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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Nov 11. 2023

이발 일 년

초보 이발사의 소회

사진에 깊이 빠졌던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잠도 안 자고 새벽같이 출사를 다녔다. 그 당시에는 미용실에 갈 때마다 매번 여기서도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분무기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부터 머리카락을 빗어 들고 손가락 사이로 잡은 머리카락 끝부분을 가위로 자르는 모습까지. 미용사의 손놀림이 참 아름다웠다. 몇 번의 가위질만으로도 머리는 한결 가벼워졌고 깔끔해졌다. 그 마법 같은 장면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직접 이발을 해보기 전까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연습 끝에 나온 마법인지 몰랐다. 다만 겁 없이 이발을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부터 스스로 앞머리를 잘랐기 때문이다. 앞머리가 차지하는 부분은 전체 머리의 일부였으므로  간단했다. 많이 자르지만 않으면 되었다. 몇 번의 실패, 그러니까 머리를 한껏 당겨서 잘랐다가 눈썹 위로 껑충하게 올라가 버렸던. 약간의 차이로 인상이 참 달라졌던. 모두들 "너 앞머리 잘랐구나!"라고 알아봤던 길이. 그래서 아주 조금만, 자른 듯 만 듯 티 안 나게 자르는 것이 노하우였다. 그리고 미용실에서 보고 배운 것은 가위를 세워서 뾰족뾰족 자르는, 단면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집에 있는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봤던 경험들이 이발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와 재미를 줬던 것 같다. 


런던에 오면서, 이곳 이발비는 비싸다기에 4주 속성 이발을 배웠더랬다. 그 이야기를 글로 썼다. 


한 달에 한 번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특히나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다. "엄마 이제 몇 분?" 5분이라고 하면 그 순간부터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그러면 더더욱 초초해져서 마음만 급해지고 도무지 차분히 깎을 수가 없다. 초 세기를 중단시키고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려야 한다. 말을 시키면서 나는 머리 깎는데 집중해야 한다. 

전동 이발기로 머리를 깎다 보면 머리를 훅 파먹는 건 순간이다. 머리만 파먹으면 차라리 다행이다. 아이 귓바퀴에 상처를 낸 적도 있다. 가위 잡은 손으로 반대쪽 손에 약간 상처를 내기도 했다. 칼날과 가위를 들고 하는 일이기에 늘 조심해야 한다. 


머리카락은 자르기보다 치우기가 더 어렵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건 고도의 기술을 요하고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발의 절반은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이다. 미용실 바닥처럼 커트보 위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슥슥 빗자루질을 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 집은 온통 카펫 바닥이다.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와이어가 있는 셀프 미용 커트보를 한국에서 공수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커트보에 모인 머리카락을 쓰레기통에 모아 넣는 것도 일이다. 조그만 머리카락 조각들이 온 바닥에 흩어지면 청소기로 빨아들여 정리한다. 머리카락은 옷에도 튀고 피부에도 달라붙는다. 스펀지로 털어내도 떨어진 머리카락 조각을 누군가는 치워야 한다. 대부분 나다. 머리도 자르고 노동까지 해야 하니 가끔은 그냥 이발소에 보내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식구들 얼굴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이쁘다 멋있다 해가며, 어르고 달래며 머리를 깎는다.


머리카락은 사람마다 다르다. 두상도 다르다. 그래서 자르는 방법도 매우 다르다. 남편은 머리카락이 아주 굵고 성격처럼 고집이 세다. 단단히 방향을 잡고 있어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빗질을 해도 소용없다. 잘린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가시처럼 박혀 족집게로 빼낸 적도 있다. 머리카락이 박힐 수 있다는 게 놀라웠는데 상당히 따가웠다. 첫째는 제비추리, 목덜미로 자란 머리 아랫부분이 왼쪽으로 휘어지는데 이건 꼭 제 아빠를 닮아서 신기하다. 둘째 머리카락은 너무 가늘어 다루기 어렵다. 그리고 뒷목에 굴곡이 있어 다듬기도 힘들다. 둘째는 귀 위쪽 머리를 짧게 자르면 유난히 휑해 보인다. 그 부분을 너무 짧게 자르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 뒤통수를 잘 보지 못한다. 앞과 옆만 마음에 들게 자르면 웬만큼 완성이다.


머리카락은 참 빨리 자란다. 2주일이 넘어가면 벌써 깔끔한 느낌이 없다. 그러나 셀프 이발을 하니 이발소에 갈 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아무 때고 도구만 꺼내면 가능하다. 이발을 배우고 나서부터 남자들 뒤통수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저마다 다른 헤어스타일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고 그 스타일을 만드는 과정이 그려져서 더 재미있다. 




1년도 채 안된 이발 인생에 가족이 아닌 이의 머리카락도 잘라봤다. 첫 출장 이발은 하필이면 중2 학생이었다. 남편 어학원 친구가 자신의 아들 머리를 잘라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엄마(남편 친구)가 부르자 방에서 나와 삐죽 인사를 하는 아이는 나보다 키가 컸다. 얼굴을 덮은 긴 머리를 보고 그 엄마가 나를 왜 불렀는지 곧장 알아차렸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키워봐서 알고 있는데, 중학생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려웠다.

그 집 베란다에 의자를 하나 놓고 아이가 앉았다. 커트보를 두르고 나서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빗질을 했다. 남편 머리보다 더 두꺼운 모발에 완전 직모였다. 내 머리카락 굵기의 세 배쯤 돼 보였다. 숱은 얼마나 많았는지 그 양과 길이와 두께에 압도당했다. 무엇보다 아이는 머리를 자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역력히 보였다. 뒷머리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듬으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머리가 아침마다 심하게 뻗치는데 이렇게 길러야 그나마 덜 뻗친다는 것이다. 아이 엄마는 짧게 잘라달라고 하시고, 아이는 큰소리로 싫다고 했다. 엄마에게 소리를 지른 것이겠지만 내가 더 위축됐다. 초보 이발사는 긴장된 손으로 겨우 눈이 보이는 길이로 앞머리를 잘라냈다. 눈이 보이는 선에서 절충했다. 다행히 둘 다 적당히 만족시킨 것 같았다.


두 번째 이발은 우리 집에서 며칠 묵고 간 후배였다. 파리에 살고 있는데 런던에 잠시 여행을 오면서 우리 집에 묵게 됐다. 그를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특이한 헤어스타일이었다. 그 옛날 꽁지머리였나. 옆부분은 아주 짧은데 뒷머리는 목덜미를 덮을 만큼 길었다. 나는 보자마자 알았다. 그러나 바로 묻지는 않았다. "그 머리 네가 잘랐지?"라고 묻고 싶은 것을 한참 참다 물었더니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옆머리까지는 정리를 하겠는데 뒷머리는 보이지가 않아서 그냥 뒀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너무 잘 알기에 앉혀놓고 뒷머리만 정리해 줬다. 옆머리는 더 자를 것이 없을 정도로 아주 짧았다. 절반만 이발을 한 느낌이었지만 숙식 제공에 이발까지 해주다니 참으로 후한 민박집주인이 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가위질을 여러 번 하고 나니 내 머리카락은 더 과감하게 자르게 됐다. 머리가 좀 길었다 싶으면 화장실에서 싹둑싹둑 머리를 자른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따라 해보지만 전문가들의 손길을 따라가기에는 무리다. 그래도 머리를 자르고 나면 한결 가볍고 그 변화에 기분이 좋아진다. 층을 많이 내서 머리를 묶어도 빠져나오는 머리가 더 많았다면 다음엔 층 좀 덜 내면 되고, 너무 짧으면 좀 기르면 된다. 아무도 내 머리에 관심 없다. 


한 달에 한 번씩 남편과 아이들 머리를 잘라주며 지낸 지도 1년이 넘었다. 영어도 그렇고, 이발도 꾸준히 하다 보면 잘하는 날이 오겠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머리카락은 금방 또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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