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차 - 포르투갈의 마지막 도시
오전 8시.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12개 중 5개의 침대에 사람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으로 봤던 시간이 5시 어간이었다. 시간을 보고 '다들 어째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나 나가는 걸까'하며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잠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휑한 침대들을 보니 어째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순례자의 길에 오를 준비를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처음부터 5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출발한 적은 없지만, 분명 조금씩 아침에 일어나 출발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이 또한 나만의 방식으로 길을 걷는 것이리라 자위하며 채비를 마쳤다.
처음으로 머물렀던 공립 알베르게는 ‘저렴하게 하루를 머무를 수 있는 숙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시설의 숙소조차 성수기의 프랑스 길에서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의 치열한 경쟁이 있다고 어디선가 봤었는데, 비수기 포르투갈 길에서의 경쟁이 필요 없는 널널한 숙소는 남과 경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이 길 위에서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위안이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Rubiaes'라는 포르투갈 길에서의 마지막 도시로, 20km 정도 거리에 있었다. 처음에는 오늘 역시 2개의 도시를 한 번에 가려는 생각을 하였으나, 그동안 정든 포르투갈에서 하루라도 더 보내고 싶은 마음과 이 나라의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마음이 나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요즈음 걸었던 거리의 반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기 때문에 한껏 여유를 부려도 늦지 않을 터였다.
어제와 확연히 다른 차가운 바람이 오늘의 길을 알렸다. 밀양 산골 자락 깊숙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던 황토로 만든 시골집에서 겨울철 느꼈던 깨끗하고 맑은 차가운 공기였다. 한기를 느끼며 옷을 꺼내 입었지만 곧, 나를 비추는 짱짱한 햇빛과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다시 고이 접어 배낭에 넣었다. 따뜻함과 시원함이 어우러지는 그런 평화로운 길이었다.
잠시 자리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지금까지 내가 지나며 표시해 온 지도를 바라봤다. 포르투갈의 최남단 리스본에서 출발해 어느새 스페인 국경을 바로 앞에 둔 도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제는 걸을 날보다 걸어온 날이 많아졌다. 앞으로 내가 머무를 도시보다 머물렀던 도시가 더 많았다. 이제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빨리 도착하고 싶어 서둘렀던 길들이 좀 더 천천히, 좀 더 늦게 도착했으면 싶어 졌다. 이 길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었으면 싶었다. 외롭고 힘들어 도저히 못 걷겠다는 생각을 했던 이 길이….
“살아보니 좋은 날도 있더라.” 어른들은 내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어른들은 내게 이 말을 통해 무엇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 그들은 내게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행복한 날이 올 거야.’나 ‘계속하다 보면 그게 좋아질 거야.’와 같은 포기하지 않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숭고한 감정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삶에서 깨달은 진리, 혹은 그 무언가를 나는 순례자의 길에서 깨달았다. 내게 있어 순례자의 길은 축약된 하나의 삶이었다.
점점 한기가 느껴졌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르막길, 오르막, 오르막길,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걸음이 느려지고 허벅지가 터질 듯했지만, 그 뒤에 올 싱그러운 내리막길이 있음을 알기에 참을 수 있었다. 완만하고 긴 오르막길 뒤에는 완만하고 긴 내리막길이 있었다. 킥보드 뒷바퀴에 달려있는 보잘것없는 브레이크로도 충분히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는 내리막길이었다.
이때, 나는 완전한 자유를 경험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이 세상에 나만이 존재했고 나를 얽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자유롭지 못 한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그 완만한 내리막길이 끝날 때까지 나는 완전한 자유 속에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오르막을 올라 이 기분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 감각 속에 이 느낌을 꾹꾹 눌러 담아 기억하고자 했다. 나는 언제고 갑갑하고 답답한 상황 속에 처해있을 때마다 눈을 감고 이 순간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본능으로 알았다.
한 시가 채 되기도 전에 두 번째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머무르는 순례자도, 관리하는 직원도 없이 말 그대로 텅 비어있었다. 조심스럽게 들어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렸다.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카운터 위에는 도장과 작은 상자 그리고 서류 몇 가지가 올려져 있었다. 순례자 여권(크레덴셜)을 꺼내 도장을 찍고는 작은 상자를 들어 유심히 보았다. 상자는 숙박에 대한 비용을 자유롭게 넣어 놓는 보관함이었다. 원하는 만큼 돈을 넣고 자유롭게 이용하다가 가면 되는 구조인 것 같았다. 나는 얼마를 넣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5유로를 꺼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양심과 비양심이 타협한 결과였다. 돈을 넣고는 도장과 상자를 제자리에 놓아두고 침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히터 옆, 가장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옷을 벗고 빨래 거리를 가지고 샤워실로 향했다. 몸을 씻어내고 빨래 거리를 물로 헹구고 나왔다. 빨래를 널어놓고 산뜻해진 기분으로 침대에 누웠다. 걸은 거리가 짧아서 그런지 피곤하지도 않았고 자고 싶지도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해야 할 일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시침은 멀리 가지 못했다. 와이파이조차 잡히지 않자 결국 카메라를 챙겨서는 밖으로 나왔다.
말도 못 하게 맑은 날씨는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천천히 걸으며 찍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잠시 멈춰 서서 카메라에 담고 다시 걸었다. 얼마간 걷자 식당이 보였다.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았지만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기로 했다. (분명 숙소에 들어가면 귀찮아서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밥과 감자와 고기 그리고 슬라이스 된 레몬 한 조각과 올리브 한 알. 마지막 포르투갈에서의 식사는 역시나 투박했지만, 맛있었다.
밥을 다 먹고 지금까지 내가 걸었던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수도 리스본이라는 것과 축구선수 호날두의 고향이라는 것 이외에는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스페인과 비슷하겠거니 생각했었는데, 비슷한 구석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달랐다. 먹는 것과 날씨, 언어, 성향, 사는 모습 등 모든 것이 스페인과 전혀 딴판이었다. 낯설었던 이 나라는 길을 걷는 동안 점점 익숙해졌고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 나라에서 만난 사람이 좋았고, 이 나라에서 먹은 음식이 좋았고, 내가 걸었던 이 나라의 길들이 좋았다. 스페인에서 순례자의 길을 걸을 때에도, 길을 다 걸은 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 나라를 그리워하며 추억할 것이라 확신했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한 남자가 있었다. 포르투갈을 떠난다는 사실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서일까, 지금까지 순례자를 만났을 때처럼 반갑지 않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는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적당히 몇 마디를 나눈 뒤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침대에 들어가 사색에 잠겼다.
# 오늘 걸은 길
- 출발: 08:46 / 도착: 12:34
- 거리: 약 18.1km
- 경비: 19.4 Eu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