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 마르 Jan 25. 2024

순례길에 가져갔다가 짐만 되는 것

배낭의 무게가 인생의 무게

걷다 보면 배낭 던져서 버려버리고 싶을 때가 간혹 생긴다. 알베르게에 순례자들이 두고 온, 버려진 물건들도 본다. 순례자들은 집에서 짐을 쌀때 잠깐 들어보고 어깨에 배낭을 메 봤겠지?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만하면 들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 4-7시간을 들어야 한다면 어떨까.

죽을 맛이다. 첫날 피레네 산맥 넘고 나서 짐을 바로 우체국에서 나중에 도착할 숙소나 한국으로 보내는 경우도 보았다.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거대한 배낭을 메고 끙끙 대는 것도 보았다. 배낭의 무게가 인생의 무게라고 걸으면서 점점 물건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살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뒤돌아 보게 된다. 나는 짐을 최소로 가져간다고 했는데도 결국엔 순례 사무실에 기부하는 물건들도 있었고 안 가져갔다가 난처해진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짐을 어떻게 싸야 할지 난감한 예비 순례자들을 위해 이번에는 책에는 안 적혀있는 의외로 필요한 물건과 필요 없는 물건과 마지막으로는 안 가져갔다가 후회한 물건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 필요 없는 물건 ]

- 책

당신이 순례길에서 과연 책을 읽을 것 같나. 나는 프랑스길 첫째 날 숙소에서 버려진 한국어로 된 연금술사 책을 본 적이 있다. 외국책처럼 재생지 같은 갱지로 된 가벼운 책이 아니라 우리나라 책은 무겁고 부피도 많이 차지한다. 그리고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자연에서 시간 보내고 쉬고 하다 보면 읽을 생각도 안 든다. 애초에 안 가져가는 게 낫다.

차라리 아주 가벼운 노트와 펜을 가져가 하루를 기록하고 느낌을 적는 것을 오히려 추천한다.

있다 보면 적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온다.


- 카메라

짐을 바리바리 싸 온 순례자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중에 날 놀라게 한건 카메라였다.

DSLR에 삼각대가 있는 영국인을 목격. 아니 왜!

거기다 그는 걷다가 중간에 발목을 다쳤다며 그 무거운 걸 지고 절뚝거렸다.

그리고 어떤 순례자는 카메라에 핸드폰에 아이패드로 이 모든 순례 과정을 담으려고 하였다.

너무 무거워 짐을 미리 보내려고 해도 비싼 기기이기 때문에 안심도 안 될 것이니 애초에 가져오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나의 경우 : 첫 까미노에선 아이폰 3s 만 가져가 사진을 다 찍다가 그다음부터는 아주 조그만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와 핸드폰으로 번갈아 가며 찍었다. 그 후 순례길 후 핸드폰이 망가져서 만약 카메라를 안 가져갔다면 사진은 전부 날아가고 기억만으로 추억했을지도 모른다. 핸드폰 사진의 퀄리티는 한정적이고 용량 문제도 있어서 부족할 것 같다면 작은 디카를 가져가 디카 메인/ 핸드폰 서브로 쓰기 좋다.


- 물병 : 무거우니깐 스텐으로 된 이런 거 말고 그냥 물 한병 플라스틱 병에 담긴 거 마트에서 사서 마시고 식수대에서 물 담고 다녀라. 얇은 실리콘으로 된 걸 본 적도 있다. 뭘 사용해도 좋지만 무거운 건 절대 안 된다.



[ 의외로 있으면 유용한 것 ]


-빨래집게 2개 + 큰 옷핀 2개 : 순례길 걸을 땐 보통 스포츠 양말 2켤레를 가져가 번갈아 가며 신는다. 그런데 스포츠 양말은 두꺼워서 잘 안 마르니 배낭에 달아 걸으며 말리면 좋다. 그때 배낭에 걸어두거나 숙소에서 빤 옷을 걸 때도 빨래집게 있으면 나름 유용하다.

아주 작은 빨래 비누 : 옷 매일 빨아야 하니 자른 빨래 비누나 가루를 가져가면 빨래하기에 좋다. 정 없을 땐 그냥 알베르게에 있는 비누로 빨아도 된다.


- 스포츠 타월

일반 수건은 그날의 일정을 마치고 샤워를 하니 필요한데 두꺼운 건 부피 차지하고 안 말라서 불필요하다. 잘 마르는 스포츠 타월로 몸을 한번 두를 정도로 큰 거 하나, 보통 사이즈 하나 이렇게 가져가면 편하다.


- 추운 계절에 적극 추천하는 준비물 (6-8월 제외한 모든 날 : 봄, 가을도 밤에는 정말 춥고 비도 맞을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1) 뜨거운 물 핫팩 주머니 : 알베르게에 이불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없는 경우가 있어서 모든 옷을 껴입고 침낭 속에 들어갔는데도 덜덜 떨며 잔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이후 순례길에서 핫팩 주머니를 가지고 다녔는데 부피도 별로 차지하지 않고 유용했다. 알베르게 대다수가 요리가 가능해 뜨거운 물을 끓이는 곳이 있으니 물을 끓여 조심히 주머니에 담고 뚜껑 잘 닫혔는지 꼭 확인해 보고 침낭 속에 안고 자면 따뜻하다.

2) 두꺼운 수면 양말

비 오는 날 걷는데 발도 다 젖고 스포츠 양말을 뚫고 나오는 추위가 발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졌다.

마침 들린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마시며 쉬고 있는데 거기서 실로 뜬 두꺼운 양말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 쉬는 순례자들 모두 한족씩 사서 숙소에서 쉴 때 신고 다녔다. 잘 때 발이 시리면 온몸이 추우니 한국에서 싸게 파는 수면 양말 하나 들고 가서 잘 때 신고 자면 좋다.


- 얇은 보자기 같은 천 : 휘뚜루마뚜루 쓸 수 있는 보자기 같은 크기의 가벼운 천이 의외로 좋다.

첫 까미노 때 침낭대신 들고 갔다가 (얼어 죽을 뻔하고) 침낭 구매 후 이거 짐만 되는 거 아냐? 했는데 너무 잘 썼다. 추울 땐 위에 숄로 덮고 바지를 잃어버렸을 땐 허리에 둘러 옷핀으로 꽂아서 치마로 썼다.

피니스테레에선 해변에서 깔개로도 썼다. 용도는 내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있으니 가져가면 도움이 되는데 이건 안 가져가도 되니 옵션이다.


- 휴대용 포크 : 이것도 옵션인데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지만, 알베르게에서 요리해 먹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알베르게에 식기가 부족한 경우도 있고 모두가 다 같이 긴 세월 동안 써오기도 한 거니 가벼운 휴대용 포크 가지고 다니면서 써도 좋다. 근데 난 그냥 알베르게에 있던 거 썼다.


- 편하고 부피 안 차지하는 가벼운 슬리퍼 : 짐을 풀고 다닐 때 신을 편한 신발이 필요하다. 나는 보통 막 쪼리 가져가서 신고 다녔다.



[안 가져갔다가 후회한 준비물]

-침낭

한 여름날 침낭 필요 없을 것 같다고 깔고 잘 얇은 보자기 두장만 챙겨간 나였다. 그리고 첫날밤 추위에 밤새 덜덜 떨었다. 여름이라도 추워서 필요하니 챙겨가야 한다. 무겁고 큰 것보단 적당히 작으면서 따뜻한 기능성 침낭을 잘 찾아보면 있다. 나는 스페인 알베르게에서 운 좋게 침낭을 판매해서 구매했다. 그리고 두 번째 까미노에선 영국에서 바로 넘어가는 거라 아웃도어 용품 샵을 못 찾아 그냥 갔다가 또 얼어 죽을 뻔했다. 그 후에 데카트론에서 구매한 걸로 두고두고 사용한다. 얇은 여름 침낭도 있으니 추위를 별로 안 타는 사람들은 그걸로 가져가도 된다.

론세스 바예스에서 구매한 거대한 침낭. 가방은 작았는데 꽤 무겁게 들고 다닌 첫 번째 순례길


-등산 스틱

이것도 첫 까미노 때 한 세트 가져갔다가 하나는 누가 가져가고 다른 하나는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 기부해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 까미노 때 안 가져갔다가 난감한 상황이 있었다. 산을 지나가는데 비로 인해 땅이 물러져 내가 올라가는데 자꾸 미끄러져 내려가고 주변에 잡을 것도 없었다. 그때 다른 순례자 아저씨가 자신의 막대기를 위에서 붙잡게 도와주셔서 그거 잡고 겨우 올라갔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내려갈 때 짚을 스틱이 없으면 배낭 무게가 무거워 내리막에서 발목이 다칠 수 있으니 스틱으로 지지하며 내려가면 훨씬 도움이 된다. 휴대용 스틱을 가져가면 되는데 2개를 쓸 줄 안다면 2개를 사용하는 것이 길을 걷는데 도움이 되고 안 되면 한 개라도 챙겨가고 그것도 없으면 길 걷다가 보이는 나무 가져와서 지팡이로 걸어도 된다.



- 우비  + 가방 방수 커버

우비 첫 까미노에선 한여름이라 비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 까미노(4-5월) 엔 여러 번 쏟아지는 비를 만나 다 젖었다. 이땐 안일하게 우비를 하나만 가져갔는데 나를 보호할 건지 내 짐을 보호할 건지 정해야 했다. 짐에다가 우비를 입히고 나는 여러 옷을 껴입었는데 진짜  비 맞은 생쥐꼴 되어 덜덜 떨었다. 그 후엔 내 우비, 가방 방수 커버 이렇게 가지고 다니니 비 오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재킷을 아웃도어 방수로 바꾸니 더 안전했다. 최대한 가벼운 걸로 챙기는 것이 포인트이고 한 여름이 아닌 이상 폭우를 만날 수도 있으니 챙겨가는 것이 좋다.






TIP

* 스페인은 한국과 같은 220 v


* 속옷을 새로 사야 하거나 샴푸가 필요할 경우

조금 큰 도시 옷 매장 (자라) 같은 곳에서 구매할 수 있고 샴푸는 슈퍼나 마트 가면 다 있다. 바리바리 싸가지 마라.


* 순례길이 큰 도시를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이때 급한 아웃도어 용품_등산스틱, 침낭, 스포츠 타월등_ 필요한 사람은  Decathlon 데카트론을 구글맵에서 검색해 찾아가 구매하면 된다. 거의 모든 아웃도어 용품을 국내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만약 파리로 들어와 관광하고 순례길로 넘어가는 경우 데카트론은 프랑스 브랜드라 파리엔 분명 있을 것이다. 거기서 필요한 것들 구매해 가면 좋다.


*옷은 사실 자기 맘대로. 하드락 카페 티셔츠 입고 걷는 경우도 보았으니. 다만 가볍고 잘 마르는 옷이 편하긴 할 것이다.



이전 10화 산티아고에서 86.6km 더 걸으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