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먹고 싶어. 밤새 고열에 잠을 설쳤던 아이는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메뉴를 이것저것 말해봤지만 아이의 요구는 분명했다. 주욱 늘어나는 치즈 스틱과 노란 소스에 찍어먹는 치킨, 감자튀김을 오렌지주스와 같이 먹고싶다고 했다. 엄마가 유치원으로 데리러 갔던 어느날 함께 먹었던 것을 기억해낸 모양이었다.
목이 많이 부어 식욕이 없는 아이에게 뭐라도 먹여야겠다싶어 핸드폰을 들었다. 어플을 열어 햄버거 세트와 치킨너겟 6조각, 치즈스틱 2개를 주문했다. 그때가 아침 9시 40분. 배달은 10시부터 가능하다는 팝업창이 떴다. 아직 가져다줄 수가 없대. 가서 먹고올까 물었지만 아이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10시가 되자마자 장바구니에 담았던 음식들을 재빨리 주문했다. 40분 정도가 걸린다고 떴다.
엄마 햄버거 언제와? 아이가 자꾸 묻기 시작했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나봐. 오토바이 타고 오고 있나봐. 우리 집을 찾고 있나봐. 계속되는 똑같은 물음에 이런저런 대답을 했는데도 햄버거는 오지 않았다. 어느새 도착하기로 했던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매장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앳된 목소리의 매니저가 주문을 체크해 주었다. 15분 전에 다른 곳 음식들과 같이 출발했는데 그 두 곳은 배달이 완료되었다고 나오니 5분 안에 도착할 거라고 했다. 라이더 분이 오늘 처음이라 찾는데 조금 걸리는 것 같으니 양해해 달라고도 했다.
아이에게 금방 올거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십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허기진 아이는 칭얼댔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까 통화했던 매니저도 깜짝 놀라며 아직까지 못받으셨냐고 물었다. 라이더 분이 다른 지역 분이신데 오늘 펑크낸 알바 자리를 채워주러 오신 거라고 했다. 라이더와 연락하고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전화는 금방 다시 왔다.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리겠다고 했다. 음식이 다 식겠네요... 체념한듯 말하자, 정말 죄송하다며 주문은 취소해 드리겠다고 했다. 처음엔 배달을 취소한다는 줄 알고 당황했지만 음식은 보내고 결제만 취소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알겠다고,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11시하고도 20여분을 넘겨서야 초인종이 울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배달원은 연신 죄송하다고 하며 음식을 건냈다. 앞에 고객님이 연락이 안되어 문앞에서 한참 기다리느라 늦어졌다는 이야기를 차마 맺지 못했다. 그도 마음 졸였을 생각에 고생하셨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는 다시 죄송하다고 하며 급히 떠났다.
드디어 도착한 햄버거는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봉투 안에 들어 있었다. 따뜻했을 음식들에서 나온 열기에 봉투는 눅눅히 젖어있었다. 너겟과 감자튀김을 접시에 담고 케첩과 머스터드를 짰다. 아이는 치즈스틱에 치즈가 늘어나지 않고 툭 끊기는 것을 의아해 했다. 식어버린 감자튀김을 씹으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음식을 시켜놓고 연락을 안받다니 별 사람이 다있네. 내 주문을 취소시킨 것 때문에 배달원이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닐까. 아이에게 몸보신을 시켜도 모자를 판에 패스트푸드를 먹이다니. 본의 아니게 공짜로 햄버거를 먹은 일요일 오전은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