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카 극장 Polka Theatre
런던 윔블던 남쪽의 조용한 거리. 단조로운 빌딩 속 빨간색으로 간판을 달고 있는 나지막한 건물 폴카 시어터(Polka Theatre)가 눈에 띈다. 이 극장은 영국 최초의 어린이 전용 극장으로, 1979년 문을 열었다.
2019년부터 2년에 걸쳐 진행된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약 850만 파운드가 투입된 공사는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 지속가능성과 창의성의 강화를 목표로 했다. 태양광 설비, 고성능 단열, LED 조명 등 친환경 인프라가 도입됐고, 창의 공간과 관람 편의성이 대폭 확대됐다. 결과적으로 폴카는 더 많은 어린이와 가족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팬데믹 이후의 예술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델이 되었다.
폴카는 그보다 더 오래전, 1967년 인형극 순회단의 여정에서 비롯된다. 연출가 리처드 길(Richard Gill)이 이끄는 이 순회 공연단은 영국 전역을 돌며 수많은 아이들과 만났고, 마침내 1976년 윔블던의 오래된 교회 공간을 상설 어린이 극장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폴카 시어터는 언제나 ‘아이들이 첫 연극을 만나는 곳’이라는 정체성을 지켜왔다. 1983년부터는 5세 미만 유아를 위한 공연을 별도 공간인 ‘어드벤처 시어터’에서 선보였고, 1994년에는 소외계층 아동에게 무료로 공연을 제공하는 ‘Curtain-Up!’ 프로젝트를 도입하며 사회적 책임에도 앞장섰다. 폴카는 어린이를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관객'으로 바라보는 철학을 실천해 온 곳이다. 극장 운영에 어린이들의 의견을 듣는 Young Voices도 5세-7세, 8세-12세, 12세 이상, 이렇게 세 그룹으로 운영 중이다.
폴카 시어터는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 열리는 장소가 아니다. 극장 전체가 하나의 상상력 마을처럼 설계되어 있다. 300석 규모의 메인 극장은 물론, 70석 규모의 Adventure Theatre(영유아 전용), 창의적 학습을 위한 워크숍 스튜디오, 감각을 자극하는 실내외 놀이터, 촉각정원, 카페, 장난감 가게까지 한 공간 안에 어우러진다. 공연을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놀이하고, 상상하고, 직접 만들어보는 예술적 체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모든 공간은 아동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장애 아동과 가족을 위한 포용성 또한 놓치지 않는다. Relaxed 공연, 수어 통역 공연, 자막 및 오디오 설명, 휠체어 접근성 등 장애인 접근 설계가 극장 전반에 적용돼 있다.
폴카 시어터의 핵심은 공연 그 자체만이 아니다. 놀이와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교육적 체험,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연대야말로 폴카가 특별한 이유다. 연중 운영되는 공연은 인형극, 창작극, 고전 동화 각색, 가족 뮤지컬 등으로 구성되며, 6개월 된 영아부터 13세 청소년까지 각 연령대의 특성에 맞춘 콘텐츠가 기획된다.
특히 Adventure Theatre는 영아와 보호자가 함께 관람할 수 있는 드문 공간으로, 감각적 자극과 상호작용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 자주 무대에 오른다. 극장에는 의자 대신 방석이 놓여 있고 아기들은 객석 바닥을 기어 다니며 공연자와 '교감'한다. 그 뒤로는 낮은 벤치가 있어 더 많은 관객들이 공연에 참여한다.
참여형 프로그램도 매우 활발하다. ‘Baby Explorers’, ‘Young Explorers’ 같은 연령별 워크숍을 비롯해 주말 체험, 방학 캠프, 요리·미술·음악 활동까지 다양한 창의적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공연을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함께 만들고 참여하는’ 예술 경험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도록 구성돼 있다. 또한 ‘The Big Bash!’ 같은 계절별 테마 파티는 가족 단위의 대형 체험 이벤트로, 수익금은 문화 접근성이 낮은 계층의 아동을 위한 티켓 후원에 사용된다.
지역 학교와의 연계도 눈에 띈다. 폴카는 정기적으로 단체 관람, 학교 연극 워크숍, 예술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지역 교육기관과 강한 파트너십을 유지해 왔다. 이는 폴카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키우는 창의적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세대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예술을 처음 만났고, 시간이 흘러 그 아이들이 또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은 극장을 다시 찾는다. 이 극장에서 잠시 봉사하면서 만난 관객 중에는, 리모델링 이전에 왔었는데, 변화된 모습을 보고 싶어 들른 이웃들도 있었다. 손을 잡고 왔던 아이들은 자라 성인이 됐고, 어떤 이들은 손자 손녀의 손을 잡고 이곳을 다시 찾기도 한다.
폴카 시어터의 공연들은 연극적 언어로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공연으로 채워진다. 다채로운 주제와 높은 완성도로, 가족들은 어린이들과 모두 함께 공연을 관람한다. 공연에 집중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극장 실내외 놀이터에서 재미있는 하루를 보낸다. 어렸을 때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이 자라 자연스럽게 극장을 찾게 되지 않을까.
폴카 시어터는 단지 어린이를 위한 극장이 아니라, 어린이라는 존재 자체를 존중하며 예술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다. 아이들이 예술을 통해 세상을 상상하는 힘, 그것이야말로 폴카 시어터가 오래도록 지켜온 가장 소중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