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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 마르 Jan 16. 2024

성 야고보 축제를 피하려다가

산티아고가 널 기다리고 있어

프랑스길을 걷다 보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마지막 100km 전부터가 오히려 고비가 된다.

100km 전인 사리아 Sarria 지역부터 걸었다는 여권 도장이 있으면 순례 증명서를 받을 수 있어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여름 같은 성수기는 사리아에서부터 알베르게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여서 어떤 순례자들은 따로 호텔을 잡는 경우도 보았다.



그런데 그것 아는가.

그 마지막 100km가 제일 재미없다는 것을.

아무리 증명서를 받고 기뻐해도 그건 종이에 불과하다. 아름다운 순간은 놓치고 가장 지루한 구간만을 순례길로 기억할 테니 말이다. (단체로 오는 경우는 마지막 100km만 걷는 경우들이 특히 많다)


사리아에서부터 나는 더 이상 걷기가 싫어졌다.

과장 좀 보태서 이 시장통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특히 7월 24일에 산티아고에 있는 Fiesta de Santiago Apósto 대축제 때문에 더 사람들이 몰린 시점에 걸었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었다.

 

결국 그냥 축제 이후에 산티아고에 도착하기로 마음먹고 조금씩 걷기 시작한다. 마침, 독일인 할아버지와 동행하게 되면서 함께 10km 걷고 쉬고 4km 걷고 쉬고 했었다. 이런식으로 걷다보면 축제가 끝나는 26일쯤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도 조금 걷고 너무 일찍 도착해서 할 게 없는 알베르게 밖에 앉아있었는데 한 스페인 순례자가 말을 건다. 그는 까미노를 여러 번 많이 걸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불만을 토로했다.

이 길은 더 이상 내가 좋아했던 느낌이 없어. 돌아가고 싶을 정도야.


그는 그때 이런 말을 한다.

산티아고가 널 기다리고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갑자기 어떤 강한 확신을 받았다.

내일 산티아고에 도착해야겠다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영적으로 자아도취적인 느낌이라 살짝 부끄럽지만, 사실 그 길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난 산티아고가 날 기다린다는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다음날 45km를 걸어 산티아고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원래 알람을 맞추지 않아 가장 마지막에 알베르게를 나서는 순례자였던 나는 그날만큼은 새벽에 눈을 뜨고6시에 길을 나섰다. 떠나기 전, 독일인 할아버지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새벽 공기를 마시며 아직 지지 않은 별들을 바라보며 걷는다.

산티아고로 나서는 새벽 아침


20km에 보통 4시간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중간 식사시간과 쉬는 시간도 생각해서 9-10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스퍼트를 내야만 나중에 힘이 부족해도 어떻게든 도착할 거란 계산에 처음부터 빠르게 속도감 있게 걸었다. 7월 24일 축제 당일, 새벽 6시에 출발한 나는 12시간 뒤인 저녁 6시에 산티아고 대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너무 지쳐버려 눈물 따위의 감동은 없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큰 도시라 이미 도시엔 입성했지만, 외곽에서 중심가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기까지 3km 이상의 거리가 오히려 고비였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일단 순례 사무실에 가서 긴 줄에 합류해 마침내 순례자 증명서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축제 때문에 알베르게든 호텔이든 잘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도착한 순례자들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들의 숙소는 이미 꽉 찼다는 답을 받았다. 어쩌지 하며 일단 걷다가 인파 가득한 길에서 한 미국인 모녀에게 갑자기 다가가 묻는다.



안녕!

당신들은 어디서 머물러요?

나는 이제 막 이곳에 도착했는데 머물 곳이 없어서 물어보게 되었어.



그들은 산티아고 성당 바로 근처 숙소 위치를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방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기대 안하고 갔는데 … 놀랍게도 방이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왜 하필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녀들에게 물어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하니 얻게 되는 작은 기적의 순간이기도 했다.


숙소에서 찍은 순례 증명서


숙소는 아주 오래된 스페인식 건물이었는데 작은 방 하나 전부를 사용할 수 있으면서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고 오히려 저렴한 편이었다. 매일 여러 사람들과 2층침대에서 잠을 자왔던 걸 생각하면 혼자 머무는 방은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포상이었었다. 거기다 대성당 바로 근처라 종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무릎과 발목에 감았던 붕대를 풀었다.


이제 끼니를 때우러 마트를 찾아 걷다가 순례길에서 지나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게 된다.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를 축하해 주고 함께 대성당 앞에서 축제를 즐기며 늦은 밤까지 들뜬 분위기로 맥주를 마시며 축배를 들었다.








[성 야고보 축제 ]

Fiesta de Santiago Apóstol

피에스타 데 산티아고 아뽀스똘


7월 24일 -25일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시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 야고보 축제가 열린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도 성야고보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으로의 순례 여정인데 그의 이름이 붙은 축제라니 얼마나 규모가 큰지 짐작해 볼 수 있다.

2024년 역시 7월 24일, 25일 열린다.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밤에 있는 미디어 쇼인데 산티아고 대성당을 배경으로 미디어 파사드가 펼쳐지고 그 후에 dj가 나와서 공연을 하고 사람들은 춤을 췄다. 주민들, 순례자들, 관광객들 모두가 즐기는 대축제였다.

스페인 축제는 꽤 퀄리티가 높아 시기가 맞는다면 길도 걷고 축제도 즐기기 좋다.

다만, 사람들이 붐비는 시기이니 숙소를 미리 예약해 두거나 아니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오전 일찍 들어갈 수 있게 거리 스케쥴을 조정해두자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가본 알베르게 & 1인실 숙소]

: 2번째 까미노때 갔던 곳인데 둘다 역사적 장소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글에 등장하는 펜션은 위치랑 이름이 기억 안나서 생략)

1. Albergue Seminario Menor : 신학교를 개조해 만든 알베르게 도미토리

2. Hospedaría San Martiño Pinario : 수도원을 개조해 만든 소박하고 깔끔한 호텔 (1인실 - 패밀리룸)


첫번째 알베르게 세미나리오 메노르는 규모가 큰 알베르게로 10유로 언저리였다.

두번째 오스뻬다리아 산 마르티뇨 피나리오는 피니스테라 갔다가 산티아고에 다시 와서 하루 머문 곳인데 사실, 세미나리오 메노르 알베르게 위치가 생각 안나서 헤매다가 사람들한테 길을 물어보다가 잘못 가게 된 곳이다. 1인실에 20유로 -23유로 사이였는데 오늘 확인하니 가격이 훨씬 더 올랐다.


여기가 아니더라도 관광지 도시라 워낙 알베르게 & 호텔 & 에어비앤비가 많으니 다양하게 골라 머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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