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 님과의 인연은 화제의 연극 제이미 로이드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시작됐습니다.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가 로미오 역을 맡아 티켓을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고 큰 화제를 모았는데 공연은 생각보다 별로였거든요. 나만 이 공연이 별로인가 생각하다가,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는 시원하게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무대, 의상, 가면 등을 제작하고 디자인하던 장하니라고 합니다. 2014년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2020년까지 한국을 기반으로 창작 작업을 하다가, '창작자는 왜 가난할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예술 경영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생각하는 저의 강점은 창작자와 실무자의 장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일단 제작자로서 손재주가 있어요. 엄청난 천재들 사이에서 창의성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공연 예술이라는 장르가 한 개인의 특출 난 재능보다 조화와 과정이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상호작용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큰 창작 작업 중, 한 부분만을 담당하기에 저는 전체를 관망하는 과정이 더 흥미로왔고 또 제가 잘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현장에서는 이 두 상반된 부분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스스로에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런던에 온 지 얼마나 됐나요? 어쩌다, 무엇 때문에 영국에 오게 됐나요? 왜 하필 영국 런던이었을까요?
런던에 2021년 10월 13일에 도착했어요. 청명한 가을 날씨였고, 임시로 정착했던 Airbnb에 도착한 순간 꽁꽁 쓰고 있다가 마스크를 바로 내 던졌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런던에 대한 동경은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 첫 번째 선택지도 아니었어요. 2020년 겨울 아르코의 지원을 받아 차세대 무대미술가 양성과정에 선정이 되어 체코 프라하에서 Jan Stepanek 디자이너의 어시스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창작자로서 홀로서기를 하던 중이었고,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아 경력 유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정말 좋은 기회가 찾아왔던 거죠. 저는 아르코에서 지원받은 3개월이 끝난 후 체코에서 유럽 극장 정책과 지원 사업 등을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코로나가 터져서 한국에 강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체코 가기 전 서울의 집과 작업실을 처분하고 나갔었기 때문에 부산의 부모님 집에서 지내게 되었고, 그때 본격적으로 유학을 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찾아보니 예술경영학에 유명한 나라는 영국과 미국이었는데, 미국은 “경영”에 강조를 하였고 영국은 “예술”에 초점을 맞춰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영국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학생 비자로 지내고 있고 곧 졸업생 비자를 신청하려 합니다.
영국에 와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한국에서도 꾸미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근데 여기서는 더 자유롭게 저를 표현할 수 있더라고요. 조금 특이한 복장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아니라 칭찬을 하더라고요. 또 한국에서는 항상 사이즈 문제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옷을 살 때 사이즈 고민을 안 해도 되어서 너무 좋았어요. 많은 한국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몸매에 대한 강박이 저도 있었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저를 가감 없이 보고 좋아해 줘서 저도 저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대중교통 타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연착이 되어도).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정말 재밌었어요. 이렇게 다양한 머리색, 눈, 피부, 체형, 키, 스타일들이 있는데, 왜 한국에서는 그렇게 검은 머리, 검은 교복과 신발에만 집착했는지 뒤돌아 보게 되었고요.
영국 와서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어요?
2021년에 이곳에 와서 2022년에 지원한 대학들에서 모두 오퍼를 받았었어요. 다만 제 IELTS 점수가 충족되지 않아서 결국 입학 반려를 당했을 때, 진짜 멍청하다고 자책도 많이 했고, 힘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런던에 작은 단칸방 굴 속에 파묻혔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 쓴 돈은 부모님이 지원해 주셨는데, 그게 너무 미안해서 생활비로 계란 하나 사는 것도 아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영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올까 말까 하는 사람은 분명히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51:49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유학 와서 인생 2년 정도 쓰는 거 전체적인 삶에 궤도에서 큰 손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시간이 낭비가 되는지 이익이 되는지는 자기가 겪어 보기 전까지는 몰라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 어림짐작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기 때문에 무조건 진행하고 나서 평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만 세상의 모든 곳이 다 사람 사는 곳 이기 때문에 영국에 온다고 세상이 180도 바뀌지 않아요. 단지 본인이 어떻게 적응하는가에 따라서 그 장소가 제2의 고향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인생 공연은 무엇인가요?
인생 공연이라는 물음에는 대답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모두가 다른 취향과 선호도를 가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잘 추천 못하겠더라고요. 대신 런던에 와서 처음 공연을 보게 된다면 몇 가지 추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Royal Opera House에서 하는 Ballet & Dance, Family Opera 작품들을 확인해 보라고 할 것 같아요. 모차르트나 차이콥스키 같은 접근하기 어려운 오페라가 아니라 동화를 각색해서 만든 작품들이 꼭 하나씩은 올라오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걱정이나 작품의 난이도 걱정 없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장도 멋지고, 무대와 의상은 더 멋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빠져 들 수 있을 거예요.
두 번째는 1952년부터 런던에서 가장 오래 공연 중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The Mousetrap을 추천하고 싶어요. 한국인은 런던에서 유명 뮤지컬만 보려 하는데, 이 오래되고 클리셰로 가득 한 탐정 추리 연극은 뻔하지만 새로운 경험이 될 거예요. 영어도 많이 어렵지 않고, 원작 소설을 읽거나, See How They Run 같은 오프퀼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어서 추천합니다.
런던에 있는 극장 중에 추천하고 싶은 공연장이 있나요?
저는 런던에 있는 극장들 중 West End의 100, 200년 된 극장을 갈 때마다 즐거워요. 그 옛날 극장 로비의 모습, 극장 내 천장과 샹들리에, 화장실 문과 손잡이들을 볼 때마다 설레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극장과 별개로, 여기서 본 모든 공연들이 좋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올해 8월에 본 Romeo & Juliet은 St. Martin’s Lane에서도 아이코닉한 the Duke of York’s Theatre에서 공연한 것을 관람했습니다. 무대 위 스크린에서 중간중간 액션캠을 통해 송출한 극장 백스테이지부터 비상구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와 과거가 묘하게 섞인 분위기가 흥미로운 공간이었지만, 공연 자체로는 실망이 가득한 최악의 공연이었습니다.
요즘 가장 몰입하고 있는 일은 뭔가요?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요즘 몰입하고 있는 일은 런던에서 일을 찾는 것과 창작작업을 다시 시작해 균형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창작자로서는 속물적이고, 연구자로서는 게으른데 하고 싶은 건 많아요. 지금은 영국에서 아트 디렉터나 프로덕션 매니저로 일해보고 싶습니다. 영국 공연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직접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요.
또, 한국의 많은 좋은 공연과 공연 창작자들을 외국에 진출시키고, 한국에는 없는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기도 합니다. 주변에 많은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만든 작업이 한국에서 일회성으로 공연하고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 이상의 고민이 있습니다. 더 넓은 시장에서 그들의 작업을 팔고, 자극을 받고, 그리고 대우받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공연과 관련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어요?
공연을 만드는 것에 대한 기쁨과 노동이 얼마나 즐거운지 한 번 느끼면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힘들기는 하지만. 무대 디자이너이자 연출가가 되는 것 또한 하나의 꿈입니다. 저는 여기서 느낀 다양성이 한국에서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해요. 한국인이 생각하는 다양성과 외국의 다양성은 결이 다른 것 같았습니다. 차별은 어디서나 존재하지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가려져 있거든요.
반대로 영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것과 이 문제가 왜 사회에 중요한지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요. 미래에 이 작업을 위해 준비할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재은 님처럼 기록을 하는 게 제 취미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스크립트를 쓰면서 일기장도 꺼내 보고, 모아둔 공연 팸플릿도 찾아보면서 지난 3년의 영국생활을 뒤돌아 보는 경험을 했어요. 한국에서 공연 예술은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 같았지만, 영국에서 경험한 예술과 공부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모르지만 만약 공연, 혹은 다른 예술분야에서 유학을 꿈꾸거나 준비하고 또 마무리한 사람들이 이 인터뷰를 본다면 저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국 '석사 1년'이 인생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얻게 된 경험과 정보는
보이지 않는 중요한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