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 - 세 가지 실수

by 잼 매니저

1일 차 - 세 가지 실수


기분 좋게 출발하는 나의 모습

오전 9시. 게스트하우스의 흥 넘치는 직원이 보내주는 기분 좋은 응원을 받으며 리스본 대성당에서 순례자의 길을 시작하기 위해 거대한 짐 덩어리를 메고 킥보드에 올라 발을 굴렸다. 걷기 딱 좋은 서늘한 날씨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 기분 좋고 씩씩하게 대성당에 다다랐다. 무관심 한 사람들과 흥미로운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순례자들을 위한 *노란 화살표를 찾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없다. 노란 화살표가 나의 길을 인도해주어야 하는데 그 화살표가 없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고서는 핸드폰 구글 지도에 오늘의 목표이자 나의 순례길 첫 도시가 될 'Alverca'를 검색하고는 일단 출발하기 시작했다.


*노란 화살표 : 교구 사제 Elías Valiña Sampedro에 의해 시작된 순례자들이 보다 길을 쉽게 찾게 하기 위한 표식이다. 도로, 나무, 벽 등에 그려져 있으며 순례자 협회에 의해 관리된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실수였다.


가장 처음 발견한 노란 화살표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구글 지도를 따라가다 보니 이따금 노란 화살표가 눈에 띄었고 과일 도매시장을 발견해 신선한 과일을 싼 값에 구입하여 먹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째서인지 노란 화살표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구글 지도에만 의지한 채 첫 번째 목표 도시인 ‘Alverca’로 향했다. 내가 어렴풋이 생각했던 순례자의 길과는 다른 아스팔트 도로로 되어있는 길을 걸으며 ‘도대체 이 길이 순례자들이 다니는 길이 맞나?’, ‘이런 길로 계속해서 순례를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들을 했다. 그래도 지도를 따라 열심히 길을 나아갔다. 킥보드를 타다 걷다 킥보드를 타다 걷다를 반복하길 여러 번,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옆으로 오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포르투갈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충의 눈치로 ‘이 길로 네가 가면 안 되니 저기 보이는 담을 넘어서 가’로 이해했다. 영문을 모른 채 순순히(어느 나라에서든 경찰의 말은 순순히 듣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므로) 경찰들의 지시에 따라 담을 넘어섰다. 그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담을 넘기 전까지 걸었던 도로가 고속도로였다는 것을…. 내 옆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나갔던 어마무시했던 크기의 트럭들이 울리던 클락션 소리는 ‘나 지나갈게’가 아니라 ‘너는 여기에 있으면 안 돼’의 의미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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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erca’라고 떡하니 쓰인 톨게이트가 보이는 곳에서야 나는 내가 지금까지 있었던 곳이 고속도로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방금까지 정말 어처구니없이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것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멍하니 방금까지 내가 왔던 고속도로에서의 일을 회상해봤다.


내리막에서 킥보드를 타고 가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슈웅-하고 트럭이 엄청난 클락션 소리를 내며 내 옆을 지나간다. 그러면 곧 그 트럭의 흔적(바람)이 들이닥쳐 나의 몸을 흔든다. 나는 그 흔들거림에도 내리막이라는 이유로 걷지 않고 꿋꿋이 결코 느리지 않은 속도의 킥보드에 몸을 올린 채 나아간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지 않으려 킥보드 손잡이를 꽈악 잡는다. 어느 정도로 꽉 잡았는가 하면 손에 미진한 근육통이 생기고 킥보드 손잡이가 약간 축축해질 정도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때 덥지 않았는데도 땀이 났던 것은 힘들어서 난 땀이 아닌 식은땀이 흐른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식은땀이 나고 겁이 났지만 애써 담담한 척 나아갔던 내 모습과 75L 배낭을 꽉 채운 채 킥보드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동양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상상하니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나를 보고서는 누군가 감사하게도 경찰에 신고해주어 내가 톨게이트에 이르기 전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후에 만약 한국 혹은 다른 나라에서 고속도로를 지나는데 누군가 킥보드를 타고 (혹은 걸어서) 지나가고 있다면 오늘의 포르투갈 경찰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를(혹은 그녀를) 보호하며 아련히 동류의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해주리라.


‘여기는 당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니 저 담을 넘어가시오’라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Alverca’에 도착했다. 도착을 하고 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여행을 다닐 때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숙소를 찾아갔었다. 숙소를 찾아가려고 하니 나는 도시 어디에 *순례자 숙소가 있는지 모른 채로 왔다. 순례자의 길이니 성당에 가면 정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성당으로 일단 향했다.


*순례자 숙소(Alvergue, 알베르게) :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순례자의 길이 지나는 도시들에 있는 순례자 전용 숙소이다. 공립과 사립으로 나뉘어 있으며 크레덴셜(순례자 여권)에 세요(증명 도장)를 찍을 수 있다. 순례자라고 꼭 이곳에서 묵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순례자 숙소에 묵기 위해서는 크레덴셜이 꼭 필요하다.


‘평일임에도 성당에 사람이 꽤 있네.’라고 생각하며 성당 앞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알베르게?”, “까미노 데 산티아고?”, “세요?” 같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과 관련된 단어들을 내뱉으며 물었다. 잘 모르는 듯 보였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닫혀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옆으로 쪽문이 하나 있어 들어갔다. 시체다. 관 속에 시체가 누워있었다.


‘아........’


평일임에도 사람이 성당에 많았던 이유는 장례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몹시 당황한 나는 급하게 문을 나와 (이제 보니) 검은색 옷을 입고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과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성당에서 멀어졌다.

방향성을 잃은 나는 축 쳐진 채 길가에 거대한 가방을 내려놓았다. 충격과 당혹감에 멍하니 서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가죽 재킷을 입은 멋쟁이 할아버지가 지나가기에 별 기대 없이


“까미노 데 산티아고?”라고 물었다.


드디어 순례자의 길을 아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자 할아버지는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또다시 성당으로 가는 건가 싶었지만 나를 소방서로 데려가신다.


‘응? 소방서?’


의아했지만 당당한 걸음걸이의 멋쟁이 할아버지를 따라 쭈뼛거리며 소방서 안으로 들어갔다. 소방관들과 포르투갈어로 잠깐 대화를 나누시더니 곧 영어를 할 줄 아는 소방관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차림새처럼 멋지게 활짝 핀 미소와 힘찬 악수로 작별을 고하고는 본인의 길을 향해 떠났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소방관은 내게 이곳에서는 잘 수 없지만 4km 떨어진 ‘Alhandra’ 소방서에 가면 무료로 잘 수 있을 거라고 귀띔해주었다. 크레덴셜에 첫 번째 세요를 받고서는 잠시 동안 소방관과 대화를 나누었다.


“몇 개월 전에 한국인이 여기를 지나갔는데 혹시 아는 사이야?” 라며 그는 정말 궁금한 듯이 천진난만하게 내게 묻었다.


‘너는 방금 나를 데려다준 할아버지랑 아는 사이야?’라고 되묻고 싶은 생각이 솟구쳤지만 소방관의 친절함과 천진난만한 웃음에 그저 잘 모른다고 답해줬다. 몇 개월 전에 지나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한국인을 생각하니 묘한 동질감이 일었다. 마음속으로 그에게 심심한 안부를 전하며 무료로 숙박을 할 수 있다는 'Alhandra'의 소방서를 향해 담담히 길을 나섰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실수였다.


소방서 내에 있던 나의 순례자의 길 첫 숙소

‘Alhandra’로 출발하기 전 나는 약간의 허기짐이 있었지만 ‘4km쯤이야 금방 가니 도착해서 먹으면 되겠지’라는 안일하고 멍청한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난하게 노란 화살표를 따라 평화로운 소도시 느낌의 ‘Alhandra'에 도착했다. 조언대로 소방서를 찾아 숙소 이야기를 하니 무료로 잘 수 있다며 소방서 내에 있는 널찍한 창고로 나를 안내했다. 내가 처음으로 이곳에서 묵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창고에는 벗겨진 매트리스와 담요가 여러 개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안내를 받고서는 곧바로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 아무거나 대충 입은 채‘ 식사를 하러 나갔다.


이것은 마지막이길 바라는 나의 세 번째 실수였다.


별생각 없이 히트텍 하의에 반바지, 흰 양말에 초록색 슬리퍼를 신고 킥보드를 가지고 나갔는데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동양인이라서 힐끔거리는지, 성인이 킥보드를 타고 다녀서 힐끔거리는 건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힐끔거릴 이유는 내가 생각해도 충분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뭔가 내가 크게 비웃음을 사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상점들이 늘어선 광장에 들어서자 나를 보는 어르신들의 동공이 확장되고, 아이들 무리들은 나를 손가락질하며 웃고 있고, 내가 시선에 닿는 거의 모든 이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였다. 얼굴에 열이 올라오고 그 공간과 사람들이 갑자기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 나를 광장에서 도망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불과 1m 남짓한 거리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가 나의 타이즈를 손가락질하며 그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의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캬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처음 겪는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에 그곳을 빠르게 벗어났다. 웃음소리와 시선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얼굴은 화끈거렸으며 손에는 땀이 났다. 목적을 잊은 채 나는 최대한 빨리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생각하며 소방서로 도망치듯 광장을 벗어났다. 소방서 창고에 도착해 청바지로 갈아입고 나니 분노가 일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포르투갈 중학생에게. 낯선 외국에서. 공개적인 모욕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곧, 분노는 배고픔에 의해 침몰했다. 나의 분노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했고 나는 밥을 먹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물론 타이즈는 벗고 킥보드는 놔둔 채로. 다시 그 광장 방향으로 갈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소방서 바로 앞의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카페, 펍, 식사를 모두 할 수 있는 공간인 듯했고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너 군데에서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가서는 영어로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통역을 해주었다. 격한 분노도 잠재울 배고픔을 가진 내게 아주머니는 지금은 어디를 가도 밥을 먹을 수 없고 7시가 되어야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현재시간 5시 어간. 꼼짝없이 2시간 정도를 기다려야지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온 나는 알람을 맞추고는 침낭 속으로 들어가 주린 배를 움켜잡고는 눈을 감았다.

아귀처럼 먹어치운 나의 저녁

잠을 통해 시간을 순식간에 보내기 위함이었지만, 격한 배고픔과 오늘의 실수들이 아른거리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 7시에 맞춰 알람이 울렸고 나는 식당으로 달려가 아귀처럼 식사를 해치웠다.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일까, 식사에 곁들인 맥주 한 잔 때문일까 배고픔이 해소되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숙소로 돌아와 침낭 속에 나른한 몸을 누이니 눈이 스르르 감겼다.


경로를 제대로 몰라 고속도로를 킥보드로 달려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비상식량도 없이 먹을 수 있을 때 식사를 하지 않아 극심한 배고픔을 겪고, 옷을 아무거나 대충 입고 나가 멀고 낯선 나라에서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낀 나의 순례길 첫날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결코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알아두면 좋은 정보(tip)


- 마을(도시)에 도착해서 소방서(Bombeiros)를 찾아가보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포르투갈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 소방서 중 숙박이 가능한 곳들이 있다.

- 개성있는 옷차림은 자제하자.


#오늘 걸은 길

- 출발: 09:35 / 도착: 15:59

- 거리: 약 35km

- 경비: 16.82 Euro


KakaoTalk_20190316_231741866.jpg Lisboa - Alhan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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