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차 - 첫인상
자는 동안 히터가 꺼졌는지 눈을 뜨자마자 찬 공기가 가장 먼저 느껴졌다. 부스스 침낭에서 기어 나와 간단하게 세면을 했다. 텅 빈 침대 위로 널브러진 짐들을 주섬주섬 배낭에 주워 담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제 봤던 남자는 이미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정리한 짐을 챙겨 텅 빈 방을 뒤로하고 거실을 향했다. 자판기에서 빵과 핫초코를 뽑아 거실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아침을 해결했다. 다 먹은 쓰레기를 정리하고 신발 끈을 단단히 묶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을 짊어지고 문을 나섰다.
상쾌한 공기가 나를 반겨주었다. 여기에 더해 시작부터 길이 좋았다. 알베르게가 산 중턱 내리막이 이어지는 곳에 있어 나오자마자 킥보드에 올라 편하게 길을 내려갔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화살표가 보였다. 화살표를 따라 걷자 곧 산길이 시작되었다. 1월의 산은 반쯤 벗은 빛깔이 반짝였고 푸르른 향긋함을 풍겼다. 조금 더 걸으니 아담한 폭포가 청량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눈과 귀가 즐거워졌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국경을 겸하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어느덧 그 다리가 멀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기 전, 마지막으로 에그 타르트를 먹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 에스프레소와 함께 시킨 에그 타르트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소중하게 한입 한입 베어 물며 이 맛을 기억하려 애썼다. 나는 분명 이 음식을 먹는 그 순간에도 이것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리워하는 것처럼.
카페를 나서 길을 조금 더 걷자 다리가 보였다. 단 하나 있는 국경이 휴전선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군인은커녕 경찰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무방비의 국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다리를 건너면 포르투갈의 도시에서 스페인의 도시로, 포르투갈의 언어에서 스페인의 언어로, 포르투갈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바뀐다는 것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다리 중간에 서서 두 나라의 경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묘한 매력이 나를 잡아끌었다. 국경. 분명 같은 단어와 뜻이지만, 이곳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를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오던 국경은 폐쇄적이고 닫혀있고 멀리 있는 것이었다면, 이곳에서 느껴지는 국경은 열려있고 가깝고 다가가기 쉬운 느낌을 주었다. 그 온도차가 나를 당혹케 했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국경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두 나라를 한 장면에 담았다.
그렇게 나는 정든 포르투갈을 뒤로하고 스페인의 첫 도시 Tui에 도착했다.
미묘하게 달라진 풍경 속에서 알베르게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었다. 그러나 기껏 찾아낸 알베르게에서 스페인에서의 순례자의 길에 대한 첫인상을 완전히 망쳐버리고 말았다.
킥보드를 끌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출입을 관리하는 듯 보이는 아주머니는 내가 이곳에서 머물 수 없다고 했다.
“......... 왜요?” 당혹감을 숨기지 않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가 물었다.
“이곳은 걸어서 오거나 말을 타고 오거나 자전거를 타고 오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이기 때문에 ‘그것’을 타고 온 너는 머물 수 없어”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눈빛과 억양, 목소리, 손짓, 어투, 표정으로 그녀는 답했다.
자전거와 내가 타고 온 킥보드가 비슷하다고 애써 주장해봤지만, 그녀는 “그렇다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처럼 40km 이상을 가서 그곳 알베르게에서 자면 되겠네”라고 말하며 나의 말문을 턱 하고 막아버렸다.
예상하지 못 한 일을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넋 놓고 그녀가 내게 말하는 것을 다 듣고는 별 다른 도리 없이 일단 그곳을 벗어났다. 조금만 더 그녀와 대화를 하다가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만 같았다.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추스르려 노력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포르투갈로 다시 돌아갈까도 고민해보았지만 마지막 남은 한 가닥 이성의 끈이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나의 모든 순례자의 길이 엉망이 되게 할 수는 없다고 나를 붙들었다. 마음속으로 생각나는 모든 욕을 소리치며 다음 도시를 향해 분노의 발길질을 했다.
아무리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도 그녀는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머리와 가슴에서 시작된 분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온몸으로 퍼져갔다. 그녀에서 도시 ‘Tui'로, 스페인으로, 모든 스페인 사람들로 분노의 대상이 점점 넓어져갔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싫어지는 지경에 이르자 ’ 분노‘라는 독이 퍼져 나를 마비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독이 퍼지는 것을 멈추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그녀는 오늘 엄청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그랬을 거야.’
‘어쩌면 그녀는 세계 제일의 기분 나쁘게 말하기 선수일 거야.’
‘이건 또 하나의 순례자의 길이 내게 주는 시련이자 가르침이야.’
‘그녀는 그런 방식으로 밖에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일 거야.’ …….
젠장,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잊히거나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서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은 당혹스럽기는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일이었다. 문제는 그녀의 ‘태도’였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이,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해야 하는 일이 멍청하고 한심한 일이라는 느낌을 그녀에게서 받았다. 이는 내게 굉장히 모욕적으로 다가왔다. 설령 실제로 내가 멍청하고 한심한 일을 하고 있을 지라도 그녀는 나를 재워주지 않을 권리가 있을지는 몰라도 면전에서 나를 모욕할 이유도, 권리도 없었다.
5분 남짓한 시간 동안의 낯선 사람과의 대화로 기분이 이렇게까지 나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기분을 조금이라도 전환시키려 억지로 웃음 지어보았지만 찌푸려진 눈살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상태로 스페인의 두 번째 도시인 ‘O Porrino'에 도착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알베르게 앞 벤치에 앉아 이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다음 도시를 향해 가거나 이 도시에서 다른 숙소를 찾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둘 중 어느 방법이 더 나을까 고민하는 중에 한 할아버지가 알베르게를 향해 곧장 걸어가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 뒤를 따라 들어가 이곳에서 잘 수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머물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고 이용 교칙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무뚝뚝하지만 친절한 배려가 느껴지는 관리자 할아버지 덕분에 기분이 한결 나아지면서 스페인에서의 순례자의 길에 대한 인상도 조금 좋아졌다.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하고, 식당을 찾아 밥을 먹고, 자리에 누워 오늘 하루를, 아까의 사건과 그녀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그녀가 무례함과 모욕을 느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적인, 신성시되는 순례자의 길을 공인도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이 주로 타는 킥보드를 타며 이 길을 가볍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내 나름대로의 이유와 의미가 분명 이 길에 깃들어 가고 있었지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복잡한 심경을 뒤로하고 잠에 들려했으나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 오늘 걸은 길
- 출발: 08:43 / 도착: 15:08
- 거리: 약 24.6km
- 경비: 23.17 Eu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