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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Oct 24. 2024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는_정경성

경성님은 신기하게 다른 분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 분이 계시는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런던에 방문했던 선배님의 제자이기도 했어요.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도 '너 아마 이 사람 알 걸?'이라 말하는 듯했죠. 아는 분들이 겹쳐 세상은 정말 좁다는 것을 실감하며 신나게 런던에서 본 공연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체크포인트를 지나듯, 삶에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뤄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런던생활 3년 차에 접어든 정경성입니다. 저는 공연연출을 하는 사람이고요. 처음엔 석사 유학으로 영국땅을 밟았습니다. 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 MA Musical Theatre, Producer과정으로 졸업했고요. 현재는 웨스트엔드 극장 Duchess Theatre에서 Front of House / Cover Supervisor로 근무하면서, 제 개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자신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있나요?

한국에 있었을 땐 저를 ‘한 가지 직업으로 불리지 않는 사람’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었어요. 공연 판에서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달려가서 조연출, 협력연출, 조명디자인, 무대감독, 조명감독 등으로 일했고, 조그맣게 공연제작 사무실도 운영했었어요. 그리고 대학에서 강의도 했었고요. 어느 날 제 직업을 세어 보니까 5개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영국에 와서는 2가지 일만 하고 있습니다. 극장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고, 또한 제 작품을 올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회의를 하죠.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저는 뮤친자(뮤지컬에 미친 사람), 공친자(공연에 미친 사람)로 불렸어요. 한국에서도 많은 작품들을 봤지만, 영국에서 지낸 지난 2년간 120여 편 정도 공연을 관람했네요. 또한 현재 극장에서 주 6일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휴일 혹은 휴가를 내고서라도 보러 갑니다. 그러다 보니 거의 주 7일 극장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 자신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첫 번째는 통찰력이요. 연출 공부를 오래 해서 그런지 사물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사람을 잘 봅니다. 두 번째, 책임감이요. 당연한 얘기지만 작업할 때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잘 마무리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친화력도 좋은 편이에요. 살면서 많이 들어본 얘기가 주변의 누굴 닮았단 이야기를 많이 듣는 거 같아요. 주변에 한 명쯤 있을 거 같은 친숙하게 생긴 외모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생기는 친밀감으로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잘 쌓는 편입니다. 또한 평소에 삶에 대한 태도는 유쾌함을 많이 가져가려고 노력하지만, 제 안을 들여다보시면 깊게 생각하고, 행동도 신중히 하려고 노력해요. 이런 모든 것들이 제 강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런던에 온 지 얼마나 됐나요? 어쩌다, 무엇 때문에 영국에 오게 됐나요?

이제 3년 차에 접어들었네요. 처음에는 석사 유학을 하려고 왔어요. 영국에 이렇게 오래 있을 계획이 아니었는데, 인생이라는 게 예측하기 어렵잖아요?

처음에는 유학을 위해서 영국땅을 밟게 되었어요. 예전부터 유학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한국에서 학사•석사•박사(수료)까지 약 9년 넘는 시간 동안 뮤지컬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대한 갈증이 풀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두 번째 석사를 위해서 영국행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0년간 배움의 시간을 지나 보냈음에도 아직도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지만, 그 덕분에 공연을 볼 때마다 더 많은 것이 보이게 된 거 같아요. 특히 영국은 공연에 진심이다 보니, 정말 좋은 공연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저는 인생에 많은 목표들을 세워두고 사는 편이에요. 하나하나 체크포인트를 지나는 것처럼요.

그중에 제가 가장 이루고 싶어 했던 목표는 ‘청년기에 공연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고 불리는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에든버러 페스티벌 중에 한 군데에서 내 이름을 걸고 공연을 올리자.’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영국을 선택한 것도 여기로 오게 된 이유로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 영국에 와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우선, 건강을 되찾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건강을 되찾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 덕분에 제가 여기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생각이 넓어졌어요. 단순히 공연뿐만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제가 변화했지만,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만 살다가 영국에 오니, 많은 다른 점들이 눈에 보이고 공부해야 할 것들 투성이더라고요. 저는 그 점이 오히려 좋았어요. 이 모든 것들이 저의 피와 살이 되었으니까요.


또 뭐가 있을까요. 많이 느긋해졌어요. 한국에 있었을 때는 시간에 쫓겨 살았었어요. 나 자신을 언제나 채찍질했고, 더 압박했었죠. 하지만, 여기선 천천히 내 걸음의 속도에 맞춰서 걷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달렸다면, 지금은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내 페이스를 찾자는 마인드로 바뀌었달까요. 나 자신에게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최대한 스트레스를 안 주려고 노력하는 거 같아요.


✓ 영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좋은 공연을 관람할 때마다 영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한국에 오기 전까진 해외 공연들을 유튜브로 많이 찾아봤었거든요. 근데 확실히 직접 와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좋은 공연들이 제가 지금 여기에 계속 머물 수 있게끔 만들어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 분명 힘든 날도 있었을 텐데, 영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영국 왔던 초창기에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영어가 제 발목을 잡았어요.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안 들렸거든요. 진짜 ‘앞길이 캄캄하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구나 생각했어요.

제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은 거의 대부분 의사소통에서 시작됐거든요. 그 힘든 순간마다 저는 공연을 보러 갔던 거 같아요. (생활비 아껴서 공연 보는 재미가 쏠쏠했답니다.) 지금도 ‘내가 영어를 원어민만큼 잘하면,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있음에 감사하기도 해요.


✓ 영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미리 와본 사람으로서 오고 싶어 하는 분들께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요?

2016년 제 인생 처음 외국을 나가본 곳이 뉴욕이었습니다. 뉴욕에서 ‘The Drama Bookshop’이라는 공연예술 전문 서점을 방문했었어요. 그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서점에 가면 겨우 두세 칸 정도만 공연 서적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곳은 작은 서점이지만 서점이 통째로 공연 관련된 자료들만 판매하는 곳이라니! 내가 영어를 공부하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이렇게 넓어지는구나!’를 깨닫고, 영미권으로 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유학을 결정하기 전에, 그래도 공연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두 곳은 다 방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019년에 런던을 방문했어요. 그때 확실히 깨달았죠. ‘내가 가야 할 곳은 영국이다.’ 미국도 충분히 좋았지만, 저는 영국의 공연들이 좀 더 마음에 와닿았어요. 셰익스피어의 나라. 역사 깊은 극장들. 영국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그때부터 영국 유학 준비를 시작했어요.

비용적인 부분도 한몫했죠. 미국은 2년 이상 공부해야 하고 돈도 영국보다 많이 드는 반면에, 영국은 석사가 1년 과정이고 등록금도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저렴했으니까요. 그리고 후회하지 않아요. 좋은 경험들도 많이 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으니까요. 제가 이곳에 와서 깨달은 것 중에 행동을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보는 게 좋고, 말을 할까 말까 할 때는 안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니 실행으로 옮기세요!


✓ 당신의 인생 공연은 무엇인가요?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요?

‘The Little Big Things’를 추천하겠습니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 광고로 5초 정도 이 작품의 음악을 들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작품이 개막하자마자 달려가서 공연을 봤어요. 저에겐 제 인생 최고의 뮤지컬이었어요. 뮤지컬 이론적, 구조적으로 살펴봐도 정말 잘 만들어진 Well-made Musical이고요.

음악과 스토리, 무대 장치가 주는 스펙터클, 배우들의 연기력 모두 빠짐없이 완벽했어요. 이 작품이 더 의미가 깊은 것은 실제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배우들을 3명 캐스팅했고, 그들이 그 모습 그대로 무대 위에서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세 배우 모두 매우 매력적이고, 그들의 실력은 웨스트엔드 메인 스트림에서 공연한다는 것 그리고 이 작품이 원래 상연하기로 했던 기간보다 4개월 연장했다는 것이 보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일러가 안 되는 범위 내에서 말씀드리면, 휠체어를 와이어에 달고 공중으로 띄우는 장면에선 전 입을 다물지 못했던 거 같아요. 무대 장치가 주는 스펙터클도 스펙터클이지만, 저를 장면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게 했거든요. 정말로 이 작품, 한국으로 꼭 수입되길 희망합니다.


✓ 런던에 있는 극장 중에 추천하고 싶은 ‘공연장’이 있나요? 여기서 본 공연들은 대부분 좋았다거나?

저는 Donmar Warehouse를 추천하고 싶어요. 큰 극장은 아니지만, 실험적인 공연들이 많이 올라오고, 신진 예술가들 발굴을 위해서 힘쓰는 극장 중 하나예요. 개인적으로 ‘Next To Normal’의 팬인데, 브로드웨이 버전과 다르게 영국 버전으로 재해석해서 공연을 만들었더라고요. 브로드웨이 버전도 매우 사랑하지만 Donmar버전은 제게 좀 더 섬세하고,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올 연말에 시작되는 ‘Natasha, Pierre & The Great Comet of 1812’도 굉장히 기대 중입니다.

https://www.donmarwarehouse.com/pQv1QfV/about/our-history

돈마 웨어하우스는 저도 정말 좋아하는 극장인데요, 250석의 작은 규모이지만 극장을 신뢰하는 관객들로 표를 구하기 어려운 때도 많습니다. 1977년에 창립되었으며,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연극과 뮤지컬 작품을 선보이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혁신적인 작품 해석과 뛰어난 연출, 수준 높은 연기를 선보이며, 올리비에 상과 토니상 등 여러 주요 상을 받은 공연을 배출한 바 있습니다.


✓ 요즘 가장 몰입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현재 하고 있는 극장 하우스팀에서 테크니션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에요. 제가 영국에 있는 동안에 웨스트엔드 극장 산업에 대해서 최대한 넓은 영역에서 경험하고 싶거든요. 얼마 전에 제가 일하는 극장에서 무대 트레이닝도 받았는데 재밌더라고요. 한 단계 스텝-업 할 시기가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어요.


✓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이루고자 하는 꿈이 무엇인가요? 그것을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나요?

제 인생의 최종 목표는 ‘가장 ‘나’ 스러운 작품’을 만드는 거예요. 사실 제가 가진 공연 철학과 반대되는 방향이긴 한데요. 공연예술인이라면 저는 무조건 좋은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스태프들, 좋은 배우들, 좋은 관객들이 만나면 좋은 공연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제 Identity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언젠가 한 번쯤 만들고 싶거든요. 제가 작곡하고, 극작하고, 연출하는 작품이요. 아직 곡도 못쓰고, 글도 서툴지만, 하나하나 배워나가야죠. 그럼 언젠가 제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가장 ‘나’스러운 작품을 만들기 전에, 제가 가진 철학과 역량들을 시험해 봐야죠. 저는 그 무대를 영국으로 정했고, 첫걸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영국에서 살아남는 중이랍니다. 내년에는 에든버러 프린지를 포함한 여러 프린지 페스티벌들에 도전을 해볼 생각입니다. 가능하다면 에든버러 프린지 이외에도 영국에서 열리는 다른 프린지 페스티벌에도 참여를 해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제가 영국에서 프로듀서 과정을 졸업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나는 프로듀서보다는 연출로써 공연에 참여할 때 더 즐겁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온전히 연출로써 집중할 수 있도록 저와 함께할 동료분들을 찾고 있고, 그중에서도 특히! 저랑 팀워크를 맞출 수 있는 작가님을 찾고 있어요. 관심 있으시다면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앞으로 공연과 관련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어요? 어떤 이들을 만나 어떤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나요?

기본적으로 저는 밝은 극을 선호해요. 하지만, 극의 분위기보다는 함께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아무리 슬픈 비극이어도 팀 분위기가 좋으면 그게 관객들에게 전달이 되고, 아무리 재밌는 희극이라도 팀 분위기가 안 좋으면 느껴진다는 게 제 이론입니다.

저는 함께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비록 제가 10년간 뮤지컬을 전공해 왔지만, 공연 예술에 대해서라면 지식과 경험을 편식 없이 받아들여왔거든요. 그래서 뮤지컬뿐만 아니라 연극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제작하는데 도전해보고 싶어요. 긍정적이고 의견 나누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는 열정 넘치는 분들을 많이 만나 뵙고 싶어요. 서로 간의 에너지를 공유하고,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요.


30대에 접어들어 한국에서 일구어 놓은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첫걸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영국 땅에 왔어요. 제 친구들은 종종 제게 물어요.

“후회 안 해?”

저는 대답하죠.

“어, 후회 안 해.”

이 모든 과정이 험난 하지만, 저는 다가올 하루하루가 기대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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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gyeongsta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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