녀는 정말 반듯한 FM! 유키코 옆에 한국인 여성분이 앉아있었다. 발리에 살고 있다는 그녀는 두 아들의 엄마로 혼자 잠시 인도에 왔다고 했다. 마치 동네 마실 나왔다는 말투의 그녀에게서 삶의 내공같은게 느껴졌다.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으나 깍두기 챙기느라 더 긴 대화를 나누긴 어려웠다.


공연을 기다리며 과자먹는 깍둑
예삐도 공연보러 옴
모범생 유키코 이모랑 나란히 앉아 공연을 기다리는 깍둑
공연준비에 한창인 뮤지션들 가운데 남자가 David Ma

예정된 시간을 좀 많이 넘겨 공연이 시작되었다. 바잔, 키르탄 등 인도에는 잔치를 부르는 이름들이 많이 있다. 노래하고 춤추며 신을 찬미하는 일은 인도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 있었다.


노래는 천천히 부드럽게 시작되었다. 반복적인 만트라를 부르며 함께 빠져드는 사람들. 음악처럼 즉각적인 대화가 또 있을까.


일본, 독일, 미국, 인도 국적의 만트라 뮤지션들
일본인 시타르 연주자(왼), 독일에서 온 David Ma(가운데), 인도인 타블라 연주자(오) 모두 수준급 이었다
독일에서 온 Love keys라는 그룹의 리드싱어(왼), 미국인 만트라 가수Anandra George(가운데), 오른쪽을 까먹었다 죄송;;
그리고 일본에서 온 힐링음악 연주자 와카. 내 룸메 유키코의 친구이기도 했다.
노래하는 그들
일어나 춤추기 시작하는 사람들

음악은 점점 빨라졌고 사람들은 일어나 함께 노래하고 춤추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최고조를 향해가고 있었다. 이 시각 이후 사진은..... 없다. 왜냐하면 깍두기와 난 무대 위에 올라가서 신나게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외국인 이모 삼촌들 모두 어린 깍두기의 손을 잡고 뱅글뱅글 돌며 아이처럼 신나게 춤을 췄다.


더 이상 신날 수 있을까. 음악이 최고조에 이르러 한참 즐기고 나면 다시 멜로디가 조금씩 느려지면서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하아.....뜨거운 것의 끝에서 환희로 가득해지는 순간이다. 주변 누구를 보아도 행복을 물을 필요가 없는 표정들. 그 한가운데에 있기에.


키르탄에서 만트라 감상중
인도와서 셀카요정된 깍둑

그렇게 한바탕 춤추고 노래하며 놀고 난 뒤....

흥을 주체할 수 없는 깍둑
댄스댄스~
춤이란 것이 멈춰지지 않는 밤
방까지 돌아오는 내내 댄수댄수~
오늘 여기가 바로 나의 무대~~
하레 크리슈나 만트라 부르며 세수 양치!
솔직히 깍두기만 신난건 아니었다 ㅋㅋ

인도가 정말 너무너무 재밌다며 내일 또 잔치에 가자는 깍두기였다. 방에 와서 씻고 잠잘 준비를 하는데 곧 유키코가 돌아왔다. 다 큰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유키코. 일본인 특유의 개인주의와 조심성 덕분에 편했지만 친해지기도 사뭇 힘들었는데...그녀가 서툰 영어로 말을 건넨다.


“I feel connect with you heart to heart.”


그렇다.

침묵도 대화고 배려도 대화다. 꼭 많은 말이 아니어도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


유키코의 눈에 담긴 우리 둘
깍두기가 찍어준 나와 유키코언니


페스티벌에 일본에서 온 인도 음악 연주자들이 많았는데 유키코는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그녀이지만 살아온 삶의 궤적들을 보면 상당히 저돌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참 멋진 언니다! 매년 가을에 본인이 사는 삿포로에 인도 음악축제가 열린다고 알려주었다.


어느 가을날, 시절 인연이 허락될 때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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